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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mscist Mar 19. 2023

헬조선 설명서

우리는 왜 '헬조선'에 살게 됐을까?

1960년대_선택의 시대_1


우리는 흔히 한국 - 혹은 이 글의 맥락에 있어 말한다면, 헬조선의 - 의 발전 방식을 '압축적인 근대화'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이 '압축적인 근대화'는 사실 그 과정 속에서 발생한 여러 가지 세부 사항들을 뭉개버린 개념에 불과하다. 근대화 앞에 '압축적인'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가장 큰 이유는 그 속도가 매우 빨랐고, 그 빠른 속도만큼이나 유럽 혹은 여타의 선진국에서 수백 년 동안 벌어진 일이 불과 수십 년 사이에 벌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좀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아무리 그 과정이 '압축적'이었다고 할지라도, 그 과정 속에서 아무런 모순과 문제점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좀 더 적나라하게 말한다면, 실상 이 '압축적 근대화'라는 말은 매우 빠른 속도로 진행된 근대화 과정이 만들어진 수많은 모순과 문제점을 얼버무리려는 수식어에 불과한 것이다. 그 '압축적인' 과정 속에는 분명 수많은 모순과 문제점이 축적되어 있었고, 그러한 모순과 문제점을 그저 '압축적'이라는 수식어로 덮어 버리는 게으른 습관이야말로 '헬조선'이 만들어진 중요한 문화적 배경인 것이다.


본 '헬조선 설명서'는 앞서 교육이라는 욕망 체계의 기원이 일제의 식민 지배에 있음을 살펴보았다. 일제가 헬조선에 이식해 놓은 욕망 실현 체계로서의 교육은 결국 고차원적인 사고 자체를 봉쇄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삼고 있는 것이었다. 일제는 조선인으로 하여금 오직 '먹고 사는 것'에만 몰두하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일제의 그러한 식민 정책보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일제가 이식해 놓은 상부학부 위주의 교육 구조가 강고하게 살아 남아 오히려 오늘날 그 꽃(?)을 피우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렇게 일제가 심어 놓은 오직 먹고 사는 것에만 몰두하는 상부학부 위주의 교육은 바로 방금 언급했던 '압축적 근대화'의 시대였던 1960년대에 비로소 강고하게 그 뿌리를 내리게 된다. 다시 말해 1960년대 - 좀 더 정확히 말한다면 '박정희의 시대' - 야말로 오늘날 절정으로 치닫고 있는 '헬조선'의 뿌리가 된 시대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흥미로우면서도 안타까운 점은 1960년대가 또한 '선택의 시대'이기도 했다는 사실이다. 이어질 글에서 보게 될 것처럼, 1960년대가 '선택의 시대'였다는 회고적 규정은 결국 장준하와 박정희라는 두 가지 인물을 통해 집약-상징화된다. 잡지 <사상계>를 창간한 장준하가 일제에 의해 이식된 문화 체계를 비판적으로 반성하고 새로운 문화 체계를 구축하려 했던 인물이었다면, 박정희는 일제가 이식한 문화 체계를 그대로 계승하면서 그것을 반공주의와 결합해 경제 성장에 몰두하는 문화 체계를 만들어낸 인물이다. 1960년대는 바로 이 두 명의 인물로 대표되는 시대이며, 이 두 인물이 대표하는 모종의 문화 인식이 충돌한 시대이자, 선택이 가능했던 시대이기도 했던 것이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라는 말처럼, 역사는 박정희의 기록으로 남았다. 오늘날 헬조선은 - 그에게 동의하든 아니면 반대하든 - '박정희'라는 이름은 선명하게 기억하지만 '장준하'라는 이름은 잘 기억하지 못한다. 물론 장준하와 박정희라는 인물 중 후자의 이름이 더욱 선명한 흔적을 남기게 된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폭력'이다. 장준하의 사인은 여전히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이지만, 분명한 것은 그 행위 주체를 명확히 특정할 수 없는 '폭력'이 장준하를 이 세상,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해 '헬조선'으로부터 - 물론 장준하는 '헬조선'을 원했던 것은 아니었겠지만 - 몰아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장준하라는 인물의 죽음을 단순히 '폭력에 의한 한 개인의 죽음'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장준하의 석연치 않은 죽음은 일제가 이식해 놓은 문화 체계에 대한 '취사 선택'에 있어, 장준하가 제시한 모델이 '폭력'에 의해 사멸되고 박정희가 제시한 모델이 권력을 잡게 되었음을 고지하는 '정초적인 사건'이었던 것이다.


이어질 내용을 통해 보게 될 것처럼 당시 - 그리고 오늘날의 - 절대 다수의 한국인은 폭력에 의해 사멸한 '장준하 모델'을 기억하려 애쓰기보다는 '박정희 모델'에 열광했/한다. 박정희가 만든 '(일제가 심어 놓은) 위계적인 학벌구조+반공주의+자본주의'라는 꿀조합이 만들어낸 '경제 성장의 기적'은 한국인에게 잊지 못할 쾌감을 선사했고 오늘날에도 그 쾌감에 대한 향수가 광화문 거리에 넘쳐 난다. '박정희 모델'은 그야말로 '히트 상품'이었다(그리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러하다). 당시 팽창하던 자본주의덕에 커져만 가던 '파이'를 '학벌'이라는 위계 구조에 따라 배분하는 것은 매우 공정해 보였다. '노력한 만큼 가져간다'는 공의로운 공식이 신나게 돌아갔던 것이다. 그리고 반공주의라는 카드를 써서 불순분자를 솎아내면 사회는 곧바로 '정화(淨化)'되었다.


하지만 오늘날 '위계적인 학벌구조+반공주의+자본주의'라는 조합은 더 이상 '꿀조합'이 아니게 되었다. 뒤에서 다시 논의하게 되겠지만, '위계적인 학벌구조', '반공주의' 그리고 '자본주의'라는 세 가지 요소에 있어 가장 먼저 고장나기 시작한 것은 '반공주의'였고, 그 다음은 '자본주의' 그리고 마지막은 '위계적인 학벌구조'다. 오늘날에 이르러 이 세 가지 요소 중 그것이 만들어진 당시처럼 작동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헬조선의 지도자들은 - 그리고 그들의 충직한 추종자들은 - 공부를 하지 않는 이들이기에 이 세 가지 요소로 이루어진 조합에 계속해서 매달리면서 그 조합을 복원해 내면 우리가 다시 '잘 살았던 시대'로 되돌아 갈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데 애달프게도 그들은 이 세 가지 요소 중 어느 하나도 자신이 직접 만들어낸 것이 아니기에 그것을 복원시킬 능력이 없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공간이 '헬'이 된 가장 직접적인 -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식민'이다 - 원인은 1960년대에 정초된 '위계적인 학벌구조+반공주의+자본주의'라는 조합이 더 이상 굴러가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며, 그 조합을 만든 사람들이 본래 그 조합을 구성하는 각각의 요소를 자기 손으로 직접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그 조합을 고칠 방법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 속에서 '헬조선'의 백성들은 애처롭게 오직 한 가지 요소에만 매달리고 있는바, 모두 알고 있듯 그것은 바로 '위계적인 학벌구조'다(그리고 그 위계적인 학벌구조마저 점점 더 쪼그라들고 있다).


'위계적인 학벌구조 + 반공주의 + 자본주의'라는 조합이 '헬조선'을 구축하고 있는 근본 공식이라면, 이 공식을 해체해서 다른 조합을 만들면 될 것 아닌가? 당연한 말이다. 하지만 누가 어떻게 그 조합을 해체할 수 있을까? ''학벌구조+반공주의+자본주의'라는 근본 공식을 도출할 시간에 '근의 공식'을 하나라도 더 외워 '오늘만 사는 삶'에 열중하라'는 헬조선에서, '학벌구조+반공주의+자본주의'라는 조합을 근본적으로 해체하고 다시 시작해 보자는 말은 사치가 아닌가? 이 지엄한 사회적 명령에 감히 토를 달 수 없기에 <헬조선 설명서>는 절반의 사치로 남으려 한다. 새로운 조합을 제시하는 사치까지는 부리지 못하겠지만 그것이 만들어진 과정에 대한 기록을 남기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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