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화 엄마 내 다리가 하는 말 좀 들어봐
37화 엄마, 내 다리가 하는 말 좀 들어봐
우리 집 준이는 말을 참 귀엽게 한다.
5학년이라기엔 아직도 너무 순진하다.
요즘 아이들 입에 자연스럽게 붙어 있는 말들 (특히 ‘c’가 많이 들어가는 그 말들)은 아예 몰라서 못 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덕분에 아이의 언어는 조금 느리고 조금 깨끗하다.
어느 날이었다.
학교 계단 앞에서 준이는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뛰지도 않았고 넘어지지도 않았는데 마치 중요한 결정을 앞둔 사람처럼 계단을 한참 내려다보더니 아주 진지한 얼굴로 나를 불렀다.
“엄마.”
“왜?”
“내 다리가 지금 하는 말 들려?”
나는 순간 무슨 소린가 싶어 아이를 봤다.
다리가… 말을 한다고?
“말? 무슨 말?”
그러자 준이는 잠시 숨을 고르고는 자기가 자기 다리가 된 것처럼 입을 열었다.
톤도 살짝 낮췄다.
“오늘은 힘들어요….”
본인 입으로 다리의 말을 대신 전하고 있었다.
너무 웃겨서 웃음이 터질 뻔했지만 참았다.
준이는 아주 진지했다.
계단을 오르기 싫어서 핑계를 대는 얼굴이 아니라 정말로 다리가 자기에게 말을 걸어온 것처럼 느끼는 표정이었다.
“그래서?”
“오늘은 다리가 힘들대. 엘리베이터 타고 가자고 해.”
나는 잠시 아이를 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리의 편을 들어 주었다.
“그래. 다리가 오늘은 많이 일했나 보다.”
그날 우리는 계단 앞에서 잠시 서 있다가 엘리베이터를 탔다.
다리의 말을 전해주는 아들과 그 말을 믿어주는 엄마....
별것 아닌 장면이었는데 왜인지 모르게 웃기고 또 마음이 따뜻해졌다.
준이는 자기 몸을 가끔 ‘나’와 분리해서 말한다.
몸에서 일어나는 작은 변화에도 말을 건다.
아픈 건 그냥 아픈 게 아니라 무언가를 말하고 있는 신호다.
어느 날은 자다가 다리가 저려서 깼다.
보통 사람 같으면 “아 쥐났네” 하고 다시 자거나 “아이고 아파” 정도로 끝날 일이다.
그런데 준이는 달랐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아직 이불도 걷기 전에 아주 다급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엄마!”
“왜?”
“내 발가락… 다 있는지 세어줘.”
순간 잠이 확 깼다.
발가락이… 없어질 리는 없지 않나?
머릿속으로 별의별 생각이 스쳤다.
그런데 아이 얼굴이 너무 진지해서 웃을 수가 없었다.
“왜 그런 생각을 했어?”
“자다가 다리가 너무 이상해서… 혹시 발가락이 어디 가버렸을까 봐.”
나는 아이의 발을 조심스럽게 잡고 하나하나 세었다.
마치 중요한 의식을 치르듯 천천히.
“하나, 둘, 셋, 넷, 다섯. 이쪽도 하나, 둘, 셋, 넷, 다섯.”
그제야 준이는 크게 안도하며 말했다.
“다 있네.”
“응. 다 있지.”
“다행이다….”
그 말에는 설명할 수 없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마치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무언가를 되찾은 사람처럼....
준이는 조금 독특하게 느끼고 독특하게 말을 한다.
다리가 아플 때 “걷기 싫어”라고 하지 않고 “내 다리가 이렇게 말해”라고 말한다.
발이 저리면 “아파”로 끝내지 않고 “혹시 발가락이 없어졌을까 봐” 확인한다.
준이에게 계단은 그냥 오르내려야 할 구조물이 아니다.
다리와 협의해야 하는 장소다.
발가락은 당연히 있는 신체 일부가 아니라
아침마다 확인해야 할 소중한 존재다.
가끔은 걱정이 된다.
‘5학년인데 너무 순진한 거 아닐까?’
‘세상이 이렇게 만만하지 않은데…’
하지만 생각해 보면 이 아이는 자기 몸의 말을 듣고 자기 상태를 함부로 몰아붙이지 않고
힘들면 힘들다고 말할 줄 아는 능력을 이미 가지고 있다.
우리는 어른이 되면서 몸의 말을 무시하는 법부터 배운다.
“이 정도는 참아야지.”
“이쯤이야 견뎌야지.”
그러다 어느 날 몸이 아프다고 소리쳐도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 못하게 된다.
몸은 계속 말을 하는데 우리는 듣는 법을 잊어버린다.
계단 앞에서 멈춰 서서 “오늘은 힘들어요”라고 말하던 준이의 다리가 나는 자꾸 생각난다.
아침마다 발가락을 세어 달라던 그 작고 엉뚱한 불안도 떠오른다.
그 순수함이 언젠가는 세상에 닳아 없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오늘 하루만큼은 나는 여전히 준이의 다리와 발가락 편을 들어준다.
“그래, 오늘은 힘들 수 있지.”
“그래, 다 있네. 다 괜찮아.”
5학년답지 않게 귀여운 이 아이가 부디 오래도록 자기 몸의 말을 듣는 어른으로 자라길 바라면서.....
그리고 나 역시 아이 덕분에 오늘도 내 몸의 말을 조금은 더 듣게 된다.
“오늘은… 조금 쉬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