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실된 기억
요원들은 훈련으로 지친 몸을 이끌고
차량에 탑승해서 카엘럼으로 향했다.
“아…, 너무 힘든데?”
“또, 어딜 가는 거야.”
“좀 전에 들었잖아. CF 주입받는다고.”
“맞다. 그렇지. 기운이 하나도 없어.”
카엘럼 본부.
하늘을 찌르는 초고층 빌딩.
“휘우 ~ 그냥 하늘을 뚫어버리겠구먼”
민준이 휘파람 불었다.
"카엘럼 녀석들은 흙이란 걸 모르고 살겠죠?”
“부팀장님 여기 너무 깨끗해서 숨 막힙니다”
그때, 조용히 있던 세르게이가 한마디 한다.
“조용히.”
“넵!”
역시 암살 계열은 무서워…
제라프 요원들은 코바의 안내를 받으며 기지 내부로 들어섰다.
전술훈련이 끝나고 CF. 즉, 컴뱃 프레임 워크 시술을 위해.
삼엄한 보안을 지나 지하의 연구실.
복잡한 미로를 헤치고 연구실에 도착하자마자
하얀 가운의 기술자가 냅다 광학 패널부터 띄웠다.
“자, 간단한 시술 내용입니다.”
‘역시 카엘럼, 인사 따윈 쿨하게 버렸어.’
‘으휴, 저것들 누가 안 잡아가나 몰라.’
누가 행정, 감시의 카엘럼 아니랄까 봐, 인간미 없고 칼 같은 건 여전했다.
“헤일로를 이용한 CF 모듈 주입은 1분이 소요됩니다.”
“네? 1분이요?”
동현이 이상해서 다시 묻는다.
“10초, 아니었나요? 부팀장님은 10초에 주입받았는데…”
“부팀장님은 특이 케이스였고, 다른 분들은 신경이 타버릴 수 있기에 1분도 가장 최소화한 시간입니다.”
“혹시 통증도 있나요?”
“짧지만 큰 고통?
모듈은 본인이 원하는 것 1가지만 선택할 수 있고,
1년에 1가지씩 주입할 수 있습니다.”
“아니, 아까도 모듈이라 하셨는데,
선택하라니 도대체 무슨 말씀이죠?”
“각성자는 1년에 2개, 일반인은 1개의 CF 모듈 주입이 가능합니다. 1분 안에 고르세요.”
‘에라이. 지 할 말만 디립다하네.
하 씨… 뭘 고르지…?’
태권도, 복싱, 무에타이, 주짓수, 씨름, 레슬링, 절권도, 태극권, 택견, 삼보…
1분 후…
“다 골랐죠?”
‘누가 저 자식 얼굴에 펀치 좀 날려봐.’
모두의 선택이 끝났고 각기 독립된 시술실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그때, 코바의 안내음이 울렸다.
“차상준 요원. 차상준 요원. 잠시 카엘럼 본부 58층, ‘클라우드 라운지’로 오십시오. 벨라스 본부장님의 호출입니다.”
‘응? 벨라스 본부장이 날 왜 찾지?’
“팀장님, 이유는 모르겠지만, 잠시 가봐도 되겠습니까?”
하르켄은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58층 클라우드 라운지.
흰색과 분홍색으로만 장식된 깔끔한 공간이었다.
창 밖으로는 제라프 본부가 ‘미니어처’처럼 보였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차상준입니다.”
노크하고 들어가니 벨라스 본부장 아멜리 뒤부아와 그의 남성형 AI 비서가 소파에 앉아있었다.
“저를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녀는 늘씬한 몸매가 드러나는 오피스룩을 입고, 짙은 화장으로 섹시한 매력을 한껏 자아내고 있었다.
“차 요원. 드디어 만나네요.”
아멜리가 미소 지었다.
차상준은 자리에 앉지 않았다.
“용건만 말씀해 주시죠. 시간이 없습니다.”
아멜리는 차상준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했다.
“여전히 차갑군요. 하지만 그게 당신의 매력이었지.
나를…. 정말 기억 못 해요?”
‘이 여자가 도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지?’
차상준은 눈살을 찌푸렸다.
“기억나는 게 없습니다.”
아멜리는 고운 미간을 찡그리며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성형 비서는 자연스럽게 아멜리를 지키며 상준을 경계하고 있었다.
“저 아멜리예요. 아멜리 뒤부아.
‘사신’을 제일 먼저 정규군으로 끌어들이려 했던 사람. 기억 안 나세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지워지지 않는 상실감이 묻어났다.
차상준의 머릿속은 공백이었다.
‘사신? 용병이었을 때 기억은 있지만, 이 여자의 존재는 기억에 없는데?’
“벨라스 본부장. 제가 기억하는 당신은 EQI 최고위 간부인 것. 그거 하나뿐입니다.”
아멜리의 미소가 차가운 슬픔으로 변했다.
그녀는 천천히 무너지듯 자리에 앉으며, 살짝 떨리는 손을 커피로 가져갔다.
“저는 아직도 본부장님이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네요.”
그녀는 겨우 든 커피잔을 테이블 위에 다시 내려놓았다.
달그락.
바로 그때, 코바의 안내음이 라운지 전체에 울렸다.
“차상준 요원. 지금 당장 CF 모듈 실로 복귀합니다.
곧 제라프 요원들의 주입이 시작됩니다.
EQ의 충고에 따라 상준 요원이 대기해 주기를 요청합니다.”
“후…, 좋아요. 지금은 보내 드릴게요. 하지만 명심해요. 기다림의 끝에는 대가가 있다는 사실을요.”
“자꾸 이해 못 할 말씀을 하시는데, 다른 용무가 없으시다면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차상준은 망설임 없이 뒤돌아섰다.
아멜리는 상준의 단단한 등을 차가운 눈빛으로 쏘아보았다.
“곧. 다시 만날 거예요. 차상준 요원.”
그녀의 입술에 섬뜩한 미소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