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화 나무로 만든 걱정 하나
40화 나무로 만든 걱정 하나
준이는 학교에서 피노키오를 만들고 연극을 했다.
이야기는 누구나 아는 피노키오였다.
나무 인형이 거짓말을 하면 코가 길어지고 결국 진짜 사람이 되는 이야기.
연극이 끝난 뒤 준이는 집에 와서도 한동안 피노키오 이야기를 놓지 못했다.
나는 그저 “오늘 연극 재미있었어” 정도의 반응을 기대했는데 준이는 전혀 다른 질문을 꺼냈다.
“엄마, 피노키오 사람이 돼?”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설거지를 하다 말고 돌아본 나는 별생각 없이 말했다.
“당연히 사람 되지.”
그 순간 준이의 얼굴이 굳었다.
마치 큰 일을 들킨 사람처럼 아니면 아주 중요한 가설이 무너진 과학자처럼....
“아니야. 안 돼.”
준이는 단호했다.
나는 웃으며 “왜?”라고 물었지만 준이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았다.
그저 어딘가 불안한 눈빛으로 도복을 입었다.
곧 검도 갈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검도 차량을 기다리며 준이는 옆에 있던 형에게 다시 물었다.
“피노키오 사람 돼?”
형은 아무 생각 없이 대답했다.
“응.”
그 순간 준이의 동공은 지진이 났다.
마치 세상이 예상과 다르게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은 사람처럼 말이다.
“안 돼!!”
준이는 갑자기 소리쳤다.
나는 깜짝 놀라서 쳐다봤다.
“왜 안 되는데?”
“그럼 큰일 나잖아!”
그리고는 아주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실험해 보자 !!나무 주워서 피노키오 만들고!! 사람이 되는지 오늘 지켜보면 알겠지!”
나는 그 말을 듣고 웃음이 터졌다.
하지만 웃을 수 없었다.
준이는 지금 장난을 치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준이에게 피노키오는 단순한 동화 속 인형이 아니었다.
자기가 만든 피노키오가 혹시라도 사람이 될까 봐 자기 손으로 만든 무언가가 갑자기 살아 움직일까 봐 그 가능성이 준이 마음속에서는 아주 현실적인 걱정이 되어 있었다.
아이의 상상력은 언제나 어른보다 한 발 앞서 있다.
어른에게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아이에게는 충분히 논리적인 세계다.
나는 순간 머리를 굴렸다.
논리로 설득할 수도 웃어넘길 수도 없었다.
준이는 이미 “실험”이라는 단어까지 꺼낸 상태였다.
그래서 나는 최대한 태연하게 그러나 확신에 차서 말했다.
“준아, 괜찮아. 제페토 할아버지가 만든 것만 피노키오야.”
준이는 나를 똑바로 바라봤다.
“진짜?”
“응. 제페토 할아버지는 특별한 사람이거든
네가 나무 주워서 만든 건… 음… 짭퉁이야.”
나는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짭퉁은 사람 안 돼.”
잠시 정적이 흘렀다.
준이는 머릿속에서 무언가를 계산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 그럼 다행이다.”
그제야 준이는 안심했다.
검도 차량이 도착했고 준이는 평소처럼 차에 올랐다.
아까까지의 불안은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진 얼굴이었다.
차가 떠난 뒤 나는 한참을 서 있었다.
웃음이 나기도 했고 마음이 찡해지기도 했다.
아이들은 세상을 실험하며 산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가능성까지도 진지하게 고민한다.
어른이 보기엔 엉뚱한 질문 하나에도
아이의 세계에서는 큰 철학이 담겨 있다.
‘내가 만든 것이 내가 원하지 않는 존재가 되면 어떡하지?’
‘내 손에서 시작된 일이 통제할 수 없는 결과로 이어지면?’
어쩌면 그날 준이가 걱정한 건 피노키오가 아니라 자신의 선택과 상상력의 힘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날 아이에게 필요한 건 완벽한 정답이 아니라 안심할 수 있는 이야기 하나라는 걸 깨달았다.
“괜찮아.”
“너가 만든 건 위험하지 않아.”
“세상은 아직 너에게 그렇게 갑작스럽지 않아.”
그 말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지금은 나라는 사실이 조금은 벅차고 조금은 고마웠다.
언젠가 준이도 피노키오는 결국 사람들이 만든 이야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동화속 피노키오는 사람이 되지만 준이가 만든 나무 피노키오는 그저 나무로 남아도 괜찮다.
아이의 하루가 불안 대신 웃음으로 끝났다면
그걸로 충분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