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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퓨우휴우 May 15. 2024

얘, 꽃을 꺾으면 어떻게 하니?

-예쁜 것은 함께 봐야지!-

“엄마! 놀다 올게요.” 

초등학교 3, 4학년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대문과 대문이 마주 보는 골목 가운데 파란 대문, 학교에서 돌아와 대문을 사이에 두고 한 발은 마당에, 다른 한 발은 골목에 디디고 서서 한두 번 크게 반원을 그리다가 교과서와 필통, 스프링 종합장, 색연필 등이 잔뜩 들어있는 무거운 가방을 휙 던져 마루에 성공적으로 올려놓고 목청껏 크게 외쳤다. 그 당시 어머니는 늘 집에 계셨기에 당연히 내 목소리를 들으셨을 테고, 해가 지면 집으로 돌아오는 것을 알기에 얼굴을 내밀고 쳐다보지도 않으셨다.      


근처 작은 언덕을 오르내리며 뛰어놀다 돌아오는 길에 피어 있는 꽃을 보았다. 마르고 가느다란 연갈색의 가지에 부드럽고 연한 분홍빛이 예뻤다. 나도 모르게 손을 뻗어 가지를 꺾었다. 집에 가서 엄마에게 자랑하고 싶었다. 품에 안고 돌아서는데 지나가던 대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언니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얘, 그렇게 진달래를 꺾으면 어떻게 하니?” 

순간, 너무 당황하고 무서웠다. 화를 내고 혼내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에 얼굴이 빨개져서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런데 그 언니의 다음 말이 예상 밖이었다.     

“예쁜 꽃은 여러 사람이 함께 봐야지. 혼자 보려고 그렇게 꺾어서 가지고 가면 안 돼.”

고운 목소리에 심지어 얼굴에는 미소를 띠고 있었다. 내가 꽃을 꺾은 이유를 다 이해하고 있다는 듯. 그리곤 내가 그 꽃을 어찌하는지 상관하지 않고 갈 길을 가 버렸다.     

 

자연보호! 나무를 심자! 나무나 꽃을 꺾지 말자! 산불 조심!

해마다 꽃 피는 봄이 되면, 표어 문구를 만들고, 포스터를 그리며 자연 사랑에 대해 배웠다. 상을 받고 싶어 흰 도화지가 구불구불해지도록 힘주어 초록과 갈색으로 풀과 나무를 그렸지만, 등굣길이나 하굣길에 학교 화단 나무나 꽃에 크게 관심을 가지진 않았다. 이후로도 오랫동안 봄에만 볼 수 있는 자욱한 연둣빛과 수많은 생명을 품은 자연의 아름다움에 별 관심 없이 살아왔다.     

 

눈부신 벚꽃보다 발치의 이름 모를 작은 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50대 중반의 봄. 왜 갑자기 진달래가 생각난 걸까. 제일 좋아하는 꽃도, 곁에 두고 자주 볼 수 있는 꽃도 아닌데.      

“예쁜 것은 여러 사람이 함께 봐야 한다.” 

철없던 어린 시절에도 나에겐 꽤 큰 충격과 깨달음의 순간이었다. 어렸지만 나의 이기심과 소유욕에 대해 반성했었나 보다. 정작 꺾은 진달래를 어떻게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올봄 아직 진달래를 보지 못했다. 아쉬운 대로 이미지를 찾아보고, 백과사전을 보니 진달래의 꽃말은 사랑의 기쁨이다. 웃을 일, 기쁜 일 없는 덤덤한 하루를 보내고 있는 내게, 진달래가 말을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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