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 어따 써먹어?

3장 (7) 모두가 조금씩 다 알아야 굴러가는 사회

by 작가

모두가 조금씩 다 알아야 굴러가는 사회

한국은 가끔 “대형 게임 맵” 같다.


지하철은 촘촘하게 연결돼 있고, 길은 내비게이션 없인 못 찾겠고, 버스는 숫자+영문+색깔 코드로 돌아가고, 인터넷은 광속인데, 뉴스는 하루에 열두 번 터진다.

게다가 동네마다 행정센터, 센터마다 프로그램, 프로그램마다 신청기간. 뒤처지면 정보의 낙오자가 된다.


그런데도 이 사회는 잘 굴러간다.


왜냐고?


다들 조금씩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하철 9호선 급행은 탄력 운행이라서 잘 봐야 해.”

“동사무소 말고 ‘구청 복지과’로 바로 가야 빠르지.”

“공동인증서 대신 패스 쓰면 돼~”

“전세사기 조심해 등기부등본 떼봐야지!”

이걸 누가 알려줬나?


학교에서 배우진 않았다.


하지만 기초교양 덕분에 배경지식이 깔려 있으니 알아들을 수 있는 거다.


어릴 적,

사회 시간에 행정구역을 외우고,

과학 시간에 에너지 순환 배우고,

도덕 시간에 시민의 권리와 의무를 배우고,

국어 시간에 설명문 구조를 익히고,

음악 시간에 박자 감각 키우고,

미술 시간에 색채 감각을 연습했던

그 모든 시간들이 지금의 생활형 지능으로 연결된 것이다.


한국 사회는 복잡하다.


너무 복잡하다.


행정도, 교통도, 제도도, 심지어 택배 시스템도 한 치의 오차 없이 정밀하다.

이런 사회에서 살아가려면, 모두가 어느 정도 ‘똑똑해야’ 한다.


아주 많이는 아니어도 조금씩은 다 알아야 돌아간다.


이게 때로는 피곤하다.


"왜 내가 이걸 알아야 하지?" 싶은 순간도 많다.


“왜 은행 어플에 들어가려면 공인인증서, 인증번호, 간편 비밀번호, 생체인식, 일회용 비밀번호까지 다 걸쳐야 해?”


하지만 그 피곤한 과정을 대부분이 해내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그러니까 한국은…


‘중학교 레벨’의 교양이 국민 표준인 나라다.

심지어 평균 연령이 높아도 다들 기초지식은 탄탄하다.


다 같이 조금씩 다 알아야만 돌아가는 사회는 비효율적일 수도 있다.


사람마다 다른 걸 전공하고, 전문성이 중요하다는 세상에서 “왜 모든 국민이 똑같은 걸 다 알아야 해?”라는 비판도 있다.

그런데 말이다.


그래서 한국 사회는 놀라울 만큼 안정적이다.


모두가 어느 정도 기초를 알기 때문에 누가 갑자기 빠져도, 옆 사람이 메꾼다.


민원인이 담당 공무원보다 조례에 더 빠삭한 일이 가능하다.


부모가 아이 수학 문제를 지도할 수 있고, 은퇴 후 동네 프로그램도 알아서 찾아 듣는다.


공통 교양, 공유된 지식, 통일된 학습 경험.

이게 바로 한국 사회가 돌아가는 원동력이다.


한마디로 한국은 ‘혼자 알면 끝’이 아니라 ‘다 같이 조금씩 아는’ 집단 지성 사회다.


웃기게도 우린 모두가 약간의 행정가, 약간의 교통전문가, 약간의 과학자, 약간의 시사 평론가다.


그게 지금 이 사회를 이렇게나 빠르고, 복잡하게, 그리고 꽤 안정되게 굴러가게 하는 원리다.


그러니 오늘도, 누군가는 ‘지자체 장려금 신청’ 창을 뚫어보고 있고,

누군가는 ‘전세 계약서’에 빨간 펜으로 밑줄을 긋고 있으며,

누군가는 ‘아이가 학교에서 뭘 배우는지’를 함께 챙기고 있다.


이 모두가 가능한 이유?


우리는 다 같이 어릴 때부터 조금씩 다 배워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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