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가고 여름이 온다
'딸기’ 대학교 교양 영어 교재 지문에 ‘strawberry’라는 단어가 나왔었다. 정확한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딸기밭에서 피어나는 소년과 소녀의 사랑 이야기였던가? 찾아보고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다.
1988년, 여고생 단발 커트가 채 길기도 전에 시작한 대학 생활. 기숙사 뒷길 계단으로 나오면 논이 펼쳐져 있고 근처 비닐하우스에서 딸기 따는 체험도 할 수 있었다. 학생관 매점에서 요거트를 팔았는데, 지금까지 먹어보지 못한 신문물. 하얗고 자그마한 귀여운 플라스틱 통에 담겨 작은 숟가락으로 떠먹는 적당히 걸쭉하고 달달한 그 맛! 게다가 몽글몽글 귀여운 딸기 덩어리들의 식감은 앉은자리에서 몇 개라도 먹을 수 있을 정도였다. 내 용돈으로 매일 사 먹기에는 너무 비싼 간식. 친구들이 먹는 뒷모습을 보고 군침을 꿀꺽 삼킨 적도 많았다.
30여 년이 지난 요즘도 요거트는 딸기맛만 먹는다. 잼도 딸기잼을 제일 좋아하고 녹아내리지 않은 딸기 덩어리를 골라 먹는 재미가 있다. 난 딸기를 참 좋아하나 보다.
3년 전 이사 온 지금 집은 걸어서 5분 거리에 시장이 있다. 이사 온 뒤 시장 구경을 갔는데 산딸기를 파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전에 살던 동네 작은 마트에서 본 것보다 싱싱하고 큰 상자에 담긴 것을 절반 가격으로. 마음이 급해졌다. 몇 상자 남지 않았는데 빨리 사고 싶었다. 두 상자를 사 와서 깨끗이 씻어 하루 만에 거의 다 먹어버렸다. 오독오독 씹히는 식감과 크게 달지 않으면서 약간은 건강하게 씁쓸한 그 맛은 중독성이 강하다. 시장에 갈 때마다 산딸기를 사니 이사 온 지 2주도 되지 않아 과일 가게 사장님이 내 얼굴을 알아보고 오늘은 산딸기가 안 들어왔다며 대신 안타까워하셨다. 그렇게 3년째 산딸기를 사 먹으니 “작년에는 산딸기가 맛있었는데 올해는 농사가 별로 잘 안되었네.” 하며 산딸기 품평을 하기도 했다.
작년 여름 산딸기 따는 체험을 할 수 있는 여행 상품이 있어 새벽에 전세 버스에 몸을 싣고 산딸기밭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언덕에 꽤 넓은 산딸기 과수원이 펼쳐져 있었다. 플라스틱 용기를 하나씩 받고, 얼굴에 흐르는 땀을 닦을 시간도 없이 열심히 산딸기를 땄다. 장미꽃처럼 예쁘고 탐스럽게 익은 산딸기를 따기도 하고 먹기도 하니 행복했다. 아직도 많이 남아 있는 산딸기를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니 너무 아쉬웠다.
산에 가면 초록 사이로 빨갛고 동그란 뱀딸기가 보이는데 먹어도 되는지 잘 몰라 그냥 보고 지나치곤 했다. 검색해 보니 먹을 수 있다고 한다. 요즘 딸기 가격이 내려 거의 매일 딸기를 사 들고 온다. 깨끗이 씻어 꼭지를 따 바로 꺼내 먹을 수 있도록 투명한 통에 담아 냉장고에 넣어 놓는다. 조금 기다리면 산딸기를 먹을 수 있어서 좋고, 뱀딸기가 익어 가니 산행이 기다려진다.
봄이 가고 여름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