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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mscist May 01. 2024

한국: 건강한 지배층이 없는 나라

보수가 먼저 생겨났을까 아니면 진보가 먼저 생겨났을까? 혹자는 이와 같은 질문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와 비슷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그 탄생 순서로 따진다면 보수와 진보의 선후관계는 명확하다. 보수가 먼저 생겨난 것이다. 보수는 기존의 것을 지키는 자들이고 진보는 그것을 부수려는 자들이다.


보수와 진보의 선후 관계는 논쟁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결국 한 사회의 문화 정치적 분위기를 우선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결국 보수임이 분명하다. 보수주의자들은 기존에 있던 것들을 지키고, 진보주의자들은 보수주의자들이 지키고 보존하려는 것을 부수고 새로운 질서와 문화를 만든다.


하기에 한 사회의 성질을 결정짓는 데 있어 보수의 역할은 그야말로 중요하다. 다소 극단적으로 말한다면, 그 사회에 어떠한 성질의 보수주의가 뿌리내리는가가 해당 사회의 운명을 결정짓는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떠한 성격의 지배층이 그 사회가 탄생하는 초기에 뿌리를 내리고 전체적인 분위기와 문화 그리고 질서를 형성하는가가 해당 사회의 운명을 결정짓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한국의 운명은 안타깝다. 한국, 즉 일제 강점기를 겪고 난 후 현대적인 국가로서의 ‘대한민국'을 만들 때 과연 어떠한 성질의 지배층이 문화와 정치 질서, 분위기를 만들었던 것일까? 만약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논의하려 한다면 수많은 자료와 인터뷰가 필요할 터이다. 더구나 이제는 세월이 흘러 ‘그때 그 시절의 지배자들'을 불러 세울 수도 없는 노릇이기에 한국 보수주의자들이 성격을 실증적으로 밝혀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해야 할 것이다. 다만 나는 최근 사석에서 들었던 한 가지 에피소드와 그간 읽었던 여러 종류의 책을 버무려 한국의 보수주의자들이 과연 어떤 종류의 인간들이었는지에 대한 대략적인 그림을 그려볼 수 있었다.


나는 얼마전 ‘**고'를 졸업한 한 선배의 이야기를 들었다. 고등학교 입학이 평준화되기 이전 이 고등학교는 수재, 천재들이 모여드는 곳이었다. 하지만 선배는 평준화 세대였다. 다시 말해 고등학교 입학 시험을 치르지 않고 이른바 뺑뺑이로 **고에 들어간 세대인 셈이다. **고를 졸업하고 선배는 서울에 있는 모 대학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충격적인 경험을 하게 된다.


해당 대학에 **고 동창 모임이 있었는데, 그 모임에 가보니 그야말로 가관이었다고 한다. 말인즉슨 **고 출신인 대학교 2, 3학년 선배들이 정치인들처럼 고급 술집에서 판을 벌이고, 심지어 강제로 여대생과 미팅을 시키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오가는 이야기들의 수준이 그야말로 역겨울 정도였다고 한다. 그 선배는 당시 **고 졸업생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게 한국 지배층의 문화로구나'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막연하게 짐작만 하고 있었던 한국 사회의 병근이 좀 더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서 밝혔듯이 보수가 우선한다(중요성이 아니라 시간 순서 상으로). 한데 한국은 보수, 즉 사회를 지배하는 집단이 이미 병들었기에 그 이후에 형성된 문화, 정치, 질서가 모두 병든 상태로 지속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한국의 보수 집단이 이렇게 병든 인간들로 채워진 데는 당연히 식민과 분단이 가장 결정적인 원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짐작일 뿐이지만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고 조선에 와서 지배자로 군림했던 일본인들의 수준은 몇몇 최고위층 인사들을 제외하고는 그다지 높지 않았을 것이다. 익숙한 본토에서의 삶을 버리고 낯선 조선땅에 온 일본인들은 일본 본토의 2, 3류급 인사들이었을 것이고, 식민지에서 한 몫 잡으려고 온 장사치들이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과 거래를 터 지배층을 형성했던 조선인들, 즉 친일파들 역시 2, 3류급 일본인들의 문화와 정서를 습득했을 것이다. 결국 해방 이후 한국의 지배층을 형성한 보수주의자들은 저급한 일본 문화를 그대로 습득했던 것이고, 그들의 문화가 그대로 이어져 20세기 말에 대학에 입학한 ‘**고 출신'들에게까지 전달되었던 것은 아닐까?


이와 더불어 한국의 보수주의자들은 나태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 속에서 살아왔다는 점 역시 중요하다. 한국은 분단 국가다. 때문에 보수주의자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별다른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없다. ‘빨갱이가 내려온다', ‘너 빨갱이지' 이 두 가지 주문만 외우면 모든 게 해결되었기에, 한국의 보수주의자들은 굳이 머리를 싸매고 자신의 정당성을 입증하고 설득시키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었다. ‘분단'이라는 전가의 보도가 그들의 나태함과 오만함을 떠받치는 마르지 않는 보고가 되어 주었을 것이다. 한국의 보수 진영이 지적으로 허술한 이유다.


식민을 통해 형성된 저급한 문화적 뿌리 그리고 거기에 분단이라는 나태함까지 더해져 한국의 지배층은 낮은 수준의 인사들로 채워졌을 것이다. 고급 요정에서 술판을 벌이고 저급한 수준의 막말을 뱉어 내며 낄낄댔던 ‘뺑뺑이 시대의 **고 출신’이 보여주고 있듯 한국 지배층 사회의 저급한 수준은 유구한 전통을 가지고 있다.


한국은 이제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고 있다. <자살하는 대한민국>이라는 제목의 책이 출판되었을 정도로 한국은 이제 그 수명을 다해가고 있다. 한데 어찌 보면 당연한 귀결이었는지도 모른다. 애초부터 불량한 씨앗이 뿌려졌던 것이고, 모종의 시대적 조건 속에서 그 불량한 씨앗으로부터 자라나온 가지와 이파리들이 한때나마 무성하게 자랄 수 있었던 것이다.


여전히 한국 보수 집단의 각성은 난망하기만 하다. 식민과 분단에 의해 형성된 저급한 수준의 보수 집단은 오히려 증오와 파멸을 파먹으면서 자신 역시 죽어가는 것도 모른채 여전히 그렇게 자신의 길을 가고 있다. 한국이 멸망한 이후 그 연유를 찾는 연구가 수행된다면 그 실마리는 건강한 지배층이 없었던 한국 특유의 상황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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