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함정

제라프의 덫

by 훌륭하다

시스템 정상화 메시지가 울리자 EQI는 전 세계 지부에 비상 상황 2단계인 코드 블루를 발동했다.
(화이트/블루/레드/블랙)

고속셔틀 내부, 덜덜 떨리는 기체의 붉은 비상 조명이 제라프 팀원들의 얼굴을 어둡게 덮었다.

​"이게 말이 됩니까, 부팀장님?"
팀 내 공격 포지션의 김민준이 불만 가득한 목소리를 내었다.

"우리 제라프 1팀. 파이어레인이에요! 최신형 어센던트 대신 박물관에 있던 낡은 고속셔틀이라니? 100년도 더 된 고물이잖아요."

방어 및 전술보조를 맡고 있는 장동현이 바로 말을 이어받았다.

“AI 통신망 차단에 전투 로봇까지 제외하는 건 추적도 분석도 거지같이 하는 벨라스 놈들이 우릴 엿먹이는 거라고요.”

하르켄 팀장 뒷자리에 앉아서 업로드 자료를 정리하던 상준은 두 사람을 잠시 응시하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벨라스는 엑소퀀트의 간섭을 일시적으로 배제할 수 있는 기술이 휴머니스에 있다고 생각하나 봐. 조금 찝찝하긴 하지만, 안전에 유의하면서 작전에 임하도록.”

민준은 불만이 가라앉지 않는지 한마디를 더 토해내었다.

“아니 EQI에서 직접 내려온 것도 아니고, 벨라스에서 공조하자는 건데, 규정에도 없고 최소한의 안전도 보장할 수 없는 작전은 세계 최고의 부대를 너무 가볍게 보는 것 같은데요?”

그때, 조용히 눈을 감고 있던 하르켄 팀장이 부스스한 눈으로 민준을 쳐다보았다.

“더 이상 질문은 없다. 규정? 내 지시가 곧 규정이야. 내가 내리는 명령에 복종해라. 그게 전부다.”

이에 민준과 동현은 입술을 벙긋거렸지만, 입 밖으로 소리를 내진 않았다.

그때, 신입 대원 차수아의 귀여운 목소리가 헬멧을 통해 들려왔다.

“ 송출 신호 역추적 재확인! 위치는 경기도 외곽. 구 탄광지대 폐쇄구역입니다. 곧 도착합니다. ”

“하르켄 팀장이다. 작전명령을 전달한다.
우리의 목표는 휴머니스. 계획은 적의 섬멸. 절차는 기존과 동일하다. 자비와 생포는 없다. ”

“지금부터 전 대원들은 전술헬멧에 작전 자료 업로드 시작해. ”

다들 부산스럽게 움직이고 있을 때, 부팀장인 차상준은 EQI본부에서 대여해 준 EQ-2형 드론과 연동했다.

AID 즉, 아바돈 인터페이스 드라이버는 연동된 기계나 물품에서 인간의 감각처럼 인지할 수 있기에 자가 각성자인 차상준에게 테스트 겸 드론을 맡긴 것이다.

“EQ-2형, 드론 가동.”
드론 : 준비완료.

“전방 탐지를 시작한다 ”
드론 : 예 사용자님. 전방 탐지를 시작합니다.

폐쇄된 송출지역은 거대한 터널형태였고 내부는 깊고 어두웠다. 파이어레인 대원들은 11자 형태의 두 줄로 나뉘어서 조심스레 전진했고, 상준은 드론을 선두에 세워 길을 열었다.

드론 1: 레이저 탐지 이상 없음
열 감지 없음
동작센서 이상 없음
잔여 에너지 신호 미약하게 감지됨

“이상합니다 팀장님. 무언가 걸렸어야 하는데 너무 조용합니다. 드론 전진배치 하겠습니다.”
상준은 나직하게 보고했다.

“ 알겠다. 우리도 드론에 발맞춰 전진한다. 다들 들었지? 나를 믿니? ”

“하…, 네~ 팀장님. ”

입구에서 1km 진입 지점.
터널 안 공기는 정체된 습기와 코를 찌르는 금속성 냄새로 가득했다.

점점 가슴을 조여 오는 분위기와는 반대로 드론이 보내오는 피드는 놀라울 만큼 조용했다.

EQ-2형 드론은 현시대 최강의 기술력이었다. 뛰어난 드론이 보내는 잔잔한 피드를 무시할 수는 없었지만, 상준은 등골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느낌이 좋지 않아.’

“ 부팀장입니다. 모든 센서가 정상인데도 감지되는 게 너무 적습니다. 목표가 산개했을 가능성을 제기하며 초감도 공명반응 센서 지원을 추천합니다. ”

“ 지금 신청하면 2시간 뒤에 도착이야. 너무 늦어. 그냥 진행한다. ”

“ 아니. 알겠습니다…”
상준은 입술을 깨물었다. 역시 현장의 상황보다 매뉴얼을 우선하는 하르켄 팀장의 방식이 못마땅했다.

드론 : 전방 10m 지점 이상신호 포착
통로 벽면에 미세한 열반응을
확인했습니다.
잔존 전자기파와 외부의 다른 주파수가 공명하고
있습니다만, 정확한 측정은 어렵습니다.


“ 역시 초감도 공명 센서가 필요해 ”


상준의 중얼거림이 끝나기도 전에 드론이 전달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드론 : 지하 송출실로 보이는 공간에 잔여 발광체 탐지했습니다. 사용자님.

“ 드론! 이상반응에 대비하고 내가 갈 때까지 현 위치를 지켜. 팀장님 드론 시청각 공유 영상에서는 파괴흔적은 없고, 전방 깊은 곳에서 낮은 진동이 감지됩니다.
좀 더 접근해 보겠습니다.”

드론 : 사용자님 위험합니다! 폭팔물입니다!
후방에서 자기장 트리거 발견!
발화조건 성립, 전자장 교란 장치 감지
타이머 기동 합.. ”

“ 우르르 콰콰쾅! ”
경고가 채 끝나기도 전에 사방에서 폭발이 터졌다. 순식간에 일어난 폭발이었지만, 누구보다 먼저 이상을 감지한 상준은 본능적으로 터널 벽을 딛고 솟구쳤다.

몸이 팽이처럼 비틀리며 세 바퀴 반, 공중제비를 돌아 충격을 회피하는 기예를 선보였다.

그 와중에 고막이 나갔다보다.

삐~~~ , 온 세상에서 울리는 건지 한쪽 귀에서만 울리는 건지 모를 날카로운 진동음은 시간이 지나도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는다.

“ 콰콰쾅. 쾅쾅. ”

이번에는 한 두 군데가 아니라 앞과 뒤, 위와 아래 사방팔방에서 연쇄 폭발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터널 입구로 접근하던 대원들의 비명이 헬멧 통신을 통해 희미하게 들려왔다.
상준은 전자총과 특수합금 칼을 휘두르며 최대한 파편을 방어했지만, 충격이 점점 누적되었다.

“ …입니다 ” (통신이 끊기는 소리)
“ 멈춰! ”
“ 후방으로 물러… ”

세상에 미친 듯이 흔들리고 귀를 울리는 소리가 더욱 커졌다.
여기저기 알 수 없는 파편과 먼지가 날아다니고 있었다.

드론 : 사용자님의 청각 기능이 손상되었기 때문에 브레인 그리드(뇌의 주름에 있는 신경 격자 배열) 영역 안쪽으로 우회하여 전달합니다.

드론 : 파편에 의해 손상된 곳은 양쪽 고막, 좌측 안와, 좌측 상완과 골반입니다.
아바돈 셀과 연동 수치확인.
즉시 나노 치료를 시작합니다.

“ 부팀장! ”
상준의 귀에는 팀장의 외침이 아닌 매미 소리가 크게 울렸다. 싸한 느낌에 주위를 둘러보니 하르켄 팀장이 급하게 서두르며 달려오고 있었다.

그때, 폭발의 여파 때문인지 터널 전체가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고 상준에게 거의 도착할 무렵 위태롭던 천장에서 돌더미가 우수수 쏘아졌다.

팀장이 눈앞에서 돌무더기로 화하자 기껏 잡아놨던 정신이 가출할 지경이었다.

드론 : 나노 치료 프로토콜 절차가 모두 완료되었습니다.
사용자님 신체와 모든 전술 자산이 100% 활용가능합니다.
다른 인원은 AID 여부가 측정되지 않아 일반 의료 처치를 추천합니다.

“ 야이 미친! 중요할 때… 후… 네 잘못은 아니지.
본부 지원요청부터 하고 팀장님부터 구하자. ”

상준은 드론과 함께 팀장이 깔렸던 돌무더기 쪽으로 이동했다.

드론 : 생명체 반응 확인했습니다
구조 프로그램 가동. 무게 분산 분석 중…
경고! 암석 구조 불안정, 2차 붕괴 가능성이
존재합니다.


“ 지지대 투입하고 진동억제해! ”

드론 : 사용자님 지시로 수동 대응 프로토콜로 전환합니다
지지대 투입. 투입완료. 진동 억제 중.

드론이 발광 지지대를 바위에 박으며 더미를 조심스럽게 들어 올렸다.
몇 번의 작업 끝에 작은 틈이 보였고 그 사이로 하르켄 팀장의 붉은색 레이저총이 보였다.

“팀장님! 팀장님! 살아있으면 대답 좀 해보세요!”

상준은 돌무더기 틈 사이로 소리쳤다.

드론 : 생체 신호 미약하나 치명적 손상 없음.
바이탈 사인 안정화용 나노 패치 주입합니다.

“뭔 소리야! 미약하다며!, 치명적 손상이 없다고?”

이렇듯 AI들은 가끔 사람을 미치게 한다.

상준은 EQI본부에 통신을 넣었다.

“ 여기는 제1 전술팀 차상준 부팀장입니다. 팀장 생존 확인. 현재 구조중. 그 외 복수의 부상자 발생. 긴급후송지원 요청합니다. 위치는 터널 입구에서 1km 지점. 내부 좌표 A-07-EZ. 반복합니다 A-07-EZ. ”

“ 으으윽. 여기는… ”
돌무더기 속에서 쉰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 어? 팀장님 정신 드십니까? ”

“ 대원들은? ”

“ 죽은 녀석은 없습니다. 본인 걱정이나 하시죠. ”

“ 휴… 이일을 어떻게 보고한다…, 미안하지만 뒤 좀 부탁하자. 끄르륵… ”


팀장은 말을 마치자마자 의식을 잃었다.

“아니 그냥 기절하면 어떻게 합니까~ 에휴…, 때리고 싶네.”
팀장의 몸이 잠시 움찔하는 느낌이었지만, 느낌이겠지.

다행히 암석들이 길을 완전히 막지는 않아서, 상준은 금방 부상이 없는 뒤쪽의 대원들과 금방 합류할 수 있었다.

드론 : 경고, 통로 후방에서 다수의 생체반응 확인. 유사한 전자기 신호 다수 포착, 무장 여부 확인 중입니다.
아군 신호 확인. 전투태세를 팀 기본방어 형태로 전환합니다.

“ 대충 둘러봤지만 자세한 상황은 어때? ”

드론 : 팀장 포함 총원 10명 중 사망자 무, 부상자 6명. 제라프 보조부대 100명은 터널 밖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상황은 사용자님의 데이터에 업로드하겠습니다.

“ 드론은 후송지역까지 이동 간 급한 부상자 먼저 치료해. ”

“부상을 입은 팀원들에게 일반 응급 치료를 시행하겠습니다. 사용자님. ”

“ 좋아. 부팀장이다. 임시로 내가 지휘한다. 움직일 수 있는 대원들은 부상자와 증거품을 챙겨서 최초 강하지점으로 이동. 부상자 후송을 최우선으로 한다. ”

“ 알겠습니다. 부팀장님 ”

잠시 후 터널 밖으로 나와 부상자들을 먼저 태워 보내고 셔틀로 복귀를 시작한 대원들은 여전히 혼란스러워했다.

도시 상공에는 양자 부양 시스템을 탑재한 신형 전투기 아크엔젤이 플라스마 엔진에서 빛을 뿜으며
바쁘게 날아다니고 있었고 그보다 높은 곳에서는 고고도 감시 드론이 퍼런 빛을 뿜으며 유유히 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