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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나의 자전거

by 퓨우휴우

“자전거 살래?”

“응? 뭐라고? 자전거 타자고?”

“그래. 자전거 사서 타자고.”

코로나19로 헬스, 수영 등 실내 운동을 못하게 되자 남편이 갑자기 던진 말이다.

오십이 넘은 나이에 자전거는 무슨….


5살쯤이었을까? 철제 대문을 열면 가파른 계단이 보이고 그 계단을 오르면 넓은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살았다. 더운 여름, 민소매 티셔츠에 반바지를 입고 세발자전거에 올라탔다. 핸들을 이리저리 돌리고 페달을 밟았다. 신나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눈을 감았다. 두세 번 더 페달을 밟았던 것 같은데, 눈을 떠 보니 머리에 붕대를 감은 채 방에 누워 있었다. 천장이 빙빙 돌았다. 핸들을 엉뚱한 곳으로 틀어 계단을 굴러 대문까지 떨어졌다. 계단을 구르며 어느 순간 정신을 잃었나 보다. 생각해 보면 아찔한 순간이었지만, 쪼그만 게 눈을 감고 노래를 흥얼거리며 세발자전거 타는 모습을 떠올려 보니 어처구니없고 웃음이 나온다. 무슨 노래였을까?


5학년 가을, 생일 선물로 두 발자전거를 받았다. 바로 가지고 나가서 벽에 부딪히고 몇 번 넘어지다가 집에 올 때는 타고 들어왔다. 그날 이후 매일 자전거를 탔다. 자전거를 타고 학교 앞에 가서 호떡을 사 먹고, 앞서 달리는 친구를 이기기 위해 전속력으로 페달을 밟기도 했다. 두 손을 놓고 타는 묘기도 부리며 온 동네를 휘젓고 다녀도 동네 어른들에게 크게 혼난 기억은 없다. 겁 없이 질주했음에도 큰 사고가 나지 않은 것을 보면, 눈을 감고 타지는 않았나 보다.


50세, 코로나19로 헬스와 수영을 못하게 되었다. 몸도 둔해지고 살이 많이 쪄 안 되겠다 싶어 남편과 산책을 시작했다. 앞서 걷는 사람, 마주 오는 사람, 나무, 꽃, 건물, 다리 등. 평소 지나쳤던 것들이 많이 보였다. 그렇게 한 달 정도 지나니 초록색 보행로 옆 주황색 길을 달리는 자전거가 눈에 들어왔다. 헬멧과 고글을 쓰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건강하고 멋있어 보였다. 휙! 바람 소리를 내며 옆을 지나가는 자전거에서 강한 에너지가 뿜어져 나왔다.

남편은 인터넷에서 자전거 정보를 찾고 전화 문의도 하더니, 자전거를 사자고 했다. 자전거 샵에 가서 여러 모델의 자전거를 구경했다. 작은 키와 오십 대라는 나이를 생각해서 가볍고 바퀴가 작은 미니벨로를 샀다. 올 블랙의 세련되고 날렵해 보이는 모델. 마음에 들었다. 접어서 자동차 트렁크에 실을 수도 있다. 기본 장비인 헬멧과 고글, 자전거 장갑도 같이 샀다. 바퀴가 얇고 작아서 처음에 중심 잡는 것이 어려워 몸에 힘을 주다 보니, 온몸이 아파 며칠 고생했다. 익숙해져 조금 먼 거리를 타니 엉덩이가 너무 아파서 패드가 들어간 자전거 바지를 샀다. 레깅스 입는 것이 창피해서 요가나 필라테스도 펑퍼짐한 운동복 입고하는데…. 어쩔 수 없었다. 훨씬 안 아프고 타기 편했다. 장비빨이 그냥 나온 말은 아니었구나.


올봄 바람 잔 날, 접혔던 자전거에 쌓인 먼지가 휘날리도록 달려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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