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이 이야기

47화 도토리의 맛

by 작가

47화 도토리의 맛


준이가 다급하게 "엄마!!"부르며 하교했다.
“엄마! 이것 좀 봐!”
굉장히 숨이 가쁘고 들뜬 목소리였다.

무슨 큰 발견이라도 한 것처럼 두 손을 꼭 쥐고 있었다.


손을 펴 보니 도토리가 한 움큼 쥐어져 있었다.
나는 한숨부터 나왔다.
“다람쥐가 겨울잠 자고 일어나 먹을 거 없겠다. 왜 그걸 다 따오냐.”


준이가 바로 정정했다
“딴 거 아니고 주워왔어.”

본인은 자연을 보호했다는 당당했다


그래도 집에 도토리가 굴러다니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서 말했다.
“버려.”
그런데 준이는 단호했다.
“안 돼.”
그리고는 욕실로 가서 도토리를 씻는다.


'도토리 씻어서 어디다 쓰려고….'


잠시 뒤 식탁 위를 보는 순간 깜짝 놀랐다.
도토리들이…
껍질이 까져 있다.
“왜 깠어?”
준이가 아주 태연하게 말했다.
“이거 도토리묵 만들까?”


나는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왔다.
“이걸로 못 만들어.”
도토리묵은 산에서 주워 온 몇 알로 되는 음식이 아니다.

“그래?”
잠깐 생각하더니 또 질문한다.


“엄마. 묵은 아무 맛도 안 나지?”
“응.”
“그럼 다람쥐는 왜 도토리를 좋아해?”
나는 잠깐 멈칫했다.
생각해 본 적 없는 질문이다.


그래도 엄마의 권위라는 것이 있으니 대충 대답했다.
“다람쥐 이빨이 세니까. 도토리 깨 먹으면 맛있겠지.”
준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말이 없었다.
그냥 조용히 식탁에 앉아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이 조금 이상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집안일을 하고 있는데 한참 뒤 준이가 말한다.
“엄마.”
“응?”
“나 아까 깨 먹어 봤는데.”
“뭘?”
“도토리.”
나는 순간 깜짝 놀라 고개를 들어 이빨과 도토리를 살폈다.
“어?”
“맛없던데?”


나는 저항 없이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걸 왜 먹어봐!"
그런데 준이는 조금 억울한 표정이었다.


“아니 엄마가 맛있을 것 같다며.”
“다람쥐는 맛있을 수도 있지.”


준이는 잠깐 생각하더니 또 물었다.
“다람쥐도 맛없는데 참고 먹는 거 아냐?”
나는 그 말에 완전히 넋이 나갔다.


그럴 수도 있겠다.
겨울을 준비하는 다람쥐가
‘아… 또 도토리네…’
이러면서 먹었을지도 모르겠다.


준이는 아직도 도토리를 하나 손에 들고 있다.
“엄마.”
“왜?”
“다람쥐가 배고파서 맛없는 것도 먹고사나?”


그 질문에 나는 뭐라 대답할지 한참 생각해 보았다.

아이는 도토리를 깨 먹어 보고 그러면서 세상을 알아보려 노력하고 있다.


다람쥐는 왜 이걸 먹지?
맛없는데도 먹는 걸까?

“아마 다람쥐에게 꼭 필요한 영양소가 있어서 밥처럼 먹는 그런 거겠지. 밥도 아무 맛 안나잖아.”
준이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아주 진지하게 말한다.
“그럼 나는 이제 안 먹을래.”


나는 식탁 위에 있는 도토리 껍질들을 바라봤다.


깨진 것,

반쪽 난 것,
그리고 아직 멀쩡한 것.


배고픈 다람쥐 한 마리가 우리 집 근처에서 한숨 쉬고 있을 것만 같다.

오늘은 준이 덕에 다람쥐 식성에 대해 생각해 본다.

그런 것까지 생각해 본 적 없던 당연히 그럴 것 같던 물음들에 내가 알고 있는 게 맞는 것일까 의문이 든다.

가끔은 아이들이 더 정확할 때도 있지 싶다.


준이는 마지막 도토리를 들고 말했다.
“엄마.”
“응?”
“이거는 나무에 다시 놓고 올까?”

나는 웃으며 말했다.
“그래. 다람쥐 밥으로 남겨 주자.”
준이는 현관으로 나갔다.


손에 도토리 하나를 꼭 쥔 채로.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