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이 이야기

46화 비트 A

by 작가

46화 비트 A


아빠가 군 시절 이야기를 해주었다
근무를 서던 밤 무료함을 달래듯 선임이 비트박스를 알려주었다고 했다.
북 치기 박치기 붐붐붐!!


그 이야기를 하면서 아빠는 그때 배운 리듬을 어설프게 흉내 냈다.
준이는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다가 이내 따라 했다.
입술을 오므리고 볼을 부풀리고
입에서 이상한 소리를 끌어올렸다.

그날은 그저 장난처럼 지나갔다.


다음 날 아침이었다.
씻고 나와 무심코 휴대폰을 열었다가 멈칫했다.
이상한 동영상이 여러 개 찍혀 있었다.


주인공은 준이였다.
방으로 가보니 아이는 이미 변신을 끝낸 상태였다.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선글라스를 쓰고
후드티를 꺼내 입고는 거울 앞에서 표정을 연습하고 있었다.
어깨를 들썩이며 아주 진지하게 리듬을 타고 있었다.


내 눈에는 그저 뻐끔뻐끔 금붕어였다.
입술만 분주하게 오물거리는 작은 금붕어.


하지만 준이의 표정은 비장했다.
카메라를 세워두고 혼자서 여러 번 촬영을 반복했는지 영상에는 실패와 재도전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아, 다시.”
“이건 별로야.”
“이번 건 괜찮다.”


자기 목소리를 듣고는 고개를 갸웃하고
리듬이 어긋나면 인상을 쓰고 마음에 들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작은 몸 안에 이미 힙합쏠이 들어와 있었다.


촬영을 마친 준이는 내 앞에 와서 말했다.
“내 영상은 비트 A야.”
왜 A냐고 물으니
“최고니까.”라고 했다.
그리고는 아주 당연하다는 듯 덧붙였다.


“유튜브에 올려줘.”
그 당당함이 웃겼다.
아직 ‘구독’이 무엇인지 ‘조회수’가 무엇인지도 모를 아이가 자기 무대를 세상에 내놓고 싶어 했다.


아이들은 참 이상하다.
어른들이 몇 번을 망설여야 겨우 시작하는 일을 아무 망설임 없이 해버린다.


창피함보다 호기심이 크고 평가보다 표현이 먼저다.

나는 한동안 영상을 다시 돌려 보았다.
금붕어처럼 뻐끔거리며 리듬을 만든다.
그러다 갑자기 자신감이 붙으면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어깨를 튕긴다.


리듬은 솔직히 엉성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안에는 분명한 무언가가 있었다.
‘나를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 같은 그런 것이 말이다.

완벽함이 아니라 흉내에서
능숙함이 아니라 용기에서.


나는 문득 내가 무언가를 그렇게 비장하게 해 본 적이 있었는지 떠올려 보았다.


금붕어처럼 어설퍼도
누가 웃든 말든
그저 좋아서 해본 일이 있었던가.


어른이 된다는 건 어쩌면 그런 비장함을 조금씩 내려놓는 일인건지도 모르겠다.


틀릴까 봐
우습게 보일까 봐
괜히 시작조차 하지 않는 일들이 늘어간다.


그런데 내 앞의 작은 힙합맨은 아무 걱정도 없이 도전한다.
"이건 비트 A야.”
자신을 최고라고 말하는 아이를 어른은 쉽게 말리지 못한다.
나는 결국 영상을 저장해 두었다.


유튜브에 비공개로 슬쩍 올려본다.
세상은 생각보다 빠르게 아이를 평가하니까

공개하긴 부담스러웠다


대신 가끔씩 혼자 꺼내 보기로 했다.
모자와 선글라스를 쓰고
온몸으로 리듬을 만들던 그 모습을


내 눈에는 여전히 뻐끔뻐끔 금붕어다.
하지만 그 금붕어는 자기만의 바다를 이미 상상하고 있다.


언젠가 정말 무대 위에 설지 다른 꿈을 꾸게 될지는 모른다.
중요한 건 지금 이 순간만큼은 자신을 ‘A’라고 믿는다는 것이다.


나는 아이들의 비장함은 우리가 잃어버린 용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언젠가 정말로 세상에 영상을 올려도 될 날이 오면 그때는 이렇게 적어야지.

‘비트 A, 데뷔 영상.’


그날까지 나는 이 작은 힙합맨의 첫 번째 관객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