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 “휴지 주세요!”라고 외친 날
39화 “휴지 주세요!”라고 외친 날
아이의 성장은 예상 밖의 장소에서 일어나기도 한다.
우리 집 준이의 성장은 하필이면 학교 화장실 변기 위에서 일어났다.
체육시간이었다고 한다.
뛰고 구르고 숨이 차오르던 그 순간에
준이는 아주 절박한 신호를 몸으로부터 받았다고 한다.
아이의 배는 아이에게 언른 화장실로 가라고 명령을 내렸다.
지금이다.
지금 가야 한다.
준이는 참고 참아 화장실까지는 무사히 도착했다.
그리고 일을 봤다.
여기까지는 아주 평범한 학교 일상이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휴지가 없었다.
그 상황을 상상해 보자.
아이 입장이 되어서 그 좁은 칸 안에 갇힌 기분을.....
나갈 수도 없고
그대로 있을 수도 없고
문 밖에 친구들도 없고
시간은 계속 흐르고
체육수업은 끝나려면 한참 남았다.
준이는 그때 너무 답답하고 무서웠다고 했다.
그리고 너무 창피해서 많이 울었다고 말했다.
그 울음 사이에서 준이는 선택을 해야 했다.
계속 혼자 버틸 것인가....
아니면 도움을 요청할 것인가.....
그리고 아이는 아주 큰 목소리로 외쳤다.
“휴지 주세요!”
화장실에 울려 퍼졌을 그 목소리를 상상해 본다.
어른인 나도 얼굴이 화끈거릴 만큼 용기가 필요한 외침이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웃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모른 척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행히 청소하시는 아주머니가 그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아무 일 아니라는 듯 당연하다는 듯 휴지를 건네주었다고 한다.
이야기를 들려주던 준이는 그날을 ‘고생한 날’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나 오늘 진짜 많이 고생했어. 근데 나 이제 많이 큰 것 같아.”
그 말을 하는 얼굴에는 자랑과 안도가 함께 있었다.
준이는 그날 도망치지 않았다.
혼자서 감당하려다 결국 무너지지도 않았다.
울면서도 떨면서도 도움을 요청하는 방법을 배웠다.
그건 정말 대단한 일이다.
어른이 되어서도 “도와주세요”라는 말은
어렵고도 중요한 말이기 때문이다.
집에 돌아와서 준이는 몇 번이고 그 이야기를 반복했다.
“그때 진짜 무서웠어. 근데 소리 안 질렀으면
계속 거기 있었을 것 같아.”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우리 인생도 그와 비슷하다 생각했다
지금 이 상황에서 나만 이런가?싶어서 입을 다문 채 버티다가 더 깊이 갇혀 버릴 때가 있다.
준이는 그 날 화장실에서 나오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세상에 나오는 법도 조금은 배웠을 것이다.
아이는 그날 똥을 싸면서(?)
자존심을 내려놓는 법을 배웠고
도움을 받아도 괜찮다는 걸 배웠고
울면서도 말할 수 있다는 걸 배웠다.
그래서 나는 "준아 그날 네가 한 일은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일이야.
그리고 엄마는 안단다. 그 외침이 네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연습이었다는 걸" 이렇게 말해 주고 싶었다.
“휴지 주세요.”
그 한 문장에는
“저 지금 좀 힘들어요.”
“저 혼자서는 안 돼요.”
“도와주세요”
라는 말이 다 들어 있었을 테니까.......
그 날 준이는 조금 더 자랐다.
그리고 나는 아이를 키운다는 게 이렇게 예기치 못한 순간에 가슴이 꽉 차오르는 일이라는 걸 또 한 번 배웠다.
성장은 변기 위에서 눈물 속에서 그리고 용기 하나를 짜내는 사소한 순간에
조용히 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