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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담백 Sep 19. 2021

가르치는 기술, 3

"죽고 싶다고요."


학부모 A가 전화를 걸어 말했다.

ㅡ저는 우리 희아(가명) 국제중 보내고 똑 죽어버리려고요.


네?

나는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물었다.


ㅡ죽고 싶다고요.


A는 취한 듯한 말투로 다시 얘기했다.

통화는 50분 넘게 이어졌다.

같은 말의 반복, 신세한탄과 자녀들에 대한 불만, 우울이 깔린 이야기들이었다.

전화를 끊을 수도 없이 말이 쏟아지고 이어졌다.

파리지옥에 막 떨어진 파리가 된 기분이었다.


희아는 A가 거의 매일 밤 술을 마신다고 했다.


희아도 상태가 불안정했다.

텐션이 너무 높고 자주 히히,하고 웃었다. 그러다가 순식간에 의기소침해졌다.

학교에서도 친구가 없었다. 수업 중에 맥을 끊고 실없는 농담을 던지거나 대꾸를 해서 관심을 끈다는 이유로 '관종'으로 불렸다. 자기중심적으로 행동하다보니 희아를 아는 아이들마다,

ㅡ걔, 비호감이에요.

하고 인상을 쓰곤 했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무조건 사이좋게 지내라고,

방관도 폭력이라고 한다.

아이들의 무관심 속에 방치되어 외로운 아이들을  볼 때면 마음이 아프다.

그러나 국적이나 피부색, 가난을 이유로 무시당하는 소외 말고,

빼앗고 욕하고 정당한 요구를 묵살하는 따돌림 말고


아이들이 도저히 친구로 받아들일 수 없는 유형의 소외도 있다.

어른들도 모두와 친구가 되지는 않듯이.


희아는 그런 유형의 소외를 받는 아이였다.

아무도 친하게 지내고 싶어하지 않는,

양보와 배려와 경청의 기술이 내재되지 않은

비호감 캐릭터였다. 

자신을 보여주지 못해 안달이 난.

ㅡ쟤, 왜 저래.

ㅡ그만 좀 하지.

이런 말을 속으로 품게 만드는.


내가 희아와 또래였다면 과연 희아에게 다가갔을까.

그래도 친하게 지내, 소외와 방관은 나쁜 거야, 라는 말에 찔리기 싫어서 희아와 함께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했을까.

아니었을 것이다.

희아가 궁금하지 않았을 것이다.

버겁고 지치는 아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십분만 대화를 나눠도 진이 다 빠지는.


희아가 다니던 학교의 담임 선생님이

수업을 방해하는 아이를 견디다 못해

A에게 그런 사실을 알리는 전화를 하자

A는 바로 등교를 거부하고 희아를 전학 보내 버렸다.

전학 간 학교에서도 운동장에서 혼자 노는 희아를 봤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희아뿐만 아니라 학부모인 A 역시 또래 엄마들 무리에 끼지 못했다.

A를 잘 아는 다른 학부모의 아이가, 자신의 엄마를 통해 들은 A의 이야기를 전해준 것도 많았다.  그 이야기 속 A는 불쑥 타인의 영역을 침범하는 눈치 없는 천덕꾸러기로 묘사되었다.

엄마들 사이에서도 A의 자리는 없었다.


A는 내가 강의실을 비운 사이 문을 열고 들어와

내가 읽는 책을 살펴보거나

출석부나 아이들의 문제집을 넘겨보곤 했다.

나는 그런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다른 선생님과 수업 대기 중이던 아이들이 내게 알려줘서 그때 알았다.


A는 커피를 마시며 내 강의실을 걸어 다니다가 내가 아끼는 잔을 깨뜨린 적도 있었다.

깨진 조각을 깨끗이 치우고 가지도 않으면서 사과하지도 않아서 나는 누가 내 잔을 깬 건지 한참 몰랐다.

 책을 말도 없이 가져가서 한참동안  그 책을 찾아 다니게 만든 적도 있었다. 아이들에게 혹시 책을 본 적 없냐는 단체문자를 보내고 책을 찾는다는 공지를 써붙이고나서 얼마가 지나서야 희아가,

ㅡ그 책, 저희 차 안에 있어요. 엄마가 가져왔거든요.

해서 A가 가져갔다는 걸 알았다.

A는 며칠 더 책을 가지고 있다가,

읽은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헌 것이 된 그 책을 아무 사과도 알림도 없이 마치 원래 그 자리에 있었다는 듯 대기실 테이블 위에 놓고 갔다.


나는 결국

수리공을 불러 강의실 문손잡이를 교체한 뒤

번거롭지만 문을 잠그고 다녔다.


A는 다른 아이들이 대기실에서 쉬고 있을 때면

옆에 다가가 어느 학원에 다니는지 물어보거나

자기 아이의 문제집을 풀어보게 한 뒤 희아한테 좀 가르쳐 주라고 뜬금없이 부탁하기도 했다.

아이들은,

ㅡ그 아줌마 또 왔어요.

하며 쉬는 시간에도 강의실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그럼에도 A는 아이의 수업이 있을 때마다 종종  학원에 와서 시간을 보냈고 수업이 없을 때조차 학원과 학원 사이의 공강에 들러 커피를 마시고 둘러보다가 자리를 떴다.


내게 말을 걸 때에는

갑자기 확 다가와 내 몸 어딘가에 손을 가만히 대고 마치 왈츠라도 추려는 듯 밀착에 가까운 거리에서 얼굴을 빤히 보며 웃었다,


A와 내가 친밀하게 소통하는 사이냐면 전혀 아니었다.


사실 나는 그런 비지니스가 언제나 부족하다.

네~어머님~ 이런 하이톤을 쓰지 못한다. 

마음에 없는 말도 잘 못하는데

학부모가 듣고 싶어하는 것이 '정확한 문제점'을 지적하는 말이  아니라

'희망'이나 '발전 가능성'에 방점이 찍힌 말이라는 걸 깨닫고부터 더 조심스러워졌다.


어떤 원장이나 강사들은 학부모를 모아놓고 설명회도 하고 다과회도 하고 밴드나 카페를 개설해 정보를 주거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는데,

나는 그런 게 어색하다.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학부모와 했을 때는

되도록이면,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아이에게 말해준다. 

연락하기 전에 어떤 연락을 할 것인지 그 내용도 아이에게 먼저 얘기해 준다.

네가 이러이러한 잘못을 반복했는데 고쳐지지 않아서 이번에는 부모님께 알려야 해,

집에 가서 혼날 수도 있는데 그건 네가 책임져야 할 일이니까 미리 솔직하게 말씀드리도록 해.

그럼 아이가 마음의 준비를 하고 간다.


학부모와 내밀한 이야기를 나눌 만한  관계로 발전할 일은 없는 편이다.


그런데 A가 내게 죽고 싶다는 말을 꺼낸 것이다.


그녀는 학부모들 사이에서도 소외 당했지만

가정에서도 남편과 아이들로부터 별난 사람이라는 눈총을 받았다.

집을 여러 채 소유하고, 아이들이 백만 원이 넘는 운동화를 편하게 신고 다닐 정도로 잘 사는 집이지만,

A는 어디에서도 좋은 대접을 받지 못했고,

나도 그녀가 불편했다.


희아 역시 제멋대로인 것이 달라지지 않아서

친구들로부터 눈치 없다는 얘기를 듣고, 할 말이 있으면 수업을 방해하며 혼자 방방 떠서 이야기를 하느라 바빴다. 학원에 있는 간식은 욕심껏 먹어 치우거나 주머니에 넣어 챙겨가고 쓰레기는 치우지 않았다.

대화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지지 않고

어느 포인트에서 웃는지 모를 때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곤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재였다.

과목마다 학원을 두 개씩 붙이고, 방학 때는 강남에서 수업을 듣고 오곤 했으니

돈으로 밀어올린 성적이기도 했다.

그러나 A가 너무 학원 스케줄을 빡빡하게 잡다 보니 어느 날부터는 피시방에서 살다시피 했고

수업도 종종 말없이 빠졌다.


그래도 나는 아이가 밉지 않았고,

오히려 안쓰러웠다.

아이는 사랑 받는 방법을 몰랐고,

대화 하는 방식을 이해하지 못했다.

언제나 일방적으로 말하거나 맥락을 파괴하거나 지적 허영을 부리거나 하는 식이었으니

게임 할 때 말고는 친구가 있을 리가 없었고

생일에도 혼자였다.

나는 희아와 친구가 되지 않으려는 아이들의 마음도 알 것 같았다.

아이들에게만 무한한 인류애와 포용력을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기도 했다.


희아는 눈물을 글썽이며,

학교를 그만두고 싶다거나 집을 나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종종 하기 시작했다.

엄마의 높은 이상과 야망을 채워주기 위해 매년 더 촘촘해지는 스케줄을 견뎌내지 못했고,

그럼에도 엄마인 A가 자신의 학력에 대해 늘 부끄러워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A가 집에서 학교와 학원 선생님들을 어떤 식으로 비난하는지를 고스란히 들려주기도 했는데,

그런 말들을 들을 때면 머리가 아득해지곤 했다.

그 말들은 모두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해석들이었다.


말이 아니라 칼이었다.

희아는 엄마가 휘두르는 것들을 고스란히 보고 자랐고 이제는 그게 칼이라는 걸 서서히 알아가고 있었다.


나는 저 아이가 금방 자랄 텐데, 그때는 A가 무슨 수를 써도 손바닥 안에 들어오지 않을 텐데, 하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쉬고 있는 동안 A가 말도 없이 불쑥 강의실로 들어와 요즘 희아의 상태가 어떤지 물어보았다.

기왕 들른 거 말을 해줘야겠다 싶었다.

희아와 A 두 사람의 기 싸움이 둘 모두를 무너지게 하고 있었으니까.


아이가 어떤 점에서 힘들어 하고 있는지,

그녀가 지나치게 푸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이의 상태를 알려주면서 차분하게 이야기했다.

아이는 숙제를 해온 적이 없고 수업에도 집중하지 못했으며 항상 피곤해 하고 있었다.

꿈도 없고 성취 욕구도 없이 완전히 번 아웃된 상태였고

머리에 뭘 더 집어넣는 건 아무 의미없는 짓이었다.

아이는 폰을 그만 만지라는 엄마의 말에 이성을 잃고

엄마의 머리카락을 잡고 쌍욕을 하며 싸우기도 했다.


내 말을 듣는 동안 A는 낯빛이 변하더니 강의실을 나갔다.

 장문의 문자를 보내 나를 비난했다.

손이 벌벌 떨리고 너무 기분이 나쁘다며, 자신이 열심히 아이를 지원하고 있는 것에 대해 변명하는

긴 이야기였다.

아이는 그녀의 방패가 되었다가 날개가 되었다.

A는 아이와 함께 날아오를 날을 기다렸다.


아이는 그녀에게 날개를 떼어 줄 마음이 없는데도.


A는 나와 통화한 걸로 모자라 실장님에게 전화를 걸어 목소리를 높여 한 시간 동안 나를 비난했다.

아무 사전 정보도 없이 욕받이가 되었던 실장님은, 도대체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며, 제정신이 아닌 사람 같다고 했다.


아마 내가 그녀 마음 안에 있는 어떤 뾰족한 지점을 건드린 탓이리라.

내가 너무 깊이 그 불안한 자존감을 찌른 탓이리라.


나는 대응하지 않았다.

그랬더니 결국

그 다음날에 내게 전화를 걸어,

"죽고 싶어요."라고 말을 한 것이다.


내게 관심을 가져 줘요,라는 말로 들렸다.


당연한 수순으로 희아는 더 이상 내 수업을 듣지 않았고

그들은 얼마 뒤 우리나라에서 학군이 가장 좋은 곳으로 이사를 갔다.


아이가 학교 선거에서  패하고

학교 선생님과도 마찰이 생기자

그냥 전학이나 가버릴까?하고 A가 말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지 얼마 뒤였다.


나는 홀가분했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했다.


가진 것이 많아도 행복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걸 그들을 통해 배웠다.

많이 배우고 지위가 높아져도

존경받지 못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더 크게 깨달은 것은

결국 외로움이 어른을 병들게 한다는 점이었다.


ㅡ엄마들이랑 어떻게 친해져야 할지 모르겠어요.


A가 내게 했던 말이 떠오른다.


그때는 내가 이해할 수 없었던 그녀였지만,

지금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녀도 마음을 나눌 곳이 없어 외로웠던 사람이구나, 하는 마음이 든다.

친하지도 않은 나에게

죽고 싶다고 말했던 그녀가 지금 어떤 모습으로 있을지 문득 궁금해진다.

더 격렬한 경쟁과 비교와 오르내림이 있는 그 도시에서,

여기서 가졌던 것들이 큰 변별력으로 작용하지 않을 그 빡빡하고 차가운 곳에서,

여전히 이리저리 치이고 소외되는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을까 마음이 쓰이기도 한다.


어떤 삶을 살든

아이를 통해서가 아닌

물질로 치장한 외부로서가 아닌


자기 안의 외로움을 딛고 우뚝 서서

자존감을 회복했기를.


사랑을, 이해했기를.


희아에게도 마음을 나눌 친구가 생겼기를

바라본다.


두 사람 다, 마음이 단단해졌기를.




가르치는 기술 6,

불안한 사람의 불안을 건드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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