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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담백 Sep 17. 2021

가르치는 기술, 1

방패가 많은 아이


설아(가명)는 질문을 하면 흠칫 놀란다.

내 눈을 보지도 않는다.

내 눈 속에서 가시라도 돋는다는 듯이.

아이가 움츠리면 나도 같이 어깨를 옹송그리게 된다.


집에서는 재잘재잘 수다쟁이라고 한다.

밖에만 나오면 말이 뚝 멎는다.

그 속이 얼마나 와글와글 할까.

말에 체한 가슴이 얼마나 답답할까.


지우개가 없어요,

이 낱말 뜻을 모르겠어요,

화장실에 가고 싶어요,

이런 일상적인 말이 어려워서

아이는 꿈틀거린다. 

내가 그 꿈틀거림을 눈치챌까봐 더욱 몸을 움츠리며.


어쩌다 귀여운 그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질문을 하거나

틀린 글자가 있어 교정해주면

어...하면서 어쩔 줄 몰라 한다.

자신도 모르게 바지에 손을 넣어 엉덩이를 만지고 그 냄새를 킁, 맡는다.

몸 냄새를 맡는 것은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한 것이다.


나는 한발 물러서서 아이를 주시하지 않으면서 천천히 다시 풀어보라고 한다.

얼마나 더 물러서 있어야, 아이가 나를 바라볼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그런 순간 알게 된다.

누군가를 바라보지 않고 그 대상에게 말을 거는 것이 얼마나 부자연스럽고 기묘한 각도의 일인가를.

나는 책상의 한 귀퉁이를, 혹은

창밖 나무에 앉아 우는 새를, 혹은 더 먼 곳의

뭉게구름이나

바람이 움직이는 흔적을 눈으로 좇으면서


건너편이나 대각선에 앉은 아이를 향해

말을 해야 하는 것이다.

새나 바람에게 말을 걸기라도 하는 듯이.


그 말이 닿는 과정을 보지 못한 채.


한 아이가 허공을 가로지르는 내 말을 붙잡아

귀에 집어넣으려고 필사적으로 버둥거리는 고통을,

자신의 말을 뱉어내기 위해 스스로의 몸을 긁고 고릿한 냄새를 맡아야만 하는 번거로움을,

고요한 강의실 안에서

벌어지는 이 모든 소란스러운 침묵의 과정에 대해,


어쩌면 나는 모르고 싶어서

구름이나 새를 바라보는 건지도 모른다.

낯선 나라에서 읽을 수 없는 목적지가 팻말로 걸린 버스를 타고 

그저, 실려가는 기분으로. 

어딘가에, 언젠가는, 도착하겠지 하는 체념으로.


내게 선택적함구증이 있었을 때

선생님들이 집요하게 말을 걸었던 걸 떠올리면서.


진짜 하고 싶으면, 결국 하게 되어 있는 거야. 


그런 말은, 거짓.


말하지 못해도

아이는 모든 걸 안다.

몸이 언어인데

내가 못 알아 '읽는' 것이다.


가르치는 행위는 말을 매개로 하지만

말만으로는 가르칠 수 없다.


설아와 나 사이에 있던 그 수많은 쉼표들.


여러 시간이 흐른 뒤에 아이가 내게 먼저 말을 건 순간이 생각난다.

내 눈을 바라보던 빛나는 두 눈도.

ㅡ저 지우개 새로 샀어요!


나는 그 지우개로 지우고 싶은 나의 말들이 참, 많았다.




가르치는 기술,1

질문 뒤에는 대답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질문 뒤에는 기다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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