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MSIL INTERCEPT)

부끄럽지만 부끄럽지 않다

by 훌륭하다

"자 이제 결전의 시간이 왔다."


잠실역.


승패는 단 4초 안에 결정된다.


'물병을 줍는 건 단순한 청소가 아니야.'


그 행동은 도시의 무관심을 깨는 용기의 증명이다.


'완벽하고 우아하게 성공해 주겠어.'


​지하철은 2호선은 노선을 따라 미끄러지듯 달리고 있었다. 객실은 인파로 가득 차 있었고, 사람들의 땀 냄새와 피로가 섞인 공기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나는 출입문 근처에 몸을 기대고 있었지만, 나의 모든 신경은 객실 중앙의 목표물, 즉 버려진 플라스틱 물병에 쏠려 있었다.


​물병 주변은 일종의 무관심 구역이었다.

수많은 발이 오가지만, 누구도 그 물병을 줍거나 치우려 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물병을 피하는 동작은 마치 정교한 안무 같았다.


​잠실역은 이 미션의 성패를 가를 클라이맥스 무대다.

승하차 인파의 폭발적인 혼잡을 틈타야 한다.

그 혼돈이야말로 내가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엄폐물이다.


​5

4

3

2

1

이번 역은 잠실, 잠실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 This stop is Jamsil...


​안내 방송이 나오자마자 객실 내부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사람들은 가방을 고쳐 메고,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하차 태세로 전환했다. 모든 시선이 문에 집중되는 바로 이 순간이, 나의 움직임이 가장 덜 감지될 타이밍이었다.


'전투 개시!, I'm ready for action'
​'쉬익!'


​출입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바깥공기와 하차 인파의 압력이 객실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나는 그 압력에 몸을 맡기는 척하며 물병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0.5초: 나는 허리를 굽히는 대신, 몸의 중심을 낮췄다. 급하게 신발 끈을 고쳐 매는 듯한 동작을 취하며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유도했다. 주변 하차 인파의 옷자락과 가방이 나의 움직임을 가려주는 찰나의 순간이었다.


​1.5초: 무릎을 꿇듯 몸을 최대한 낮췄다.

주변 사람들의 구두와 운동화가 내 머리 주변을 쉴 새 없이 스치고 지나갔다. 손을 뻗어 목표물까지의 거리를 측정했다. 약 50센티미터.


​2. 2. 초 ~ 3.0초: 물병 확보, 따가운 시선에 포착되다.
​손을 빠르게 뻗었다. 손끝이 차가운 플라스틱의 표면에 닿았다.


'확보 완료!'


​물병을 움켜쥐고 몸을 일으키는 순간, 객실을 빠져나가던 한 남자가 나의 부자연스러운 동작을 목격했다. 그의 눈이 커졌다.


​"어, 뭐지? 저 사람 지금 뭐 한 거야?"


​남자의 낮은 혼잣말이 문이 닫히기 전의 소란 속에서 유독 또렷하게 들렸다. 그의 시선은 즉각적으로 나를 '이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으로 규정했다.


그 시선은 곧 주변에 있던 다른 두세 명의 시선까지 끌어당겼다.


​'들켰다! 익명성의 장막이 찢어졌다!'


​나는 주운 물병을 들고, 그들의 집중된 시선을 온몸으로 받아냈다. 그 눈빛들 속에는 '왜 굳이?', '착한 사람인 척하는 건가?', '뭘 주운 거야?'라는 수많은 질문과 판단이 뒤섞여 있었다. 무관심 속에 숨어있던 나는, 이제 그들의 불편한 시선 앞에 홀로 노출된 존재가 되었다.


​이 사소한 물병 줍는 행위가, 이토록 많은 부끄러움을 동반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3.5초 ~ 4.0초: 부끄러움과의 전력 질주


​'띠링! 문이 닫힙니다!'


​경고음이 울렸다. 나는 더 이상 그 시선을 감당할 수 없었다. 내 행동의 정당성이나 선의를 설명할 시간도, 용기도 없었다. 오직 이 공간, 이 시선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강렬한 충동만이 남았다.


​나는 물병을 움켜쥔 채, 마치 탈출하는 죄인처럼 문이 닫히기 직전의 틈새로 몸을 날렸다. 승차하려는 사람들을 뚫고 잠실의 영역에 발을 디뎠다. 드디어 ​지하철의 문이 닫히고. 나는 성공적으로 잠실역에서 내렸다.


'​미션 성공!'
​내가 방금 나온 지하철은 이미 다음 역을 향해 속도를 높이고 있었다. 차창 너머로 아까 나를 쳐다보던 사람들의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목표물을 확보하고, 위험구역에서 이탈했다.
​하지만 나는 승리의 기쁨 대신, 뜨거운 기운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물병을 주웠다는 뿌듯함은 잠깐, 남들의 시선에 포착되어 도망쳤다는 부끄러움이 훨씬 더 크게 남았다.


​나는 고개를 숙인 채, 구석의 쓰레기통을 찾아 황급히 걸었다. 리고는 주인에게 버려졌던 물병을 재활용품 칸에 고이 던져 냈다. '툭.' 소리와 함께, 내가 안고 있던 부끄러움의 무게도 함께 사라지는 듯했다.


지하철 한가운데 떨어진 물병은 단순한 쓰레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이 각박한 도시에서 '옳은 일을 하는 행위'가 얼마나 고독한 전투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시험대였다.


​다음에 또 물병을 보게 된다면, 나는 과연 이 부끄러움을 다시 감수할 용기를 낼 수 있을까? 잠실역의 소음 속에서, 나는 그 질문에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갑자기 쓰러진 분이 바닥에 닿기도 전에 반응하던 중년 신사, 시각장애를 겪고 계신 분에게 실례가 될까 봐 옆에서 조용히 따르던 젊은 청년, 자신보다 무겁게 보이는 물건을 어르신 대신 옮겨주던 어느 학생.


지금도 대가 없는 선행을 하고 있는 그 모든 영웅들에게 고합니다.


당신들 덕분에 세상은 아름답습니다.


작가의 이전글미용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