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 어따 써먹어?

3장 (1) “도덕, 실과, 음악, 미술… 이걸 왜 다 해야 해요?”

by 작가

3장. 다양성 대신 기반을 택한 사회

– 선진국과 한국의 교육 철학 차이


도덕, 실과, 음악, 미술… 이걸 왜 다 해야 해요?”


내 아이가 물었다.


“엄마, 도덕 시간에 착하게 살라는 거 배워요?”

“맞아~!! 착하게 살아야지!!!”

“근데 나 이미 착한데, 굳이 배워야 돼?”


……잠깐만. 이 철학자 누구냐. 소크라테스가 저세상에서 웃겠다.


순수한 의문 같지만 이거 참 깊은 의미가 담겨있다.


진짜 도덕은 나쁜 사람만 듣는 게 아닐까?

천사 양성소도 아니고 왜 우린 이미 착한 아이들에게 도덕을 가르칠까?


그런데 말입니다.

도덕만 그런 게 아닙니다.


실과 시간엔 바느질을 배우고, 다림질도 해보고, 전기 회로도 만듭니다.


“엄마, 근데 이건 세탁기랑 세탁소에서 다하는 건데?”

맞아… 인정.


음악 시간엔 '도레미파솔라시도'를 외우고, 리코더를 분다.

"엄마, 이건 꼭 배워야 해?"


‘아들아, 엄마는 아직도 너의 단소가 부담스럽단다.

그래도 그때 배워 둔 것이 다시 보니 생각나는 거란다.

너의 음악책에 정간보는 아직도 숨 막혀’


그리고 미술.

“색칠만 하면 되잖아?”

아니야, 미술은 마음의 풍경을 그리는 거야.

엄마도 옛날에 하늘은 파란색으로만 칠했거든?

근데 지금은 알아.

하늘은 가끔 회색, 보라색, 기분 좋으면 주황색이야.

미술 시간 없었으면 엄마 아직도 하늘은 파란색만 칠했을 걸?


그럼 이쯤에서 다시 묻자.


우린 왜 이렇게 많은 걸 가르치는 걸까?

혹시… 혹시나 말이다.


지금은 쓸모없어 보여도,

나중에 “아~ 그때 해봤더니 이게 이런 거였구나!” 하고 떠오를까 봐였다.


어릴 때 배워둔 거 하나가 어른이 되어서 고장 난 전구도 갈고, 지하철에서 노래 흥얼거리다 힘든 하루를 위로받기도 한다.

“이 사람은 왜 이렇게 행동할까?” 하며 남을 이해하는 눈이 되어주기도 했다.


물론 당장 시험엔 안 나온다.


수능시험에 ‘옷 개는 법’ 5지선다 문제는 안 나온다


“다림질의 온도는 몇 도가 적절한가요?” 이런 거 안 나온다.


근데, 이걸 배우면서 아이는

‘내가 직접 해보는 것’의 기쁨을 배운다

‘모른다’는 걸 인정하고 배우는 법을 알게 된다.

그리고 세상이 얼마나 다양한지 그 속에서 내가 어디쯤 있는지도 배우게 된다.


사실 우린 아이에게 한 가지 능력만 쏙 빼서 넣고 싶은 유전자 편집자가 아니다.


피아노만 잘 치는 기계 수학만 잘 푸는 로봇을 키우고 싶은 게 아니다.

사람을 키우고 있는 거다.


살다 보면 수학 못하는 날도 있고,

그림 안 그려지는 날도 있고,

도덕적으로 정말 실패하는 날도 있다


그런데 그 모든 과목들이 아이한테 이렇게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괜찮아, 그래도 넌 충분히 배울 수 있어.”

우리가 ‘이 많은 과목’을 아이에게 가르치는 건 ‘이 많은 세상’을 살아가게 해주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니 오늘도

도덕 시간에 착한 척 열심히 하고,

실과 시간에 손바느질로 실뭉치 만들고,

미술 시간엔 무지개를 7가지 색 말고 77가지 감정으로 표현하고,

음악 시간엔 스타카토로 리코더를 불어야 한다.


그게 바로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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