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8) 전 국민 고졸의 사회
전 국민 고졸의 사회
“대한민국은 고등학교졸업자 비율이 세계 1위입니다!”
와우! 박수!
이쯤 되면 ‘고등학교 졸업’은 별로 대단하지 않다.
그냥… 숨 쉬듯 한다.
“너 고등학교 나왔어?”는 마치 “너 숨은 쉬니?” 같은 질문이다.
그래서 한국에서 “고졸학력”은 더 이상 구별 기준이 되지 않는다.
모두가 고졸이니까 국민 기본옵션이다.
미국은 옵션이 “자동차”인데, 한국은 옵션이 “고등학교 졸업”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그 위를 바라본다.
“대학은 어디 나왔니?”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아니면… 어디? (음~ 그렇구나…)
이건 마치 모두가 검은색세단을 탄 사회에서 "누가 더 반짝이는 광택제를 썼나?"로 경쟁하는 것과 비슷하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고졸을 ‘기본값’으로 만들어 놓고 그 위에 또 다른 ‘간판 싸움’을 시작했다.
바로, “SKY 프리미엄”말이다.
그럴싸한 줄임말이지만 실제로는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셋이 모여
“우리가 바로 한국 학력사회의 골드카드”라고 외치는 것 같다.
여기까지는 그렇다 치자.
반대로 문제는 이제부터다.
고졸이 되면 갑자기 시선이 바뀐다.
예를 들어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취업한 청년이 있다고 치자.
이웃 아주머니: “아휴, 무슨 사연이 있었던 거야…”
회사 상사: “젊은 친구가 안타깝게도…”
엄마 친구: “대학은 안 갔대? 요즘은 다 가는데…”라고 말한다.
어느새 “일찍 취업 = 사연 있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가난했나? 성적이 안 됐나? 혹시…
방황했나?
실제로는 “나는 기술이 좋아서 빨리 일하고 싶어요”일 수도 있는데, 한국 사회는 그걸 ‘용기’보다 ‘사연’으로 본다.
또 하나의 아이러니는 기술직, 특성화고, 마이스터고. 말만 들으면 멋있고 전문적이다.
하지만 현실은?
“애가 공부를 싫어했나 봐요~”
“걱정 많으셨죠~”
“아이고, 고생길이 훤하네~”라고 말하는 것이다.
심지어 손재주 좋고 기술력 뛰어난 사람이 대기업 엔지니어가 되어도
“고졸 출신이래.”
“그래도 기술은 확실하대.”
“그래도 사람은 참 성실하대.”
왜 “그래도”가 나오는가?
고졸이면 뭔가를 ‘극복한 사람’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렇다.
한국은 모두가 공부했기 때문에 ‘다르게 가는 것’이 더 어려운 사회가 되어버렸다.
모두가 ‘고졸 이상’이니까, ‘대학 안 간 사람’이 더 눈에 띈다.
모두가 비슷하니까 ‘다른 길’은 더 특이하게 보인다.
결과적으로 “평등한 출발선”이 오히려 “획일적인 도착지”를 만들어낸다.
모두가 같은 길로 걷고 있다.
누군가 옆길로 가면,
“쟤는 왜 저기로 가?”
“길을 잘못 든 건가?”
“방향 잃었나 봐~”라고 말하며 걱정한다.
정말 웃기지 않은가?
원래는 대부분 졸업 후 취업했고, 공부를 계속하고 싶은 몇몇만 대학을 갔다.
그런데 지금은 모두가 공부를 하다 보니 ‘공부를 안 하는 선택’은 더 용기가 필요하다.
공부 잘하는 애보다 공부 대신 기술을 택한 애가 더 이상하게 보인다.
이쯤 되면, “전 국민 고졸”은 자랑인가, 족쇄인가?
우린 정말 대단한 나라다.
공부를 이렇게나 많이 하는 나라에서 공부 아닌 길을 가는 게 더 눈치 보이고 더 설명해야 되는 사회이다.
이건 새로운 차원의 역설이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건
“공부 계속 안 해도 괜찮아.”
“일찍 일하는 것도 괜찮아.”
“너만의 길을 가는 것도, 멋진 도전이야.” 이런 말들이다.
진짜 ‘학력 평등’은 공부를 계속 안 해도 공부한 것처럼 존중받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