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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mscist Mar 05. 2023

헬조선 설명서

오늘날의 한국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헬조선. 이제 그다지 낯선 단어가 아니다. 지옥(hell)과 조선을 합친 용어로 한국을 비롯한 조선 반도가 지옥과 같다는 의미를 담은 단어다. 이 단어가 언제,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헬조선이라는 단어가 이제 상식이 되었다는 것, 아니 ‘현실’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제 너무도 식상한 이야기가 되어 버렸지만, 이 글이 시작되고 있는 2023년을 기점으로 약 50년 후면 한국의 인구는 100만 명 대로 떨어진다. 수년 전부터 출산율은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했고, 급기야 서울의 한 초등학교가 문을 닫는 일까지 벌어졌다. 하지만 한국 사회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마치 자기 일이 아닌 것처럼 무덤덤하다.


이러한 무덤덤함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아무리 충격적인 일이라도 오랜 시간 동안 지속되면 무감각해지기 마련이다. 이미 한국 사람들에게 출산율의 급격한 추락은 더 이상 새삼스럽거나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차라리 일종의 ‘트렌드’다.


인구가 100만 명 대로 떨어지면 어떻게 될까? 매우 흥미로운 상상이다. 전 국토가 텅텅 비고, 학교엔 아이가 없으며, 전국의 수많은 대학이 문을 닫을 것이다. 전 국토가 마치 이따금 텔레비전에 나오는 폐광촌처럼 되는 것이다. 수도권에만 – 아니 어쩌면 서울에만 – 사람이 모여 살 뿐 그 이외의 지역에는 아무도 살지 않는 지역이 속출하고, 아무도 살지 않는 지역에서는 흡사 영화 <매드 맥스>와 같은 – 무정부 상태, 약육강식, 일상이 된 폭력 등등 -  장면이 펼쳐질 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원인을 탐하는 동물이다. 자신이 어떠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그 이유를 찾는 동물인 것이다. 물론 그 원인을 찾는 행위가 반드시 해결책을 찾기 위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뾰족한 해결책을 찾을 수 없더라도 ‘그 이유라도 알자’는 마음이 드는 것이 인간인 것이다. 그렇다면 너무도 궁금하지 않은가? 왜 한국은 아무도 살지 않는 ‘헬조선’이 된 것일까? 한 때 ‘덮어 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는 표어가 등장할 정도로 인구고 폭발적으로 증가했던 한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사실 헬조선의 뿌리는 매우 깊다. 어쩌면 한국이라는 나라는 일종의 사상누각 혹은 환영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이런 발언에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K-pop’, ‘K 드라마’가 세계를 휩쓰는 이 시대에 그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 사상누각에 불과하다니? 당연히 불편한 이야기다. 한데 이러한 ‘불편함’을 이야기하는 사람에게 한 번 차분하게 물어보고 싶다. 그렇다면 세계인이 모두 열광하는 ‘K의 나라’에서 인구는 왜 그토록 급격하게 줄어드는 것일까? 그렇게 좋은 나라라면 왜 정작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아무런 비전과 희망을 보지 못하는 것일까?


오늘날 한국인들은 ‘남들에게 보여지는 자신의 모습’에 도취된 상태다. 한때 회자되었던 유머_외계인을 만나면 한국인이 하는 질문: ‘두 유 노우 코리아?’ 이 농담에 오늘날 우리를 설명하는 모든 심리가 집약되어 있다. 한국인은 정작 자기 자신에게 관심이 없다. 한국인이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남이 보는 나’일 뿐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관심이 없다. 이러한 심리 상태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_한국인은 멋진 풍경을 보면 다음과 같은 말을 무의식적으로 한다: ‘와~ 여기 한국 같지 않다. 외국 같다.’ 그렇다. 우리는 자신이 사는 나라에 좋은 것이 있다는 것을 믿지 못한다. ‘이렇게 좋은 곳이 한국에 있을 리가 없다’라는 심리가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헬조선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켜켜이 쌓여 온 문화적, 정치적 누적의 결과물이 헬조선인 것이다. 사실 이 글을 쓰는 나 자신도 그 원인을 찾는다고 해서 헬조선을 바꿀 뚜렷한 해결책이 도출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쓰는 이유는 그래도 누군가는 한국이라는 사회에 대한 체계적인 정리를 했다는 흔적을 남겨 놓고 싶어서다. 왜 한국이 헬조선이 되었는지에 대한 차분하면서도 체계적인 정리의 기록을 남기고 싶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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