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화 절대음감일까? 절대 자유일까?
42화 절대음감일까? 절대자유일까?
준이는 특정 음을 잘 기억해 낸다.
아주 어릴 적 말은 못 했지만 노래는 했다.
요괴메카드 주제가를 처음 들었을 때였다.
가사는 엉성했지만 멜로디는 정확했다.
카봇 노래도 정확하게 불렀다.
그때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 아이… 혹시 절대음감?’
부산에 살던 시절엔 그 의심이 거의 확신으로 굳어졌다.
어느 날부터 준이는 부산아쿠아리움 광고 노래를 통째로 외워 불렀다.
“바닷속 친구들이 기다리는 재미난 세상
우리 함께 가봐요 부산아쿠아리움
나는 무시무시한 상어 카리스마 눈빛이 멋지지
나는 미소천사 가오리 살인미소 한방에 쓰러져
우린 턱시도 신사펭귄 뒤뚱뒤뚱 걸음도 귀여워
바닷속 친구들이 들려주는 신비한 세상
우리 함께 만나요 부산아쿠아리움
나는 배불뚝이 해마 알 품는 아빠 신기해
나는 푸른 바다거북 야금야금 식탐대왕이지
우린 개구쟁이 수달 숨바꼭질놀이는 즐거워
바닷속 친구들과 만나보는 환상의 바다
모두 함께 떠나요 부산아쿠아리움 “
그 긴 노래를 그것도 꽤 정확한 음으로 부르고 있었다.
나는 소름이 돋았다.
말로는 “물 줘”, “싫어”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던 아이가 노래로는 이렇게 많은 말로 표현을 할 줄 알았다.
‘아, 이 아이는 말 대신 노래를 쓰는구나.’
‘뮤지컬처럼 살면 되겠네.’
‘우리 집은 이제 노래로 대화하는 가족이 되는 건가.’
나는 혼자서 많은 생각으로 먼 미래를 그렸었다.
시간은 흘러 준이는 6학년이 되었다.
교과서에는 ‘얼굴’이라는 노래가 실려 있었다.
방학이라 할 일이 없던 우리 둘은 마주 앉아 그 노래를 불러 보았다.
그리고 나는 다시 깨달았다.
아…
이 아이는 절대음감이 아니라 절대음치구나.
몇 날 며칠을 불러도 음이 맞지 않았다.
같은 부분에서 늘 틀렸다.
내가 한 음을 잡아주면 준이는 그 음을 피해 도망가듯 다른 음으로 갔다.
“아니야, 여기서 올라가야 해.”
“아니, 내려가.”
“준아, 다시.”
다시.!!!
또 틀림!!!
나는 속으로
‘그때 부산아쿠아리움 노래는 뭐였지?’
‘내가 뭘 착각한 거지?’
별의별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온 가족이 함께 차를 타고 에버랜드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갑자기 정말 뜬금없이 준이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환상의 나라로 오세요
즐거운 축제가 열리는 곳
모험의 나라로 오세요
영원한 행복의 나라 에버랜드!”
완벽했다.
박자도 음도 심지어 감정까지....
아 ~이 친구는 이런 친구구나!!
가르치는 노래는 못 부르지만 부르고 싶은 노래는 부르는 아이.
연습해서 맞춰야 하는 노래는 도망가지만 기억 속에 저장된 노래는 정확히 꺼내는 아이.
준이는 노래를 ‘배우는’ 아이가 아니었다.
노래를 ‘필요할 때 쓰는’ 아이였다.
에버랜드 앞에서는 에버랜드 노래를 아쿠아리움에서는 바닷속 친구들을
자기 마음이 움직일 때만 음이 정확해졌다.
그제야 나는 준이에게 노래는 기술이 아니라 마음을 나타내는 언어라는 것을 알았다.
한때 노래로 의사소통을 해볼까 진지하게 고민했었다.
뮤지컬처럼 대화하면 아이의 마음이 더 열릴 거라 믿었다.
하지만 준이는 나의 기대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준이는 그냥 부르고 싶을 때 부른다.
세상이 먼저 말을 걸어오면 그에 맞는 노래로 답한다.
교과서 속 ‘얼굴’은 준이에게 말을 걸지 않았고 에버랜드는 준이에게 말을 걸어주어 아주 큰 목소리로 불렀을 뿐이다.
절대음감이었으면 어땠을까?
음악 영재였으면 좋았을까?
그런 생각을 아주 안 해본 건 아니다.
아니면 어떤가....
그것보다 더 멋진 준이는 절대자유 음감을 가진 아이다.
맞아야 할 음이 아니라 자기 마음이 가는 음만 고른다.
그건 아마도 이 아이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일 것이다.
말로는 더디지만 노래로는 자기 타이밍에 등장하는 아이.
오늘도 나는 준이가 언제 어떤 노래를 꺼내 들지 조금은 기대하며 조금은 웃으며 함께 하루를 시작한다.
혹시 또 모른다.
다음 신호등 앞에서는 롯데월드 노래가 나올지도.....
그때는 그냥 조용히 박자를 맞춰줄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