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이 이야기

36화 날아 온 물고기

by 작가

36화 날아 온 물고기


하노이에 도착한 지 채 일주일도 안 되었을 때다.

‘현지 적응? 그건 나중 문제고 지금은 일단 밖으로 나가보자!’라는 이상한 용기가 불쑥 솟았다.

그래서 나는 구글맵을 켜고 가장 가까운 공원을 선택했다.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그랩을 불렀다.


낯선 도시에서의 첫 나들이 ...

우리 모자의 어리바리한 모험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준이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공원이라고 표시되어 있던 그곳은…


공원이라기보다는 ‘공사장과 방치된 자연의 콜라보 무대’ 같았다.

한쪽은 한창 공사 중이라 먼지가 풀풀 날리고 다른 한쪽은 러닝족들이 아무렇지 않게 땀을 뻘뻘 흘리며 지나가고 있었다.

바로 옆에는 쓰레기들이 둥둥 떠다니는 물인지 폐수인지 정체불명의 호수가 자리 잡고 있었고.

그야말로 “혼돈의 카오스가 바로 이런 거구나”를 눈으로 확인하는 느낌이었다.

준이는 공원이라고 해서 상상했던 깨끗하고 평온한 모습을 찾을 수가 없자

얼굴이 순식간에 굳었다.

그 반응을 보며 나는 또 묘하게 웃음이 나왔다.


아이를 데리고 먼 타국에 와서 첫 외출이 이런 곳이라니......

이걸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결국 웃음이 먼저 나오는 내가 참 대단했다.

우리는 그래도 용기를 내서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준이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엄마!! 발에 뱀 있어!! 빨리!!!”


나는 심장이 턱 내려앉았다.

하노이에 와서 첫 외출인데 나오자마자 큰일을 치르는건 아닌가 걱정되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준이 발을 봤다.

뱀은 없었다.


대신 담쟁이덩굴 한 줄기가 그의 샌들에 얌전히 걸려 있을 뿐이었다.
나는 안도와 허무와 웃음이 동시에 터지는 복합 감정을 느꼈다.

준이는 약간 민망한 듯 “아… 덩굴이네…” 하며 슬쩍 주변을 둘러봤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몇 걸음 더 걷자 준이가 또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엄마… 신발 안에 벌레 들어갔어…”

벌레라니?

벌레면 또 난리 나는 건데.


조심스레 신발을 탈탈 털어 보았다.


벌레는 없었다.

대신 조약돌 하나가 ‘안녕?’ 하며 굴러나왔다.

나는 또 한 번 웃음을 터뜨렸다.


“준아, 오늘은 겁쟁이 날이야?”
준이는 얼굴이 빨개져서 “아니거든!” 했지만 이미 귀엽고 기특하고 엉뚱한 그 모습에 나는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그렇게 우리는 조심스럽게 그리고 재밋게 공원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조금 더 들어가니 상황은 더욱 안좋아 보였다.

호수 위에 죽은 물고기 떼가 떠 있었던 것이다.


더 놀라운 건 그 중 몇몇 물고기들은 죽은 물고기 위에서 점프를 하고 있었다.

마치 이 호수를 떠나 다른 곳으로 가고 싶은 듯 필살의 힘으로 점프를 하고 있었다.

죽은 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 펄떡펄떡 하며 물 위를 튀어 오르는 물고기들이 많이 보였다.


준이는 눈을 휘둥그레 뜨며 말했다.
“엄마… 살아있어!”
그 목소리는 두려움 반 놀라움 반 그리고 아주 조금의 흥분이 섞여 있었다.

그러다
물고기 한 마리가…

정확하게 말하면 거의 ‘폭탄’ 급으로 튀어 오르더니 우리가 걷고 있던 바로 앞쪽으로 날아온 것이다.


툭—!


그리고 땅바닥에서 파닥파닥 춤을 추기 시작했다.

나도 준이도 동시에 비명을 질렀다.
“으악!”
“사람 살려!”


물고기 하나에 우리모자가 이렇게 혼비백산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돌아보니 한참 멀리 와 있었다.


숨을 헐떡이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서로를 위안하며 다시 한참을 웃었다.


집으로 돌아 오는 내내 "엄마 물고기가 점프해서 우리 앞에 떨어 졌지?"

"아빠한테 말해줘야 겠다" 면서 흥분해서 떠들어 댔다.

이건 정말 누구에게 설명해도 믿어줄까 싶을 해프닝이었다.

그 사건을 격고 나서 준이는 조금 달라졌다.
하노이라는 도시를 두려워하기만 하던 마음에 조금씩 호기심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세상엔 내가 모르는 것이 많구나.’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이상한 일도 있을 수 있구나.’
그런 생각들이 준이의 마음에 쌓여갔던 것 같다.

그 이후 준이는 놀라울 정도로 빨리 적응했다.
호수 근처에 도마뱀이 스르륵 나타나도 소리 지르지 않았다.
어느 날은 심지어 맨손으로 도마뱀을 잡았다.


돌이켜보면 하노이 첫 나들이는 우리 모자에게 ‘적응이란 이런 거야’라고 알려주는 인생 수업 같았다.


조금 더럽고 조금 위험해 보이고 조금 예측 불가능한 풍경 속에서 우리는 웃었고

놀랐고

도망쳤고

결국 강해졌다.

새로운 환경에 아이를 데려오는 건 아이에게 새로운 눈을 열어주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는 반드시 엄청난 허둥지둥과 예측 불가의 사건들과 엉뚱한 웃음들이 동반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하노이의 그 공사 중이던 공원

쓰레기 둥둥 떠다니는 호수

날아다니던 물고기.


사람들은 그런 곳을 보고 “아이고 왜 저런 데를 갔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와 준이에게는 그곳이 겁 많던 마음을 용감하게 바꿔준 장소였고
새로운 세계를 함께 만난 우리모자의 첫 챕터였고
우리가 조금 더 단단해진 순간이었고
무엇보다 잊을 수 없는 웃음의 원천이었다.


나는 그날을 떠올리면 웃음부터 나온다
“물고기 날아온 날 기억나?”

"엄마 무서웠지?"
“니가 더 무서워했거든?”

위험하고 엉망이었지만 그래서 더 생생하고 그래서 더 사랑스러웠던 하노이에서의 첫 나들이.


우리 모자만의 작은 모험담이자 성장의 비밀 챕터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