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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mscist Mar 26. 2023

헬조선 설명서

우리는 왜 헬조선에 살게 됐을까?

1960년대_선택의 시대_2


최소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헬조선에서 1960년대만큼 역동적인 시대는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1960년대는 헬조선에 새겨진 가장 짜릿했던 시대이며 헬조선 백성들의 DNA 코드를 정초한 시대라고 할 수 있다. 하기에 헬조선의 백성들, 특히 한국 사회의 이른바 '보수층'을 형성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1960년대는 '모범 답안'의 시대이기도 하다.


1960년대는 모든 것이 쌩쌩 돌아가던 시대였다. 우선 경제가 잘 돌아갔다. 하루가 다르게 공장이 세워지고, 국민 총생산은 치솟았다. 경제 성장에 따른 욕망의 분배도 순조로웠다. 모두가 한 날 한 시에 치르는 입시로 줄을 세우고 등수에 따라 재화를 분배하면 그만이었다. 사회 정화도 손쉬었다. 불만 세력은 '빨갱이'로 낙인 찍은 후 다음날 신문에 대서특필하면 사람들은 국가를 전복시킬지도 모르는 공비 혹은 간첩이 내 주변에도 있을지 몰라 벌벌 떨었다. 분단과 반공은 사회를 정화시키는 특효약이었던 것이다.


1960년대만큼 간단명료했던 시대는 없었다. 모든 것이 명확했고 질서정연했으며, 욕망의 피라미드에 올라 탈 것인지 말 것인지만 결정하면 되었다. 올라 탄 자는 그 열매를 향유하면 되었고, 그렇지 못한 자는 사회에서 축출되면 그만이었다. 짜릿한 각자도생의 시대. 그야말로 전선은 분명했고 그 전선 위에서 각자 부와 명예를 위해 전력을 다 하면 그에 따른 보상이 착착 주어지는 시대, 그것이 바로 1960년대였다. 하기에 50년이 지나 21세기에 접어든 오늘날까지도 보수는 1960년대를 그리워한다. 광화문에 펄럭디는 태극기를 든 노인들은 역사의 시계를 자신들이 청장년 시기를 보냈던 그 시절로 되돌리고 싶어 한다.


한국의 보수층은 '속도의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다. 하기에 이들은 '우리는 그 시대를 차분하게 생각해 볼 시간이 없었다'고 항변한다. 닥치고 열심히 일하면 잘 살게 된다고 들었고 또 그렇게 믿었기에 자신들은 그저 열심히 삶에 몰두했을 뿐, 정의니 대의니 하는 것들은 그저 배부른 이야기였을 뿐이라고 - 그리고 심지어 지금도 그러하다고 - 부르짖는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의 그러한 변명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까? 혹 1960년대라는 시대적 조건 속에서 만들어진 문화적 DNA와 그것에 대해 반지성주의적인 태도야말로 오늘날 우리가 '헬조선'을 경험하게 된 이유인 것은 아닐까?


리처드 호프스태터는 <미국의 반지성주의>라는 책에서  '지적 능력(ingelligence)'과 '지성(intellect)'를 구분한다. 호프스태터에 따르면 "지적 능력은 아주 좁고 직접적이며 예측 가능한 범위 안에서 적용되는 두뇌의 우수함을 가리킨다." 그리고 그러한 "지적 능력은 명확하게 한정된 목표의 틀 안에서 작동하며, 그런 만큼 쓸모없어 보이는 사고방식은 재빨리 잘라내버린다." 반면 "지성은 두뇌의 비판적이고 창조적이고 사색적인 측면이라 할 수 있다. 지적 능력이 어떤 사안을 파악하고 처리하고 정리하고 조절하는 것인 데 비해, 지성은 음미하고 숙고하고 의문시하고 이론화하고 비판하고 상상한다."(리처드 호프스태터 지음, 유강은 옮김, <미국의 반지성주의>(교유서가, 2017), 49쪽)


1960대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헬조선에서 '지적 능력'과 '지성' 중 어느 것이 우위를 차지했는가에 대해서는 별다른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이전 글에서도 언급했던 것처럼 헬조선에서 압도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지적 능력'이지 '지성'이 아니다. 오늘날에는 그 정도가 더욱 심해져 후자는 전자의 조롱거리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1960년대를 '선택의 시대'로 규정하고 싶다. 그리고 왜 1960년대가 여전히 '선택'이 가능했던 시대였는지를 알아봄으로써 우리는 그 시대를 그리고 오늘을 더욱 처절하게 반성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1960년대의 DNA를 장착한 헬조선의 기성세대가 쉽게 이야기하듯 그 시대는 그저 '속도'의 시대이기만 했을까? 그렇지 않다. 오히려 1960년대는 오늘날보다 더욱 고급진, 그래서 이 시대를 반성하게 만드는 건전한 '지성'이 살아 숨쉬던 시대다. 그리고 단순한 '지적 능력'만이 아닌 '지성'이 살아 숨쉬던 시대임을 증거하는 잊혀진 조각들을 살펴본 후 그러한 '지성'의 숨결이 어떻게 스러져 버렸는지를 생생하게 목격하는 것이야말로 '헬조선'의 기원에 대한 처절한 기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사상계>를 애도하며


잡지 <사상계>는 1953년 4월 1일 창간되어 1970년 5월호에 김지하의 시 <오적>을 게재한 것이 문제가 되어 폐간될 때까지 약 17년 간 한국 '지성'의 보루였다. 잡지 <사상계>의 목차를 한 번 훑어 보는 것만으로도 <사상계>가 제시했던 한국 사회의 지적 구조와 성격이 무엇이었는지 가늠해 볼 수 있다(이에 대해서는 김려실, 김경숙, 이시성, <종합잡지 사상계 총목차 및 인명 색인>(역락, 2020)을 참조할 수 있다).




위 사진은 <사상계> 1968년 2월호의 겉표지와 내용 일부이다. 아래 오른쪽 사진으로 확인할 수 있듯 <사상계> 1968년 2월호는 '대학사회론'을 '교양특집'으로 싣고 있다. 그리고 아래 왼쪽 사진에는 대학입시철 고사장마다 내걸린 '합격 기원 플랭카드'를 보여주면서 '자주대학에 일제의 유산이 건재 / 일제는 갔다 다시 와도 비좁은 대학의 문(門)과 학생의 기개만은 今如是 古如是(오늘도 이러하고 예전도 이러함: 곧 변화가 없음을 말함)인가'라고 쓰여 있다.


1968년 2월호에서 <사상계>가 비판의 날을 들이대고 있는 대상은 한국의 대학이다. '대학은 무엇인가 그리고 어떠한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가'와 같은 오늘날 더욱 필요한 관점들이 소개되어 있다. 특히 사진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대학 입시에 총력을 기울이는 한국 사회의 분위기를 '일제의 잔재'로 판단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 깊다.


더불어 위쪽 두 사진은 각각 고대와 연대 교수였던 이항녕과 박대선이 쓴 <대학의 자주성>과 <국가 발전을 위한 대학의 사명>이라는 글의 서두 부분이다. 이항녕은 자신의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오늘날 대학의 자주성을 침해하는 요인을 대별하면 정치적 세력, 경제적 세력, 문화적 세력이라고 할 수 있다. 교육은 사회적인 발전과 인간적인 창조를 잘 조화시킬 임무를 가지고 있으므로 교육은 정치나 경제나 문화가 각각 건전하게 육성되기를 바라지만 그것이 교육의 자주성을 침해하게 되면 교육이 위태롭고 교육이 위태로우면 정치나 경제나 문화의 건전성이 상실된다."(<사상계>, 1968년 2월호, 29쪽)


또한 박대선은 <국가 발전을 위한 대학의 사명>에서 대학의 사명을 다음과 같이 개괄하고 있다.


1) 유위유능(有爲有能)한 인재의 개인적 발달을 도모하는 기회의 부여

2) 문화적 유산의 전달

3) 연구와 창조적 활동을 통한 기존지식의 확충

4) 생활개선과 사회진보를 위한 학문의 적용

5) 공공복지 증진에의 직접적인 공헌

(<사상계>, 1968년 2월호, 19쪽)


위의 글이 대학에 대한 파격적이거나 혁신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대학'에 대한 진지하고도 깊은 고민이 교양 잡지를 통해 논의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흔히 속도의 시대, '압축적 근대화'의 시대로 일컬어 지는 1960년대에 이러한 '지성'의 목소리가 분명히 한국에 살아 있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주지하듯 우리는 오늘날 <사상계>와 그 정신을 그저 '애도'할 수밖에 없다. 1975년 장준하의 석연치 않은 죽음이 상징하듯 <사상계>는 패배했다(좀 더 정확히 말해 매우 불공정한 방식으로 '패배당했다'). 1970년 <사상계>의 강제 폐간과 1975년 장준하의 의문사는 '지성'이 '지적 능력'에 의해 패배당했음을 고지하는 '정초적 사건'이었다.


'선택의 시대', 즉 여전히 모종의 선택이 가능했던 1960년대는 그렇게 끝이 났다. 그리고 그 '끝' 이후에 전개된 역사는 '지적 능력', 즉 '아주 좁고 직접적이며 예측 가능한 범위 안에서 적용되는 두뇌의 우수함'만이 판을 쳤던 역사였다(그리고 그 역사는 오늘에 이르러 완성태에 이르고 있다). 


우리는 이제 '잠시나마 가능했던 선택지'에 대한 애도를 뒤로 하고 '지적 능력', 아니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해 '반지성주의'가 판을 쳤던 시대를 마주해야 한다. '장준하의 시대'가 아닌 '박정희의 시대'를 들여야 봐야 하는 것이다. 헬조선의 뿌리가 본격적으로 만들어졌던 바로 그 시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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