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6) 그래서 한국인은 ‘모르면 창피한’ 문화가 있다
그래서 한국인은 ‘모르면 창피한’ 문화가 있다
한국인에게는 이상한 DNA가 하나 있다.
바로 "모르면 창피해한다"는 유전자다.
심지어 "몰라도 괜찮아" 할 법한 것도, 한국에서는 절대 괜찮지 않다.
예를 들어보자.
“너, 6·25가 언제 일어난 줄은 알지?”
“야, 이순신 장군 모른다고? 진짜?”
“백제, 신라, 고구려 순서 몰라? 어우야... 그건 좀...”
순간 식은땀이 흐른다.
나는 그냥 밥 먹다 말고 있었을 뿐인데 갑자기 시사퀴즈 예선전이 시작돼 버렸다.
문제는 이게 단순한 지식 자랑이 아니라는 데 있다.
이건 일종의 ‘국민 인증 테스트’다.
"이걸 모르면서 어떻게 한국 사람이라 할 수 있어?"
그런 말은 하지 않지만, 그 눈빛이 말해준다.
“너 다른 나라 사람이지?”
이쯤 되면 한국인의 ‘창피함 레이더’는 거의 군사용 수준이다.
수학공식, 역사 연도, 음악가 이름, 전래동화까지 어릴 때 한 번쯤 듣고 지나갔을 법한 건 전부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안 그러면 그 자리가 대화의 장이 아니라 심문실이 된다.
“너 혹시 이 말도 모르니?
“저기요… 그건 고사성어예요. 초등학교 6학년 때 배웠어요.”
“아… 그렇죠. 제가 깜빡했네요… (깜박이라니,,, 안 통한다. 넌 지금 한국인 인증 탈락이다)”
사실 이건 공산주의도 지식 강박증도 아니다.
이건 한국만의 특별한 문화다.
‘공통문화주의’ 모두가 비슷한 교육을 받고, 비슷한 시기에 같은 교과서를 보고, 비슷한 시험을 치르면서 형성된 집단 교양의 힘이다.
다른 나라 사람들과 이야기해 보면 차이가 느껴진다.
프랑스 친구가 이렇게 말한다.
“몰라도 돼. 지금부터 배우면 되잖아.”
미국 친구는 이렇게 말한다.
“그래서 그게 왜 중요한 건데?”
근데 한국에서는?
"그걸 지금 처음 듣는다고…?"
어디선가 나오는 작은 탄식.
그 순간 나의 뇌 한편에서 긴급 방송이 울린다.
[경고] 이 대화에서 당신은 뒤처지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 문화가 무조건 나쁘다는 건 아니다.
이건 사실 공통 기반이 단단한 사회에서 가능한 일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기본’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
"이 정도는 다 알 거야"라는 믿음.
그 믿음이 대화에 속도감을 주고, 유머에 통일감을 주고, 연대감도 만들어준다.
예를 들어,
"차라리 단군 할아버지가 곰을 키웠다고 해라ㅎㅎㅎ?"
하면 모두가 웃는다.
굳이 신화부터 설명할 필요 없다.
이미 다 알고 있으니까.
“내가 삼국시대였다면 신라 스타일이었을 듯.”
“조선시대 양반 코스프레는 백퍼 너잖아~” 이건 문화 공유가 있어야 가능한 농담이다.
그러니까 한국의 “모르면 창피해” 문화는 단순한 깐깐함이 아니라,
모두가 공유하는 학습 기반이 탄탄하다는 증거다.
물론 피곤할 때도 있다.
이건 강박일까? 자부심일까?
어쩌면 그 사이 어딘가쯤 일지도 모른다.
모두가 비슷한 걸 배우고, 비슷하게 알아서 서로가 서로에게 '기본값'을 기대할 수 있는 사회 그게 지금의 한국이다.
이건 놀라운 안정감도 준다.
어디 가서 뭔가 빠졌을 때 “이건 내가 놓친 거지 세상이 이상한 건 아니구나” 하고 자기 점검도 가능하다.
즉, 모르면 창피한 사회는 서로가 서로의 기본을 믿는 사회라는 것이다.
그러니 “모른다고 뭐라고 하지 마세요~!!!”하기 전에 "다 같이 그만큼 알고 있다는 게 꽤 대단한 일"이라는 걸 한 번쯤 생각해 볼 만하다.
그러니까 창피할 수 있다.
그건 우리가 기본을 중요하게 여기는 나라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