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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담백 Sep 23. 2021

가르치는 기술, 4

골초 청소년에 대하여 (1)



예전에 한 청소년소설 공모전 최종심에서 떨어진 적이 있다.


그때 다룬 내용이 청소년 흡연 문제였다.

심사평 중에서, 그 글에 드러난 작가의 윤리의식을 신뢰할 수 없다는 취지의 내용을 본 걸로 기억한다.


아마 등장인물들을 대하는 나의 시각이

보통의 어른같지 않아서였을 거라 짐작한다.


글에 등장하는 '김게이'는 실존인물을 바탕으로 한 캐릭터였다.

김게이는 20대 초반의 남자로,

중고등학교 골목길에서 남학생들에게 접근해 담배를 한 개비씩 주는 대가로

그들의 상반신 사진을 받았다.

얼굴이 드러나지 않아도 되었으므로,

담배 한 개비가 절실한 아이들은 실제로 사진을 건네고 담배를 받는 거래를 하기도 했고

SNS상에서 김게이를 조롱하거나 신상을 파헤치며 놀잇감으로 삼기도 했다.

김게이의 본명과 출신 학교도 이미 알려져 있었다.


학교 측에 몇 번 신고가 들어간 뒤로 행적이 묘연해졌다가,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정신병동에 갇혔다, 말이 많다가

드문드문 다시 등장한다는 소문이 흘러 나온 뒤

잠잠해졌다.


나는 김게이를

담배를 구하고자 하는 아이들이 마지막으로 찾는,

자존감과 맞바꾸어야 하면서도 큰 문제의식을 느끼지는 못하는 대상으로 표현했다.


청소년이 담배를 구하는 방식에도 여러 층위가 있어서

담배를 쉽게 구할 수 있는, 편의점 알바생이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 '노안'이 1순위이고

청소년인 걸 알면서도 담배와 라이터를 파는 어른들의 가게와

알바생으로 꽂아놓은 측근이 있는 편의점의 위치를 족보처럼 공유하는 것이 다음 순위이다.


눈이 침침하고 행동이 둔한 노인이 운영하는 대학가 구멍가게에서 훔치거나

훔친 것에 수수료를 지불하고 살 수 있는 아이들과

허술한 아버지, 형, 삼촌 등이 피는 담배를 한 개비씩 감질나게 가져오는 아이들 등도 있다.


담배를 훔치는 청소년들과 딱 마주친 적도 있다.

중학생 또래의 남자 아이들 둘로 구성된 그 2인조 중 하나는 밖에서 망을 보고,

하나는 동네 구멍가게에 들어가 익숙하게 선반에 손을 올려 말보로를 훔치다가

때마침 가게에 들어선 내가 그 장면을 본 것이다.


-훔치지 말죠.


라고 내가 말하자 그 남학생은 카운터 위에 담배를 올려놓고 잽싸게 근처 옥상으로 달아났는데

주인 아저씨가 그제야 어슬렁어슬렁 나와서 한다는 말이,

가끔 애들이 500원을 더 얹어서 카운터에 놓고 담배를 알아서 가져가기 때문에 그냥 냅둔다는 것이었다.

...500원 때문에.


아마 내가 가고난 뒤에도 수많은 청소년들이

그곳으로 와서 담배를 사거나 훔치거나 했을 것이다.




흡연하는 아이들은 정말 많다.

같은 반에 누가 흡연자인지 그애가 뭘 피는지, 아이들은 사실 다 알고 있지만

설문 조사에 솔직하게 응하지 않는다.

나는 흡연 실태 설문조사만큼 못 믿을 자료도 없다고 확신한다.


물을 2리터씩 먹고 소변을 보고 나서 흡연 검사를 받거나

젓가락으로 담배를 피는 정도는 그냥 상식 수준이고

쉬는 시간에 화장실에 가서 전자담배를 피기도 하고

학교 옥상에서 대놓고 식후땡을 즐기기도 한다.


아이들은, 가방 검사로 잡히는 애들이야말로 초짜라 한다.

집에 가기 전에 아파트 지하 소화전 안에 담배와 라이터를 숨기고

흡연 후에는 가글에 핸드크림에, 정수리 스프레이 뿌리기, 운동해서 땀 흘린 뒤 집에 가자마자 자연스럽게 샤워하기 등의 온갖 노력을 하는데

그 부지런함이 정말 바람 피는 배우자들(?) 못지 않아 혀를 내두를 정도다.


흡연은 또래의 '가오 잡기' 문화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생각보다 중증으로 중독된 아이들은 친구의 흡연을 뜯어 말리는 의리도 있다.


-딱 한 모금만 해 보자고 간청을 하는데도 죽어도 안 주더라고요. 자기는 하루 한 갑씩 피면서 저는 한 모금도 안 된대요.


얼마 전에 고3이 직접 해 준 이야기다.

이 고3은 1순위 노안 계열에 속하는 아이라 결국 집 앞 편의점에서 블루베리 향 1회용 전자담배를 샀고

그걸 학교 옥상에서 친구들과 나눠 피운 뒤 담배를 끊었다(고 하지만 나는 의심의 눈초리를 유지하고 있다).

얘한테 한 모금도 안 준 그 골초 녀석도 예전에 가르쳤던 아이이고 골초의 형인 골초골초도 가르쳤었는데,

골초골초 형이 고등학교 때 한 개비로 시작한 흡연이 현재 하루 한 갑을 거뜬히 넘기는 수준으로 중독되었고

동생인 골초 녀석도 형의 담배를 훔쳐 피다가 2년이 못 되어 한 갑씩 피는 애가 되었다.

고3 노안은, 친구 골초가

-아...이제 아침에 그게 안 선다. 이게 다 담배 탓이다. 넌 하지 마라.

라고 했다는 말까지 전해 주었다.


나는 담배 피는 애들을 정말 잘 잡아내는 편인데

민트 껌과 사탕이 주머니에 늘 들어 있는 애, 리스테린 가글, 온갖 향수와 바디 스프레이 향을 풍기는 애,

집에 가기 전에 골목을 한 바퀴 도는 애, 학원 옥상을 궁금해 하는 애, 평소 안 사귀던 라인의 친구들이 갑자기 늘어난 애, 쌤은 담배 피워본 적 있어요? 묻는 애, 니코틴이 그렇게 몸에 나빠요? 하는 애 등등,

자기들이 다 흘리는 순진한 경우도 많다.


정수리 대 봐라, 한 뒤에 사실 아무 냄새가 안 나도

어? 너 정수리에서 멘솔 냄새 나는데? 하면

-멘솔은 안 해요!

라고 소리치다가 걸리기도 하고

-방금 피씨방 갔다와서 그래요.

-너 방금 아빠 차 타고 내린 거 봤는데.

하다가 알리바이가 들통나기도 하고

-요샌 정수리 냄새로는 못 찾아요, 쌤. 제가 얼마나...

하다가 서로 먼 산을 보기도 한다.

   

골초골초를 가르칠 때 그 아이도  

수능만 끝나면 끊겠다고, 못 끊으면 자기가 사람이 아니라고 큰소리를 빵빵 쳤는데


수 년이 지난 지금까지 사람이 되지 못하고 있다.


담배를 시작하지 않는 게 가장 좋겠지만

처음 시작했을 때 거기서 더 나아가지 못하도록 하는 게 사실 더 중요하다.

 

중학교 내내 전교 3등 안에 들던 과학고 지망 아이가 있었는데,

호기심에 그 학교 노는 애와 점심 시간에 골목에서 담배를 한 대 처음 피우다가 딱 걸려서

교무실에 불려갔다.


그때 이 3등이 느낀 것이,

똑같이 담배를 피웠고, 똑같은 잘못을 했는데

노는 애는 잡초 뽑기 봉사를 벌로 받고

자신은 담임한테 과일 바구니를 받아서 그게 너무 부끄러웠다고 했다.

집에 갔더니 아버지 어머니도 가만히 한숨만 쉬시고,

담임은

-네가 얼마나 학업 스트레스가 심하면, 너 같이 잘하는 애가 그랬겠느냐. 이거 먹고 힘내서 열공해라.

라고 하니


이건 마치 <우상의 눈물>에서 반장 형우가 학교 일진 기표를 위해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모으자고 할 때 기표가 느꼈을

수치심 같은 것으로

훅, 몸으로 흡수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얘는 그 뒤로도 담배를 입에 대지 않았다.


우리 사촌은 첫 담배를 했을 때

호흡 곤란으로 응급실에 실려간 뒤 흡연 트라우마가 생겨 그 뒤로 하지 못했다.


마약을 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봐비슷했는데...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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