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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는 우리의 자부심이 될 수 있을까

by gramscist

꽤 오랜 시간 동안 민주주의는 한국인의 정치적 열망을 응축한 개념이었다. 비록 민주주의라는 개념을 한국 민족 스스로 만들어낸 것은 아니었지만, 아무리 짧게 잡아도 일제로부터 해방된 이후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민주주의는 우리 민족이 성취해야 할 이상이자 바람직한 정치 체제를 상징하는 개념이었다.


하기에 민주주의는 해방 이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현대 정치사를 이끌어온 핵심 동력이었다고 할 수 있다. ‘4.19 혁명’을 시작으로 불의한 권력에 맞서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과정이 한국의 현대사 자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광주 민주화 운동’, ‘87년 민주화 투쟁’ 등 한국의 정치사는 ‘독재’를 타도하고 민주적 정의를 실현하는 과정이었음을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런데 해방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약 8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한국 사회에서 민주주의는 정치적 정의로움을 대변하는 상징적인 개념으로 존재해왔지만, 현재, 2025년의 현 상황에서 우리는 한국 사회가 그토록 바라마지 않았던 민주주의가 과연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과연 현재 우리의 정치 체제를 규정하고 있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된 민주주의였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다다르고 있는 것 같다.


사실 거시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한국 사회에서 민주주의는 그 본래의 뜻, 즉 ‘평등한 인민에 의한 통치’와 그것에 필요한 조건이라는, 실질적이면서도 구체적인 차원에서 생각되고 논의되기보다는 주로 ‘독재에 대한 반대와 저항’이라는 차원에서 인식되어 왔음을 부정할 수 없다. 4.19 혁명, 광주 민주화 운동, 87년 민주화 투쟁 등 한국 민주주의를 결정지은 역사적 사건들의 공통점은 그것이 독재에 대한 저항이었다는 점이다.


물론 한국의 민주화 과정이 독재 타도라는 차원에만 국한되었던 것은 아니다. 87년 민주화 투쟁의 결과물로서 한국 사회는 대통령 직선제라는, 자신의 민주주의 체제를 확증하는 일종의 물적 증거를 확보했다. 다시 말해 대통령 직선제는 한국이 민주주의를 성취했음을 보증하는 증표였던 셈이다.


하지만 그러한 민주주의에 관한 물증을 확보한 후, 한국 사회는 마치 결승선을 통과한 달리기 선수처럼 이제 민주주의는 완성되었다는 안이함에 빠져든 것은 아니었을까. 혹자는 지난 해 벌어졌던 12.3 계엄과 그것에 저항한 시민들의 항쟁을 예로 들면서 한국의 민주주의는 여전히 살아 있으며 또 소중하다고 강변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우선 우리는 현재 전 세계적인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탈민주주의의 흐름에 주의를 기울여볼 필요가 있다. 최근 미국의 사례를 통해서도 확인되듯, 민주주의는 이제 보편타당한 정치 체제로 인식되지 않고 있다. 실상 민주주의의 이러한 위기는 유럽에서 이르게는 1960년대부터 시작되었던 것이고, 최근에는 민주주의의 본고장이라고 자부해 왔던 미국에서조차 민주주의가 보편타당하며 인류가 가 닿아야 할 필연적인 목적지가 아니라는 주장이 고개를 들고 있다.


또한 국내 정치에 있어서도 한국 사회는 ‘투표’, ‘의사 결정의 형식’과 같은 제도적 차원에서의 민주주의에는 어느 정도 관심을 기울이지만, 개헌, 국회 단원제의 문제는 물론이거니와, 일상 생활에서의 민주주의와 같은, 기존의 틀을 넘어서는 동시에 좀 더 깊은 사유의 깊이를 요하는 문제들에 관해서는 철저히 무관심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요컨대 한국 사회는 자신이 겪어온 민주화의 ‘역사’를 자랑스러워하지만, 그것이 현재 어떠한 상태에 놓여 있는가에 관해서는 무관심한 것이다.


사실상 현재 한국의 민주주의는 정체된 상태다. 이미 30년도 전인 1987년에 정착된 민주주의의 형식을 그대로 답습하면서, 그것이 만들어내는 여러 가지 모순 - 민주주의의 공동화, 민주주의에 내재되어 있는 극단적 상대주의의 문제와 그것으로부터 초래되는 정치적 허무주의 등등 - 에 대해서는 애써 눈을 감고 있는 것이다.


민주화의 역사는 소중하다. 설사 앞으로 한국의 정치적 방향성이 민주주의에서 이탈할지라도, 민주화의 역사는 우리 민족에게 중요한 참조점으로 남게 될 것이다. 하지만 민주화라는 역사가 그 자체로 오늘날의 민주주의에 관한 문제를 저절로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니다.


한때 조선은 주자학에 근거해 자신의 모든 문제를 규정하고 해결하려 했다. 건국이념으로서 주자학이 조선이라는 국가 운영의 핵심 원리로 작동했고, 또 그것이 나름의 성과를 거두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역사의 흐름은 절대 진리라고 믿었던 주자학의 효용성을 소진시켜 버렸다. 하지만 조선은 주자학의 효용성이 모두 소진되어 가고 있다는 세계사적 현실을 외면했고 그 결과는 우리가 아는 그대로다.


만약 지금이 그러한 시대라면, 그래서 민주주의의 효용성이 이제 소진되어 가고 있는 상황이라면, 우리는 조선의 과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 민주주의는 그 자체로 목적인가 수단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내려야만 하는 순간이 점차 다가오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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