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6일 <내면음감회> 이벤트에서 만난 영원희님과의 대화입니다.
영원희님은 K-pop 프로듀서로 커리어를 시작하여 이제는 독립 아티스트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영원희님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장르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프로듀서이자 아티스트 영원희입니다.
K-pop, 인디, 게임 프로젝트를 오가며 곡을 만들고 트랙메이커 겸 송라이터로 활동해왔고, 최근에는 음악을 도구로 스토리 텔링도 해보고 싶어서 제 이름으로 서사를 쌓는 작업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음악을 일로도 하고 세상과 소통하는 언어로도 사용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싶어요.
저는 처음 릴스를 보다가 원희님을 알게 되었어요. 더 많은 분들이 아실 수 있도록 릴스에 어떤 작업물을 올리고 계신지도 소개해주세요.
아직 크리에이터로 전향한지 오래되지 않아서 다양한 포맷을 실험하고 있어요. 다만 중심에는 항상 음악이 있구요. 작곡가이자 프로듀서로서의 백그라운드와 기술을 최대한 활용하는 콘텐츠를 만들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타일라가 한국인이었다면 어떤 노래를 불렀을까?>라는 상상에서 출발해 첫 릴스를 만들었어요. 한국에도 분명 그런 음악을 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텐데.. 이 영상을 보고 ‘곡 사고 싶다’는 DM이 오면 좋겠다는 마음이었죠.
또 다른 영상은, 저를 포함해 돈 없이 미래의 보상을 막연히 바라보며 창작을 이어가는 예술가들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했는데요. <결국 빛을 못 보고 반 고흐처럼 죽으면 어떡하지?>라는 두려움을 밸런스 게임 형식으로 풀어봤어요. 물론 제 음악과 연결해서요.
아직은 다소 중구난방일 수 있지만, 프로듀싱 기술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영원희’라는 아티스트의 서사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SNS에 나를 드러낸다는게 정말 어려운 결정이었을 것 같아요. SNS 활동 전후로 달라진 점이 있으신가요?
신기하게도, 음악과 커리어 바깥의 삶이 달라졌어요. 사람을 대하는 태도나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 여유도 생겼구요. 커리어를 내려놓고 새로운 길을 택했으니 오히려 더 불안해야 할 것 같은데, 숨통이 트였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 같네요.
케이팝 씬에 있을 때는 작업실에 틀어박혀 하루 종일 말 한마디 없이 비트만 만들었거든요. 어느 정도 정해진 길이 있었고, 저는 그 길을 달리기만 하면 됐죠. 그런데 이상하게도 늘 찝찝함이 남아 있더라고요.
곡이 잘 팔리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그 세계를 떠났고, 그렇게 "야생"의 SNS 세계에 던져지면서 저는 남의 이야기를 대신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라, 단 한 사람만 듣더라도 제 이야기를 해야 하는 사람이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탑티어 아이돌에게 곡이 팔려도, 그 곡이 진짜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아니라면 어딘가 어긋나 있었어요. 그 어긋남이 음악 외적인 삶에도 영향을 주고 있었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됐습니다.
지금은 저의 콘텐츠로 저만의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으려고 해요. 다른 욕심이 줄어든 느낌이에요. 마치 외로우면 식탐이 생기듯, 하고 싶은 말을 못 하면서 다른 욕망이 커졌던 것 같아요.
그리고 무엇보다 좋았던 건, 제 음악을 세상에 내놓는 데 누구의 컨펌도 필요하지 않다는 점이었어요. 제가 결정권자이고, 제가 책임지면 됩니다. 반응이 없으면 삭제하면 되고, 반응이 좋으면 감사하면 돼요.
마치 1차원에서 8차원으로 이동한 기분이에요. 누군가의 뒷모습만 바라보며 살다가, 어느 순간 누군가가 저를 대각선 아래에서 발견해주는 느낌이랄까요. 아직 큰 성과는 없지만, 계속하다 보면 저만의 팬을 조금씩 모을 수 있을 거라 믿고 있습니다.
음악에 대한 진심이 느껴져요. 원희님에게 음악이란 무엇인가요?
저를 가장 효과적으로 설명할 수 있고, 세상과 가장 적은 오해로 재밌게 소통할 수 있도록 하는 언어라고 생각해요.
저는 사람들과 공감과 이해를 주고받는게 매우 중요한 사람인데 알고보니 제가 생각보다 말을 잘 하는 편이 아니더라고요. 제 본심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는 순간이 종종 있었습니다. 그래서 말수가 줄었고, 대신 글을 많이 쓰게 됐습니다. 하지만 글 또한 유려하게 쓰는 스타일도 아니었습니다…(ㅋㅋㅋ) 그러다 보니, 짧은 가사 한 줄에 사운드 질감, 리듬, 화성, 멜로디를 덧입혀 의도를 직감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는 점에 깊이 매료되었어요.
또 돌이켜보면 음악과 가까이 있던 순간에는 늘 좋은 일이 많았어요. 파티에서도 음악이 흐르고, 친구 집에서 피아노를 치며 노래하던 기억이 있고, 처음 보는 사람에게 제 음악을 들려주면 경계심이 풀리기도 했습니다. 직업으로 삼아 생계를 유지하기도 했고요.
이렇게 정리해보니, 저에게 음악은 하나의 생존 방식 같습니다.
프로듀서라는 포지션을 선택하신 계기가 궁금해요.
사실은 원래 가수가 되고 싶었어요. (아마 많은 작곡가나 프로듀서 분들이 한 번쯤은 가수를 꿈꿔보셨을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스스로 노래를 아주 잘한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무엇보다 최대한 오래 음악을 하고 싶었습니다. 가수의 이미지나 스타일은 시간이 지나며 변하고 닳을 수 있지만, 노래 자체의 생명력은 더 길다고 생각했어요.
프로듀서는 음악 뒤에 서서 카멜레온처럼 다양한 스타일을 시도할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어릴 때부터 특정 아티스트의 팬이 되기보다는 "잘 만든 노래 한 곡"에 깊이 꽂히는 경우가 많았어요. 명곡이라면 무조건 들었고, 히트곡이 왜 히트곡인지 분석하는 데 관심이 많았구요.
또 어린 시절 TV에서 본 프로듀서의 모습이 강렬하게 남아 있어요. 부스 안의 가수에게 디렉션을 주고, 복잡한 믹서를 다루는 모습이 그 스튜디오 안의 실질적인 설계자처럼 보였어요. 그 장면이 제게는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음악을 통해 이루고 싶은 것이 있으신가요?
단순히 "잘 만든 곡 몇 개"를 남긴 사람보다는, 저만의 세계관을 가진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세계관을 이해하는 사람들과 연결되고 싶어요. 음악을 통해 이 세상을 조금 더 따뜻한 곳으로 만들고 싶고요. 화려해지기보다는, 소외되고 오해받는 사람들의 입장을 계속 이야기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저 역시 누군가의 음악을 통해 위로받았고, ‘이 모습 그대로도 괜찮다’는 감정을 느껴본 적이 있거든요.
평범한 토종 한국인 여성으로서, 태권도 학원에 다녔던 어린 시절이 있고, 월세를 걱정하는 현실이 있고, 아이를 낳는 게 무섭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고, 사랑하고 싶지만 때로는 귀찮은 그런 인간. 그런 평범한 사람이 음악으로 세상에 부르짖는 모습이 오히려 더 설득력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한국에는 화려한 케이팝 아이돌의 삶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런 사람도 살아가고 있다는 걸 재미있게 보여주고 싶습니다.
아 그리고 해외 페스티벌 무대에도 꼭 서보고 싶어요!!
요즘 집중하고 계신 작업은 무엇인가요?
요즘은 "보여지는 방식"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음악에만 투자하던 시간은 충분히 보냈다고 생각해요. 이제는 이미 만든 음악을 어떤 포인트로 강조해 더 매력적으로 알릴 것인지, 그리고 그 과정을 어떻게 콘텐츠화할 것인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혼자 작업실에서 "방망이 깎는 노인"처럼 보냈기 때문에, 이제는 그 모든 과정을 드러내는 법을 배우는 중이에요. 점점 크리에이터의 뇌로 변하고 있는 느낌이랄까요.
물론 결국 저는 음악으로 평가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영상 콘텐츠와 동시에 EP 앨범도 구상 중인데요. 숏폼 콘텐츠와 앨범이라는 롱텀 프로젝트를 어떻게 균형 있게 병행할지, 그 루틴에 익숙해지는 과정에 있습니다.
작업을 하다가 막히는 순간, 어디에서 영감을 얻으시나요?
저는 자기가 하고싶은 걸 결국 해낸 사람들한테 영감을 얻어요. 예를 들면 인터넷 세상의 구석탱이 깊은 곳에서 어쩌다 마주친 구독자 6명의 인디 뮤지션의 뮤비를 보면서요… 이 음악을 누가 들어줄지도 모르고, 그 음악으로 자신이 어떤걸 얻을지 기대를 전혀 하지 않는게 누가봐도 보이지만 자신의 세계관을 결국에 이 세상에 쏟아낸 분들이요. 음악적으로도 좋은 아이디어를 얻지만 그들의 에너지와 진정성에 감동해요. 결국에 그런 분들은 언젠간 발견되는 것 같아요.
또 저는 성경에서도 영감을 얻어요. 상상치도 못한 묘사나 표현이 있거든요. 예를 들면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이런 구절을 보면 표현이 완전 재밌고 자극적이잖아요. 또 착하게 살려다 실패한 사람들이 한탄하는 얘기도 나오고 나쁘게 살다가 의도치 않게 교화돼서 스스로 신기해하는 사람들 얘기도 나오고… 제가 살면서 마주칠 수 있는 삶의 모습보다 훨씬 드라마틱한 삶을 엿볼 수 있어서 시야가 좀 넓어지는 느낌이에요.
최근 영감을 얻었던 소재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음 늙어가는 걸 엄청 무서워했거든요. 늙으면 어린 사람들이 제 음악을 들을 이유가 없을거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사람들은 이제 음악 그 자체보다 음악과 엮여있는 아티스트의 스토리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영상을 보게 됐어요. 어차피 신곡들 웬만하면 다 좋고 다 자극적이다. 그래서 결국에 아티스트의 서사를 파게 된다. 사람들은 다 외롭고 타인과 연결되고 싶고 공감받고 싶어한다. 10대의 음악보다 3,40대의 음악에 더 엮을 스토리가 많을 수 밖에 없고 인생의 다양한 면을 겪었기 때문에 리스너들이 연결감을 느끼게 할 포인트가 훨씬 잘 알거다. 라는 내용이었어요.
스토리를 전달하는 기술과 포장지를 연구하는건 절대 게을리해선 안되겠지만, 늙는다는 것 자체가 뮤지션에게 그리 나쁜 건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고 늙어감에 대한 얘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최백호 선생님이 표현하는 쓸쓸한 늙어감도 떠오르지만, 저는 아직 애매하게 젊은 사람으로서 그 감정을 어떻게 새롭게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 중입니다.
오늘 이 순간을 음악으로 기록해둔다면, 어떤 곡을 남기고 싶으신가요?
Ariana grande 의 No tears left to cry가 생각나요. 레전드 프로듀서 Max martin 이 참여한 곡이죠. 산전수전을 통과한 뒤의 초연함과 다시 피어오르는 희망을 너무 세련되게 표현한 곡 같아요. 실험적인데 동시에 또 언젠간 들어본듯한 익숙함도 있고요. 아리아나 전성기 시절 낸 앨범인 Sweetener 에서 제겐 제일 존재감 있는 곡이에요. 인터뷰를 통해 커리어를 돌아보고 앞으로 가야할 길 앞에서 마음을 다잡는 이 순간의 감정선과 되게 잘 맞닿아 있다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