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아(가명)는 질문을 하면 흠칫 놀란다.
내 눈을 보지도 않는다.
내 눈 속에서 가시라도 돋는다는 듯이.
아이가 움츠리면 나도 같이 어깨를 옹송그리게 된다.
집에서는 재잘재잘 수다쟁이라고 한다.
밖에만 나오면 말이 뚝 멎는다.
그 속이 얼마나 와글와글 할까.
말에 체한 가슴이 얼마나 답답할까.
지우개가 없어요,
이 낱말 뜻을 모르겠어요,
화장실에 가고 싶어요,
이런 일상적인 말이 어려워서
아이는 꿈틀거린다.
내가 그 꿈틀거림을 눈치챌까봐 더욱 몸을 움츠리며.
어쩌다 귀여운 그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질문을 하거나
틀린 글자가 있어 교정해주면
어...하면서 어쩔 줄 몰라 한다.
자신도 모르게 바지에 손을 넣어 엉덩이를 만지고 그 냄새를 킁, 맡는다.
몸 냄새를 맡는 것은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한 것이다.
나는 한발 물러서서 아이를 주시하지 않으면서 천천히 다시 풀어보라고 한다.
얼마나 더 물러서 있어야, 아이가 나를 바라볼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그런 순간 알게 된다.
누군가를 바라보지 않고 그 대상에게 말을 거는 것이 얼마나 부자연스럽고 기묘한 각도의 일인가를.
나는 책상의 한 귀퉁이를, 혹은
창밖 나무에 앉아 우는 새를, 혹은 더 먼 곳의
뭉게구름이나
바람이 움직이는 흔적을 눈으로 좇으면서
건너편이나 대각선에 앉은 아이를 향해
말을 해야 하는 것이다.
새나 바람에게 말을 걸기라도 하는 듯이.
그 말이 닿는 과정을 보지 못한 채.
한 아이가 허공을 가로지르는 내 말을 붙잡아
귀에 집어넣으려고 필사적으로 버둥거리는 고통을,
자신의 말을 뱉어내기 위해 스스로의 몸을 긁고 고릿한 냄새를 맡아야만 하는 번거로움을,
고요한 강의실 안에서
벌어지는 이 모든 소란스러운 침묵의 과정에 대해,
어쩌면 나는 모르고 싶어서
구름이나 새를 바라보는 건지도 모른다.
낯선 나라에서 읽을 수 없는 목적지가 팻말로 걸린 버스를 타고
그저, 실려가는 기분으로.
어딘가에, 언젠가는, 도착하겠지 하는 체념으로.
내게 선택적함구증이 있었을 때
선생님들이 집요하게 말을 걸었던 걸 떠올리면서.
진짜 하고 싶으면, 결국 하게 되어 있는 거야.
그런 말은, 거짓.
말하지 못해도
아이는 모든 걸 안다.
몸이 언어인데
내가 못 알아 '읽는' 것이다.
가르치는 행위는 말을 매개로 하지만
말만으로는 가르칠 수 없다.
설아와 나 사이에 있던 그 수많은 쉼표들.
여러 시간이 흐른 뒤에 아이가 내게 먼저 말을 건 순간이 생각난다.
내 눈을 바라보던 빛나는 두 눈도.
ㅡ저 지우개 새로 샀어요!
나는 그 지우개로 지우고 싶은 나의 말들이 참, 많았다.
가르치는 기술,1
질문 뒤에는 대답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질문 뒤에는 기다림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