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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담백 Sep 17. 2021

가르치는 기술, 2

친구처럼 대한다는 것


희선(가명)이는 머리가 좋은 중학생이었다.

수업 참여도도 좋고 개념을 이해하는 속도가 빨랐다. 

전교 5등 안에 드는 실력도 실력이지만 크게 애쓰지 않으면서도 공부를 잘했는데 남매가 둘 다 그랬다.


친해지기는 다소 어려운 타입이어서

나는 희선이가 배가 고프다고 할 때면 

치킨이나 떡볶이를 시켜 같이 먹으면서 학교 얘기를 나누곤 했다.

그런 날에는 진도를 마저 마무리해야 하므로 좀 더 시간을 써야 했지만 

아이의 내면이나 기질을 파악하는 데에는 도움이 되었다.


그렇게 다가가면서도 속으로는 물음표가 달리는 일들이 있었는데, 

희선이는 음식을 다 먹고 나면 잘 먹었다는 인사도 없고 먹은 자리를 치우지도 않았다. 

치우는 거야 결국은 내가 하는 게 깔끔하기는 하나, 시늉조차 하지 않는 것은 문제가 있었다. 


게다가 한번씩 툭, 반말을 던졌다.

ㅡ아니, 싫은데.

ㅡ그건 아니고.

이런 말투로 말을 잘라 먹었는데, 학교에서도 그런 행동을 해서 선생님한테 혼났다고 했다.

그런 말을 전할 때에도, 뭘 잘못한 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희선이를 가르치던 시기에 나는 초보 강사여서,

그런 돌발적인 말을 들으면 헛헛하게 웃어 넘기거나 

못 들은 척했다.


나의 회피 전략은 조금도 먹히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희선이가 치킨 한 조각을 먹다 말고 

두 다리를 쭉 뻗었다. 

뭘 하려고 저러나, 하고 잠깐 생각하는 사이 

희선이가 자신의 대각선 방향에 앉아있던 내 허벅지 위에 그 두 발을 턱, 올리는 게 아닌가.

그것도 맨발을.


그 상태로 그 아이는 계속 치킨을 맛있게 먹었다.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어디 한번, 치워보라는 듯이.


나는 그대로 앉아 있다가 수업이 끝난 후 어머니한테 문자를 드렸다.

언어 예절이나 행동이 선을 넘는다는 점을 알리고 주의를 주시라 했다.


어머니는 일단 죄송하다고 한 뒤 희선이와 대화해 보겠다고 했다.


아이가 선생님을 친구처럼 여기고 편하게 생각해서 그런 것인데 이런 얘기를 들어서 

지금 너무 억울해 한다고 장문의 답장을 보내왔다.


억울할 수 있구나. 

억울하다고 받아들일 수도 있구나.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나는 이 아이를 곧 잃겠구나, 생각하며


친구처럼 생각하는 것과

친구로 생각하는 것은 전혀 다른 범주라고 답장했고


어머니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역시 그뒤로 아이는 수업에 오지 않았다.


나는 버릇 없는 어린 아이에게는 그 자리에서 문제를 짚어준다.

어린 아이들은 의외로 어른들에게 사과하는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있다. 

인상 쓰지 않고, 목소리를 높이지 않아도 

사과하는 방식을 가르쳐주면, 순순히 따라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중학생 수준에서, 

인지 능력에 문제가 없고

부모의 온전한 보살핌을 받고 자란 아이가 그런다는 것은

본인 내부에 더 거대한 빙산이 숨겨 있다는 의미라고 생각했다. 


그 빙산을 파내려갈 엄두가 나지 않을 때가 있다.

내가 가진 삽은 너무나 작고 무뎠으므로.


꽃으로도 때리면 안 되지만

꽃으로도 때릴 가치가 없는 일.


어쩌면 희선이는

여전히 자신이 속내에 품고 있던 불편함이나 낯섦에서 비롯된 긴장을

그런 과감한 방식으로 도약해서 잊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가끔 그 아이를 생각한다.

두뇌가 비상하니 좋은 대학에 갔을 것이다. 

사회의 높은 지위를 보다 쉽게 차지하고,

남들보다 빠르게 사다리를 올라갈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아이가 놓친 사소한 것들이 누적되고 겹쳐져,

겉으로는 멀쩡하나 속으로는 빙산을 품은

기울어진 어른으로 컸을 그 아이를 떠올린다.


부딪칠 때마다 얼음 깨지는 소리를 내는 어른들을 볼 때마다

그 어른들이 놓인 지위가 까마득해 보일 때마다


나는 내 몸 위에 올려진

희선이의 두 발을 생각한다.



모욕 당하지 않기 위해 카리스마를 가장해야 하는,

스스로 다른 낯을 써야 하는 이 일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가르치는 기술, 2

친구가 되지는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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