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10) 다음 평준화는 ‘결과의 다양성’으로
다음 평준화는 ‘결과의 다양성’으로
자, 여기까지 잘 따라오셨다면 이제 질문 하나 드릴게요.
“우리 아이는 지금 달리고 있나요? 아니면 줄 위에 그냥 서 있나요?”
한국 교육은 지금까지 “같이 출발하기”에는 아주 성공했다.
누구나 같은 날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같은 교과서 펴고,
같은 날짜에 시험을 본다.
그리고 모두 같이 외친다.
“시작~!”
문제는 그다음이다.
종목이 없다.
페이스 조절도 없다.
한 방향, 한 속도, 한 목표로 그냥 달리기만 한다.
모두가 100미터 달리기처럼 뛰고 있는데,
어떤 아이는 마라톤 스타일이고,
어떤 아이는 멀리뛰기 체질이며,
어떤 애는 그냥… 걷고 싶은 거다.
하지만 지금 구조는?
“달려! 뒤처지면 안 돼!”
“쟤 먼저 갔는데, 왜 너는 안 가?”
“같이 시작했잖아, 같이 도착해야지!”
아니, 교육이 무슨 단체 줄넘기야?
한 명 실수하면 “다시 처음부터~” 하는 건가?
그래서 이제 한국 교육이 향해야 할 다음 목표는 이거다:
“결과의 다양성, 속도의 존중.”
이 말이 처음 들리면 좀 이상할 수도 있다.
"뭐야, 결과가 달라지는 걸 좋게 봐도 된다고?"
그렇다.
같이 출발했으니 같이 도착해야 한다는 강박을 이제 좀 내려놓자.
어떤 아이는 국어에서 1등 할 수 있고
어떤 아이는 미술에서 예술혼을 불태우며
어떤 아이는 과학 실험하다 교실을 날려먹을 수도 있고(!)
어떤 아이는 체육 시간만 기다릴 수도 있다.
이 모두가 “정상 범위”다.
“특이하다”가 아니라 “그럴 수도 있다.”
이게 진짜 다양성의 교육이다.
같은 교실에서 시작했더라도 결과는 다르게 흘러도 되는 사회.
조금 늦게 도착해도 “넌 낙오야!” 소리 안 듣는 시스템.
그렇지 않으면 이런 일이 벌어진다.
아이: “엄마, 난 요리사가 되고 싶어.”
엄마: “응, 좋아. 근데 일단 수학 선행하고, 영어 듣기 끊지 말고, 학종 대비도 해놔. 혹시 모르니까 의대는 열어두고!”
응? 요리사 얘기하자고 했는데, 갑자기 서울대 의대까지 도착했다.
그래서 아이는 다시 묻는다.
“그럼…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건 언제 해?”
“음… 일단 대학 붙고 나서 생각하자.”
이건 슬프다.
꿈을 미루게 되어 버렸다.
정말 중요한 건 결과의 다양성을 인정해 줄 때
진짜 ‘같이 가는 사회’가 완성된다는 사실이다.
출발선이 같았다는 이유로 모두가 같은 골대를 향해 달리는 게 아니라, 각자의 방향으로 가더라도
"괜찮아, 그게 네 길이야"라고 말해주는 사회.
그게 진짜 평등이다.
그게 성숙한 평준화의 다음 단계다.
평등은 ‘같음’이 아니라 ‘존중’이다.
누군가 자전거를 타고 가도,
누군가 롤러블레이드를 신고 가도,
누군가는 그냥 걷고 있어도,
그게 이상하지 않다고 말해줄 수 있는 사회.
그럴 때 우리는 평준화의 장점을 살리면서 그 단점을 웃으며 넘길 수 있다.
그리고 드디어 "각자의 속도로도 같이 가는 법"을 배우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