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준이의 중학교
41화 준이의 중학교
준이가 곧 6학년이 된다.
이 사실은 생각만 해도 마음 어딘가가 아려온다.
‘이제’라는 단어가 따라붙기 때문이다.
이제 고학년
이제 중학생
이제는 그래도 좀 알아야 하는 나이.
하지만 내 눈에 준이는 여전히 유치원생 같다.
학습이나 몸은 어찌어찌 중학생의 외형을 만들어 줄 수는 있을 것 같다.
키도 더 클 것이고 공부야 시키면 잘은 못 해도 따라는 한다.
그런데 마음만은 그렇지 않다.
준이의 마음은 아직도 질문이 많고
세상이 다 믿어지고
말 한마디에 하루가 흔들리는
그저 아이만의 속도로 천천히 자라고 있다.
그래서 중학교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을 때 나는 자꾸만 다른 길을 떠올렸다.
대안학교나 시골의 작은 학교같이 아이 수가 적고 자연이 가까운 곳 말이다.
경쟁보다 기다림이 있는 곳.
준이가 상처받지 않아도 되는 곳.
어느 날 조심스럽게 물었다.
“준이야, 너 돌멩이랑 나무 좋아하잖아. 자연도 좋아하고. 우리 이사 갈까?”
준이는 고개를 들자마자 단호하게 말했다.
“안 돼.”
왜냐고 묻자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말했다.
“여기가 너무 좋단 말이야.”
나는 다시 물었다.
“뭐가 그렇게 좋아?”
그러자 준이는 손가락으로 하나씩 세기 시작했다.
“여기는 롯데리아도 있고, 교촌치킨도 있고.”
나는 웃음을 참았다.
그런데 준이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청개구리도 있고, 시냇물도 있고. 학원도 있고, CU도 있어.”
그 목록은 이상하게도 완벽했다.
아이의 세계가 정확히 들어 있었다.
자연과 편의점
패스트푸드와 청개구리
학원과 시냇물.
이것은 준이가 이 동네를 살아온 시간이고 익숙함이고 안전지대였다.
내가 떠나고 싶었던 곳은 준이가 지켜내고 싶은 곳이었다.
나는 마음이 조급해져서 조금 잔인한 말을 꺼내고 말았다.
“근데 중학교 가면 친구들이 너 보고 방해하지 말라고 구박할 수도 있어.
그래도 여기 중학교에 가고 싶어?”
준이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나는 소원이 있어.”
그리고 아주 또렷하게 말했다.
“교복 입고 친구들이랑 롯데월드 가서 추로스 먹을 거야.”
그 순간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너무 평범해서 그래서 더 아픈 소원이었다.
누군가는 쉽게 이룰 수 있는 그 장면이 준이에게는 ‘소원’이 되어 있었다.
나는 괜히 현실적인 어른처럼 말했다.
“너랑 추로스 먹어줄 친구는 없을 것 같아. 친구들은 다 대학 가야 해서 바쁘거든.”
준이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나도 그럼 대학 따라가면 되잖아.”
그 말이 웃겨서 웃어야 했는데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준이는 언제나 이렇게 세상을 해결한다. 복잡한 문제를 단순하게 그러나 진심으로.
친구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말 앞에서
혼자가 되겠다는 선택이 아니라
‘같이 가겠다’는 대답을 내놓는다.
아직 세상이 자기를 밀어낼 수 있다는 걸 모르는 아이처럼
아니 어쩌면 알면서도 끝까지 믿어보는 아이처럼.
중학교가 두렵다.
준이가 다칠까 봐
혼자 남을까 봐
세상의 말들이 너무 날카로울까 봐.
하지만 동시에 나는 이 아이가 지켜온 세계를 존중하고 싶다.
롯데리아와 청개구리가 공존하는 동네 추로스 하나에 미래를 그리는 마음.
준이는 아직 모른다.
세상은 생각보다 빠르고
사람들은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걸.
그래도 나는 이 아이가 쉽게 부서지지는 않을 것이란 것도 안다.
준이의 중학교 생활은 아직 상상이 안 된다. 그래도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이 아이는 오늘도 자기 속도로
자기 논리로
자기 소원을 품고 자라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 곁에서 아이가 대학을 따라갈 필요 없는 세상을
혹은 혼자여도 괜찮은 마음을
천천히 준비해 주고 싶다.
지금은 아직 교복 입고 추로스를 먹는 꿈이 전부인 아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