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4) 다 같이 배우면 생기는 놀라운 효과
다 같이 배우면 생기는 놀라운 효과
솔직히 말해보자.
어릴 때 학교에서 배운 과목들 대체 언제 써먹나?
궁금하지 않았나?
세탁 라벨?
보색대비?
단소 박자?
솔직히 그때는
“이걸 왜 배워요?”
“어차피 나 디자이너도 안 될 건데…”
“세탁은 엄마가 해주는데요?”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나이를 좀 먹어보면 알게 된다.
아… 그거 은근히 쓸모 있었구나.
예를 들어보자.
실과 시간.
그때 세탁 라벨 배운 게 뭐 대수냐 싶었는데, 지금은 이게 살림 스킬이다.
‘세탁기 돌려도 되는지’,
‘뜨거운 물은 안 되는 옷인 건지’,
‘건조기 들어가면 옷이 아기 옷 되는 건 아닌지’
이 모든 걸 세탁라벨 한 장으로 판단하는 능력.
이건 실과 이수생으로서의 자부심이다.
적어도 우리 집 니트는 내가 죽이지 않고 있다.
미술 시간.
그때 선생님이 "보색대비는요~" 할 때,
속으로 ‘내 미래대비도 못 하는데 무슨...’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지금은 쇼핑몰에서 “이 치마엔 이 색 블라우스가 환상 조합이지~” 하고 있는 나를 보면 내 안의 작디작은 피카소가 있는 것 같다.
컬러감? 배색? 그거 다 초등 미술 덕분이다.
나는 그 수업 덕에 지금 ‘기본 이상의 패션 감각’을 장착했다.
음악 시간.
말해 뭐 하나. 리코더 하나로 ‘반짝반짝 작은 별’을 삑사리 없이 완주한 그 시절. 그건 단순한 실기 시험이 아니었다.
그건 내 안의 리듬감을 깨우는 성스러운 예식이었다.
지금?
아이의 리코더 불기에 박자와 리듬에 음감을 더해 지도하고 있다.
그뿐인가?
도덕 시간에 “입장 바꿔 생각해 보자”라는 문장.
어릴 땐 ‘왜 자꾸 입장을 바꿔야 하지?’ 싶었는데 지금은 댓글 읽고 쓸 때, 이 말이 은근히 뇌에서 자동 재생된다.
어릴 때 도덕 교과서에 나온 대사들 지금 내 양심 속 내비게이션이다.
그런데 이 모든 게 진짜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나만 아는 게 아니라, 모두가 안다”는 것.
그것이 사회를 버티게 해주고 있었다.
우리 모두가 공통의 경험을 가졌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것은 마치 ‘공용 교양 공유기’ 같다.
친구랑 밥을 먹으러 가서 “너무 탄수화물 위주 아냐? 다이어트한다며? 단백질 위주로 시켜볼까?”라고 말할 수 있는 사회.
노래방에서 “자자~~4분의 4박자로 비트 쪼개서, 박수 부탁드릴 께요~~”
하고, 웃으며 박자를 맞출 수 있는 사회.
이게 바로 공통 언어다.
‘모두가 알기 때문에’ 가능한 대화, 유머, 눈치, 감정 공유.
이건 아무나 되는 게 아니다.
모두가 학교에서 똑같이 배웠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한 사람은 탄수화물을 알고, 한 사람은 모른다면?
한 사람은 음악 박자에 몸을 맡기고, 다른 사람은 “그게 뭐예요?” 한다면?
그건 대화가 아니라 수업이 된다.
“이건 이렇게 해서… 설명하자면 말이지…”
갑자기 대화가 피곤해진다.
그래서 다 같이 배우는 건 중요하다.
심지어 ‘싫었던 과목’도 말이다.
그건 그냥 ‘나만 괴로운 시간’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공통 기억이 되는 시간이었다.
물론 그때는 몰랐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어?’ 하고 투덜댔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그 시절 그 모든 과목들이 이제 와 내 삶에 은근슬쩍 도움을 주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다 같이 배운 덕분에 우리는 서로를 더 잘 이해하고, 더 빨리 웃고, 더 쉽게 친해진다.
그러니까, 다시 묻고 싶다.
“왜 이걸 다 배워야 해요?”
이제는 이렇게 대답할 수 있다.
“그래야 우리끼리 웃을 수 있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