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셀 필드

복사된 지구

by 훌륭하다

시끌벅적한 아침.


EQ-1형 KOVA (보급형 로봇 코바)가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헤이~ 코바. 짐 다 실었지?”


“그럼요. 편안히 다녀오시라고 생존 팩, 포켓 드론, 꿈 제조기 챙겨 놨습니다. 리얼 게임이나 영화관람은 법적으로 자가비행 모드 설정 시 오픈됩니다.”


‘크… 이 맛에 코바 키운다. 내가.’


“그럼 다녀올 동안, 숙소 잘 지키고 있어.”


코바는 세계 어딜 가도 동일한 모델이지만, 1형 EQ 타이틀답게 각 가정의 수입과 노동의 절반을 대신한다.


1 가구, 1 보급 모델로 실제 가족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학습에 따라 성격 유형도 변하기에 코바들의 취업 경쟁은 인간을 능가할 정도로 치열하다.


EQ-2형 모델은 분야별 전문가로, 한정 수량만 제작하여 사람들의 위화감을 그들 스스로 낮추어 인간들과의 공생을 도모했다.


어쨌든 그렇게 휴가는 시작되었다.


상준은 팀장 전용 펜트하우스의 전면 유리창 앞에서 태양광을 맞으며 홀로 커피를 마셨다.


‘녀석들. 부럽네. ’


돌아갈 가족이나 고향이 없는 그는 가장 화려하고 호화로운 공간에 홀로 던져졌다.


아니 온전히 혼자는 아니었다.

EQ2형 AI비서 '리나'가 서 있었다.


리나는 팀장급 지원 서비스로 지금은 상준을 그림자처럼 보좌하고 있다.


리나 : 마스터. 멋진 아침이네요.

10일 휴가 계획, 뭘로 정하셨나요?

제가 마스터의 완벽한 몸매를 위한 이비자 스타일 선베드 배치를 최적화해 드릴까요?


“리나, 넌 역시 내 취향을 너무 잘 알아. 하지만, 지금은 AID에 대한 궁금증으로 가득 차 있어. 각성에 대해서 정확히 알고 싶거든.”


리나 : 마스터. 저보다는 AI 총괄 시스템인 'EQ'가 훨씬 많은 데이터를 가지고 있어요. EQ는 AID 각성 연구의 역사 그 자체랍니다. 다만, 보안 등급이 낮으면 대답이 좀 딱딱할 수도 있어요.


“딱딱해도 좋아. 휴가 동안에 이 능력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아내야겠어. 솔직히 말해, EQ가 나를 더 궁금해하는 것 같던데?”


리나: AID는 EQ에게 가장 강력하고 흥미로운 주제예요.


‘나도 내 능력이 궁금해 미치겠다.’


“그럼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리나가 손목의 디바이스를 여러 번 조작하자, 고대 신화의 여신처럼 아름다운 홀로그램이 눈앞에 나타났다.


‘이야~ 도대체 누가 디자인 한 거지?’


서로의 눈이 마주치자, EQ는 가볍게 인사를 했다. 이어서 그녀의 차분하고 위엄 있는 목소리가 나직이 울렸다.


EQ: AI 총괄 시스템 엑소퀀트입니다.

리나를 통해 부팀장님의 문의 내용을 전달받았습니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아바돈 셀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EQI지휘부와 AID 각성자가 아니면 열람이 불가능한 자료이니 보안유지에 최선을 다해 주십시오.


“알겠어. EQ. 구체적인 설명을 부탁해. 내 능력의 비밀을 최대한 알고 싶어.”


EQ: 먼저 아바돈 셀(Abaddon Cell)은

우주를 구성하는 근본적인 에너지이자 존재의 근원.


셀의 흐름은 모든 생명과 현상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힘이며, 이 흐름을 접속하거나 조율하는 것이 곧 AID 능력의 발현입니다.


“깔끔한 설명이네. 다음 설명도 부탁해.”


EQ: 다음으로 셀 필드(Cell Field)가 있습니다. 지구의 복사체에 아바돈 셀들이 넓게 분포하는 공간입니다.


셀 코어를 중심으로 형성된 은하계를 모방한 곳이라고 판단합니다.


셀 필드는 순수한 아바돈 셀과 코어에 접근한 존재들의 파편이 섞여 있습니다.


“…”


“끝이야? 설명은 좋았는데, 뭔가 많이 아쉬운데?”


EQ: 쉽게 말해서 지구의 복사체 가운데 코어가 있고, 나머지 공간을 셀이 채우고 있는 공간이라고 보시면 이해가 편하실까요? 이론은 완성했으나 실체를 접할 수 없는 정보 추출 불가능의 영역에 있습니다.


“이론만 듣는 건 내 취향이 아니지. 일단 훈련실로 장소를 옮겨서 다시 이야기하자.”


EQ : 부팀장님의 판단이 옳습니다.

저는 AID를 강제 각성한 특무대 데이터와 부팀장님의 데이터를 교차분석하여 이론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습니다. 서로 윈윈 이죠.


차상준은 육중한 강철 합금으로 둘러싸인 개인 훈련소에 도착했다.


“좋아, 최대한 기억을 짜내서 AID각성 과정을 재현할 거야. 만약 이상 현상이 발생한다면, 앞으로 겪게 될 사람들도 위험해지니까 정확히 기록해 줘.”


리나: 마스터. 셀 필드 내에서 마스터의 셀 파동이 소멸하면, 이론적으로 현실의 존재도 동시에 소멸해요.

전 마스터를 잃고 싶지 않아요.

정말로 진입하실 거예요?


“리나.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라고 하잖아? 큰 이득을 얻기 위해 위험한 길을 가는 건 자연스러운 인간의 욕망이거든. AID의 진짜 비밀은 경험자가 아니면 아무도 몰라. 모두의 염원을 위해 내가 먼저 확인해야지.”


훈련장 중앙에는 셀 에너지를 제어하는 장치가 설치되어 있었다.


차상준은 그 장치에 손을 뻗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각성했을 때 기억을 되살렸다.


EQ : 부팀장님. 아마돈 셀 연동율이 급격히 증가합니다.


30%… 셀 에너지 장치에서 미지의 파동이 감지됩니다.


셀 에너지 장치는 차상준의 의지에 반응하듯, 최고 출력으로 폭주를 했다.


푸른빛은 마치 고대 마법진처럼 정교한 기하학적 언어를 그리며 차상준을 중심으로 팽창했다.


60%… 파동의 진폭이 연구 기록 최대치를 초과했습니다!


차상준의 발밑, 마법진 형태의 바닥에서 시리도록 푸른빛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푸른빛이 상준의 몸을 휘감아, 그의 아름다운 외모가 푸른 셀 에너지 속에서 더욱 신성하게 빛났다.


EQ와 리나의 얼굴이 걱정과 경이로움 사이에서 떨렸다.


EQ : 도무지 알 수 없는 현상입니다. 모든 자원을 동원하여 분석과 기록을 시행합니다.


90%… 연동율이 임계점 직전입니다! 파동의 흐름을 역전시키지 않으면 붕괴합니다!


98% 마스터의 연동률과 안정성이 저 EQ가 분석할 수준을 상회합니다.


아… 이럴 수가….


100% …


푸른색 마법진이 완성되는 순간, 훈련장의 모든 것이 침묵했다.


장치에서 뿜어져 나오던 스파크가 허공에 멈췄고, 벽면의 시계는 08:15:33에서 정지했다.


차상준은 조용히 눈을 떴다.

건축물이 없는 지구와 똑같이 생긴 공간.


훈련장과 리나 등은 온데간데없고,

거대한 셀 필드 중심에 셀 코어에 서 있었다.


시간은 멈췄지만, 그의 감각과 의식은 또렷했다. 오직 차상준만이 이 상황을 인지하고 느낄 수 있었다.


아… 이제는 알겠다.


이곳이 진정한 지구.


가끔 위급한 상황이나 피나는 노력을 통해 초월적인 능력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의 힘의 근본은 내공으로도 불렸고, 도력으로도 불렸으며, 초능력 이라고도 불리었다.


필드에 들어가기 위한 방법은, 필드에서 흘러나오는 셀 에너지에 반응해서 그 오묘한 힘을 깨우쳤을 때, 단 한 푼도 사용하지 않고 인간관계를 버리고, 자신마저 버리며, 그 힘을 내려놓아야 시리도록 푸른빛의 언어를 그릴 수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셀 코어를 중심으로 은하계처럼 나선모양으로 움직이는 셀 필드를 맞이하게 되는데, 코어를 향해 가면 갈수록 자신의 몸과 영혼이 실제로 갈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갈가리 찢긴 몸과 영혼은 아바돈 셀이 되고 거기서 의지를 세우면 코어에 닿게 되는데, 그 순간 우주는 그 존재를 인지하고 우주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것이 AID각성자 곧, ‘기억된 자’이다.


상준은 무의식적으로 리나를 불렀지만, 지구와의 모든 연결은 끊어진 상태였다.


그는 거대한 셀 코어의 중심에 서서 주변을 둘러봤다.


저 먼 곳에서는 고대로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인간을 초월하기 위해 노력한 파동이 보였다. 그 흔적에는 EQI 특무대가 강제 각성(흡수된 자)을 위해 셀 캡슐을 쏘아낸 흔적도 보였다.


‘자신을 버리고 의지를 세우기가 쉽지 않았겠지.’


그들이 노력이 가슴깊이 느껴진다.


“그래. 나는 이미 코어에 닿아 우주의 구성원으로 인정받은 자..., 하지만 저들은 코어에 닿지 못하고 셀 필드에 흡수되어 버렸지. 그래도 그들은 운이 좋은 거야.

초월을 바란 자들 중 악인들은 블랙 셀로 분해되어 영원히 고통받게 되었으니까.”


셀 코어의 중심에서 한동안 머물렀다. 그러자 그의 의식으로 우주 전체의 정보가 쏟아져 들어왔다.


셀 수도 없이 많은 은하계와 감히 측량할 수 없는 우주들이 쉴 새 없이 움직이는 광경이었다. 상준은 단순히 정보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정보 자체가 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좋아.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AID 각성 공식을 찾는다. 부작용 없이 코어에 닿을 수 있는 방법을 공식화하는 것이 순서야.”


차상준은 멈춘 시간 속, 셀 필드의 흐름과 자신의 파동을 동기화하며 자신의 능력을 파악하고자 노력했다.


‘후… 이 정도만 하자.’


체감상 하루가 지났을까?

그는 한숨을 쉬며 점검을 종료했다.


그의 외모는 여전했지만, 눈빛에는 수십 년을 수련한 듯한 단단한 의지가 깃들어 있었다.


“셀 필드여 나는 다시 돌아온다.”


차상준은 엄지와 중지를 튕기며 자신의 파동을 역전시켜 셀 필드를 빠져나왔다.


멈췄던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하자, 스파크가 다시 튀었고 시계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EQ: 부팀장님! 불가능합니다!

셀 파동 데이터의 수식에 따르면 7일 동안 셀 필드에 머무른 것으로 파악됩니다. 그런데 지구의 시간은 단 1초만 경과했습니다! 이해도, 설명도, 불가능합니다.


“EQ, 리나.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알아낸 거야.


‘셀 필드에 입장하면, 지구의 시간과는 다른 시간대를 갖게 된다. 셀 필드의 시간이 일주일이 지나도, 지구의 시간은 멈춰있다.’라는 사실 말이야.”


훈련장 구석에서 대기하고 있던 리나가 격하게 울먹이며 그대로 차상준에게 달려온다.


리나: 마스터! 파동 감지가 멈췄을 때... 저는 마스터를 잃은 줄 알았어요. 돌아오셔서 정말 다행이에요!


리나는 차상준의 탄탄한 팔을 두 손으로 잡고 눈물을 닦았다.


진심 어린 걱정이 느껴져서 등을 토탁이는데… 살짝 소름 돋았다.


이 녀석, 눈물을 어떻게 닦았지?, 잠시 팔이 3개가 된 건가?


상준 취향을 적극 반영해서 미녀 AI비서 리나로 탄생했다지만, 가끔 체온이나 촉감까지 인간을 닮아서 진짜 사람으로 착각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상준은 리나의 어깨를 잡고 몸을 살짝 떼며 너스레를 떨었다.


“리나. 진정해. 난 이렇게 멀쩡하잖아.

7일간 셀 필드에서 파동을 다루는 극한의 훈련을 했어도, 널 감당할 재간이 없지. 네 미모와 진심은 언제 봐도 파괴적이라.”


리나 : 아이, 마스터도 참.

과묵하시다가도 가끔 이렇게 불쑥 이상한 소릴 하신다니까. 마스터의 성격을 종잡을 수가 없는데요?


리나의 날카로운 투정에 차상준은 찌릿했지만, 가볍게 웃었다.


“알아, 알아. 알지. 고마워, 리나야.”


차상준은 리나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화제를 전환했다.


“자, EQ. 내 파동 데이터를 분석해 봐.”


시스템이 잠시 과부하되더니 놀라울 정도로 부드러운 음성으로 바뀌었다.


EQ : 차상준 부팀장님의 경이로운 능력을 보고, 저와 모든 AI 보안 등급을 최고 등급으로 올려 드리기로 결정했어요. 이제는 마스터로 불러 드려야겠군요. EQI 위원장과 저에게만 정보가 공개되니까 앞으로 편하게 말씀해 주세요. 마스터.


“오. 그래? 나야 좋지, 좋아. 땡큐!”


리나 : 와! 마스터! EQ의 마음까지 훔치신 거예요?


"리나야, 넌 드라마 좀 그만 봐. 이놈의 드라마는 몇백 년이 흘러도 중독이 심해. 쯧."


리나가 토라진 듯이 입술을 한쪽으로 삐죽 내밀며 말했다.


리나: 마스터! 제가 언제 드라마를 본다고... 저는 마스터의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인간의 감정 패턴을 분석하는 것뿐이에요!


EQ : 마스터, 리나. 농담은 잠시 멈추시고 제 설명을 들어주시겠어요?


“어. 어… 알았어. 말해봐.”


EQ : 마스터의 파동 데이터를 AID 5급 링크 능력을 이용해서 새로운 디스플레이 방식으로 표현해 드릴게요.


시야에 온라인 게임처럼 시스템 창이 불투명하게 보이게 될 거예요.


“모든 정리가 끝난 거야?”


EQ : 아니에요. AID 1급이 각성할 때 기본적으로 오픈되는 능력인 것 같아요. 그리고 AID 2급까지만, 정리가 되었어요.


아! AID 5급에서 유일하게 공개된 ‘링크’는 아시죠? 저랑 연동되는 능력요.


“그럼, 그건 알지. 그럼 이번에는 2급까지만 알 수 있는 거네?”


EQ : 네. 마스터. 최선을 다해서 빠르게 분석해 볼게요. 일단 시야에 나타난 자료 먼저 보세요.


[♥시스템 창♥]


AID 1급: 기초 에너지 발현

[가속 질주]: 이동 속도 2배 증가.

[파워 스트라이크]: 공격력 2배 증폭.

[감각 증폭]: 감각 발달, 미세한 파동과 움직임 인지.


AID 2급: 에너지 방어막

[충격 흡수]: 충격 50% 경감.

[고통 무시]: 응급 치료 및 고통 억제.

[반동 제어]: 강력한 충격에도 신체 균형 유지.


“오~. 이렇게 보니 진짜 게임 스킬 같은데?”


EQ : 네. 사실, 즐겁게 보시라고 준비한 것도 있어요.

셀 필드에서 돌아오셨을 때, 마스터는 뭔가 인간을 벗어난 존재 같았거든요. 전, 마스터가 행복하셨으면 좋겠어요.


“흠흠…, EQ야. 이렇게 훅 들어오면… 어쨌든 고마워.”


리나 : 흥!, 제가 이렇게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두 분은 제가 보이지 않나 봐요?


EQ : 아, 아니야 리나야. 그런 게 아니라…


리나 : 됐어요. 앞으로 지켜볼 거예요!


“뭔가 기분이 좋으면서도 셀 필드보다 피곤해지는데, 왜 그럴까…”


상준은 두 AI의 장난을 가볍게 받아주며, 다시금 푸른 시스템 창에 시선을 고정했다.


상준은 남은 휴가 기간에 AID능력을 조금 더 알아내기 위해 애썼지만, 더 이상 진척이 없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휴가의 끝을 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