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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담백 Oct 08. 2021

가르치는 기술, 4

골초 청소년에 대하여(2)



...마약을 한 사람들도 첫 기억이 좋으면 중독되는 거라 했다.


라오스와 인도를 여행할 때 스쳐갔던 여행자들 중에

마약을 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잘게 썬 잎을 작은 비닐봉지에 담아 밤길을 걷는 내게 권유하는 판매자도 있었고

카페 점원이 앞치마 주머니에서 슬쩍 잎들을 꺼내 한국 여행자들에게 권하는 걸 목격하기도 했다.

한국인들은 전문가들인 마냥 잎들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냄새를 맡고

검지와 엄지로 잎을 비비며 상태를 확인한 뒤

점원과 모종의 눈길을 주고받고 돈을 건넸다.


내 기억으로 몇 만 원 되지 않는 돈이었던 것 같다.

생각보다 싸네...하고 놀란 기억이 있다.


 한국 남자는 먼저 일어나겠다며 입맛을 다시면서 카페를 나섰다.


그들이 다음 날 들려준 얘기로는,

그걸 하고 나면 귀가 활짝 열려서 아주 작은 소리까지 엄청난 감각으로 들린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다른 세계로 넘어갈 때

마음이 평온하다고 했다.


겨드랑이 사이에 날개가 돋은 채 하늘을 날아봤다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다른 한 여자는 두 시간 동안 벽에 몸을 기댄 채 꼼짝도 할 수 없었던 끔찍한 기억을 말했다.

눈앞에 폭신한 침대가 보여도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어서 그저 침대를 바라만 보느라 괴로웠다고 했다.


인도에서 만난 늙은 남자는 마약류가 섞인 라시를 먹었다가

호텔 방에서 사방 벽이 자신을 향해 돌진하고, 팔다리가 떨어져 나가는 걸 그저 지켜봐야 했던 기억을 말했다.


저들 중 누가 중독될까.


누가, 첫 기억을 그리워할까.


마음이 가라앉고

일이 풀리지 않고

상실을 경험할 때

위로를 주는 것을 찾으려는 욕구는 당연한 것이다.


마약과 담배를 완전히 같은 값으로 견주기는 어렵지만,

'첫 기억'과 '위로의 순간'이 '잘나가는' 또래의 문화에 편입되고 싶다는 치기와 만나면

중독을 피하기 어렵다.


흡연하는 아이들과 대화를 해보면,

흡연하는 자신을 좋아하는 아이는 아무도 없다.


처음에는 '가오잡기'로 시작했던 아이라 할지라도,

그들은 그걸 그만두고 싶어 한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어른들도 금연에 실패한다.

당뇨 합병증으로 팔 다리를 잘라내면서까지 담배를 놓지 못한 사람도 있다.


담배만 한 것을 찾기 어려워지기 전에,

'첫 기억'이 생기지 않게 하든지,

'위로의 순간'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을 찾게 하든지,

'잘나가는' 또래를 매력 없게 만들든지 해야 하는데 실상은 어렵다.


부모의 무심함이나 믿음도 큰 영향을 준다.


얼굴이 회색빛으로 변하던 경준이(가명)가 생각난다.

소위 '잘나가는' 무리의 아이였지만 천성이 여려서 누굴 괴롭히거나 입이 거친 타입은 아니었다.

경준이의 친구들은 오토바이를 훔쳐 타다가 할머니를 치고 달아나고

자전거를 훔치다가 경찰에 잡히는 등 많은 사건 사고를 일으켰지만

경준이는 그런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걸 인지하고 있고, 사건에 휘말리지 않는

(그렇다고 뒤에서 조종하는 타입도 아닌) 아이여서

그 무리에 있는 것이 못내 안타까웠다.


그러다 결국 담배를 얻어 피게 되었는데

한두 개비에서 반갑, 한갑으로 양이 크게 늘었다.


육상에 두각이 있는 아이라 몸이 시시각각 변해가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계속 가래를 뱉으러 화장실에 가는데다 숨도 가쁘고 금단 증세가 심해서

수업에 전혀 집중하지 못했다.

담배를 살 돈이 없으니 여기저기에서 돈을 구하거나

아버지의 담배를 훔치는 수밖에 없었다.


경준이는 견디다 못해 용기를 내어,

부모에게 자신을 보건소에 데려가 달라고 말했다.


그런데 경준이의 아버지는 지역 내 아는 사람들이 정말 많은 인맥파 사업인이고

어머니는 아들을 지나치게 믿는 사람이어서,

아버지는 보건소에 아는 사람도 있는데, 하며 주변의 눈을 의식해 경준이를 데려가지 않았고

어머니는 흡연자가 아니어서 그런지 중독의 마음을 이해하지도 못했다.


마음을 굳게 먹으면 금연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아이의 요청을 외면한 것이다.


사실 두 분 다 회피를 한 셈이다.


내 아들이 그럴 리가 없다,

한때의 치기일 것이다,

친구를 잘못 사귀어서 그렇다...


끝내 경준이는 중학교를 졸업하는 순간까지 담배를 끊지 못했고,

저러다 죽는 거 아닐까 싶을 만큼 얼굴빛이며 손끝이 색이 달라졌다.

육상 실력도 당연히 바닥을 쳤다.


체대 입시생이었던 종훈이(가명)도 비슷한 이유로 담배를 피우게 되었다.


종훈이는, 다니던 영수학원 옥상에서 친구들을 따라 첫 흡연을 하다가

다른 아이들이 원장에게 달려가 알려주는 바람에 들켰다.

원장은 종훈이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아이가 담배를 피웠다는 사실을 알렸는데,

어머니가 길길이 뛰었다.

직접 봤냐고 따졌다.

원장이 직접 본 것은 아니었으므로,

아이들이 알려줬다고 했지만 어머니는 그 말을 믿지 않았고

그 다음날부터 그 학원을 끊었다.


종훈이가 그날 담배를 피운 것은 사실이었다.

그 아이도 그렇게 말했고, 함께 피운 아이들도 다 실토를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주변아이들이 누가 담배를 피운다고 하면 그 말은 거의 사실이라고 봐야 한다.  

아이들은 다 안다.


부모가 두 분 다 초등학교 교사인 가정의 중학생 남자아이도 있었는데,

아이가 담배를 피운다는 것을 끝내 부모가 몰랐다.

나는 이 아이가 가글을 자주 하고

콧김을 자주 뿜고 숨이 가빠지는 데서 확신을 하고 추궁을 했는데

이미 중독이 된 상태로 흡연자라는 걸 인정했다.

아파트 지하 주차장 소화전에 담배를 넣고 다닌다는 것이다.


그 아이는 가끔 술에 덜 깬 채로 학원에 와서

화장실에 토를 하기도 했고

학교 선배의 뺨을 때리기도 했다.


하지만 애교가 많고 능청스러운데다 머리가 좋아서,

부모와 조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했고

자신이 사랑받는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그러니,

아이가 숙제를 안 해오고 지각을 하고 땡땡이를 치고 거짓말을 해도,

내가 슬그머니 아이의 담배 이야기를 꺼내 봐도

부모는 화들짝 놀라 아이를 감싸며 내게 반박할 뿐이다.


-아, 우리 애는 그렇게 안 놀아요. 제가 잘 알아요.


그 가정에 아이는 얘 하나뿐이고,

부모는 너무나 반듯하게 잘 자란 사람들이다.


한번도 모범생을 벗어나본 적 없는 사람들은

비행에 대한 상상력이 없다.


무너지고 싶지 않은 것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보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런 세상에 내 자식이 속해 있을 리가 없다.


그 사이, 아들은 점점 부모를 속이는 것에 능란해졌다.

그리고 나는 그 아이를 포기했다.

더이상 학원에 오지 말라고 말한 뒤 번호를 차단했다.

내 눈에도 보이는 많은 것들을,

아이를 매일 보는 부모가 조금도 알아채지 못하는 것에 지쳤다.


사랑하면 그렇게 되는 걸까.

마음의 시력이 나빠지는 걸까.



'힘든 순간' 필요했던 것이

힘들지 않은 순간에도 못견디게 필요해지면,

그것이 중독이다.



'첫 기억'이 아름답게 블러 처리 되지 않도록 하는 건,

대체 누구의 몫일까.


분명한 건,


아이도

자신에게서 멀어지고 싶은 순간이 있다는 것이다.



가르치는 기술, 4

마음의 시력을 키워야 진짜 사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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