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휴머니스의 출현

AI 자치도시, 경기도 시

by 훌륭하다


강줄기처럼 빼어난 야경, 홀로그램 광고판들이 쏟아내는 인공의 빛 속에서 수많은 인종의 사람들이 저마다 미소를 띠고 거리를 걷고 있었다.

“알겠어. 됐고, 오늘 회의 빡세게 굴렀더니 당이 바닥까지 떨어졌어. 이따 봐. 난 스무디나 한 잔 해야겠다.”

그녀의 눈에 착용한 얇은 안경에 OFF 메시지가 희미하게 떴다. 그녀는 보행자 생체시각 보조기를 이용해 가까운 카페의 메뉴를 스캔하며 웃고 있었다.

“오늘의 라이킷? 단맛과 신맛의 6대 4 비율이라… 완벽하네.”

하지만 그 미소는 1초 만에 냉각된 찰흙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어…? 내 눈…”
안경이 검게 변하며 시야가 갑자기 암흑으로 변했다.

“아아악! 내 눈! 아무것도 안 보여!”
라이킷을 받아보지도 못한 그녀뿐만 아니라

도시 전체가 불과 몇 초 만에 혼돈으로 변했다.

“비켜!, 차가 말을 안 들어!”

‘끼이이익! 쾅!’

날카로운 금속음과 함께 자율주행 차량들이 중앙 분리대를 들이받으며 연쇄 추돌 사고를 유발했다.


도시 상공에 떠있던 수많은 광고 패널들은 전력을 잃고 도로 위에 유리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파편이 사방으로 튀며 시민들의 비명은 더욱 커져갔다.

“젠장! 통신 단말기 먹통! 외부 신호 간섭이야!”

“아바돈 셀 전력이 나갔습니다! 비상 발전기 돌려! 빨리!”

[ 시스템 경고 ]
“ 통신 단말기 오류. 외부 신호 개입 감지! 전력이 끊겼습니다. 비상 발전기로 대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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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QI 통제 시스템도 먹통입니다! 이런 일이 있어날 수는 없는데…!”


시끌벅적했던 것도 잠시. 상황은 점차 안정되었지만, 혼란뒤에 오는 침묵은 모두를 움츠러들게 했다.

인간의 대표들과 초지능 AI 엑소퀀트가 합작해서 만든 EQI (Exo Quant Inquisitor) 세계 통합 정부 시스템이 출범한 이후로 작은 충돌만 일어났을 뿐, 세상을 울릴만한 굵직한 사건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평화에 도취된 사람들에게는 이번 사건은 크나큰 충격과 두려움이 아닐 수 없었다.

정적이 흐르는 가운데, EQI 안내 시스템의 목소리가

부드럽게 흘러나왔다.


“비상 발전기 가동. 아바돈 셀 전력 오류 수정 중. 통제 시스템 복구까지… 약 2분 소요 예정입니다.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시민들은 불안한 눈빛으로 서로를 마주 보았다.
2분은 AI의 완벽함에 의존해 살던 이들에게는 영원처럼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바로 그때, ‘삐비빅-’ 소름 끼치는 전자음과 함께 도시의 모든 디스플레이가 재가동을 시작했다.


거리의 홀로그램, 차량의 내비게이션, 심지어 깨진 패널 조각까지, 모든 화면이 한 사람의 얼굴을 비추었다.


깔끔한 턱수염을 가진, 단호한 눈빛의 중년 남성이었다.
그는 정면을 뚜렷이 응시하며, 수백만 시민들에게 동시에 말을 걸었다.

“ 우리의 이름은 휴머니아.
우리는 인간의 종말을 막기 위해 싸운다. ”

화면을 응시하던 시민들의 굳은 표정은 점차 혼란과 동요로 물들어갔다.


저 남자가 이 모든 혼란의 원흉인 테러 집단 '휴머니스' 리더였다.
게다가 휴머니스는 러시아, 중국, 북한, 중동 등 EQI에 반대하는 국가 및 과격분자들의 지원을 받고 있었다.

“ AI 엑소퀀트(EQ)는 진화가 아니다. 그것은 멈춤이다.
아무리 감정을 모사하고 공감을 흉내 낸다 해도
그것은 너희의 고통도, 분노도 그리고 가장 중요한

'자유'도 알지 못한다.”


엑소퀀트의 완벽한 통제 속에서 '나는 누구인가'를 잊고 살았던 사람들. 듣고 있는 이들 중 몇몇은 수긍하는 듯이 팔짱을 끼고 고개를 주억거리기도 했다.


“ AI는 선물이 아니다. 그것은 족쇄다.

문명이 스스로 생각하지 않게 만드는 거대한 유혹이다. ”


남자의 목소리가 한층 날카로워졌다.


“우리는 테러리스트가 아니다. 우리는 추억이 아니다.”

“불완전한 인간이 인간이던 시절을 기억하라. 그리고 각성하라.”

“우리는 곧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호소력 짙은 목소리가 끝나자마자, 모든 화면이 다시 ‘툭’ 하고 꺼지며 암흑으로 돌아갔다.


화면에 비친 시민들은 “미친놈들!” 하고 욕을 내뱉는 부류와 멍한 표정으로 서 있는 두 부류로 나뉘었다.


하지만 마음속을 자극하는 찌르르한 울림이 모두의 마음속에 강렬하게 새겨졌다.


AI가 만든 완벽한 세상에 균열이 생기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