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장. 홍명희 선생과 한용운 스님

종로경찰서 앞에서 경찰서에 폭탄을 던진 사람의 별명으로 다방을 열다니..

by 두류산

홍명희 선생과 한용운 스님


벽초 홍명희 선생이 나를 만나고 싶다는 기별이 왔다. 홍명희 선생은 조선일보의 연재소설 ‘임꺽정’의 인기로 장안에서 유명하였다. 선생은 취성좌 공연에도 가끔 오셨고, 단장하고도 친분이 있어 나도 인사를 드린 적이 있었다.

단장이 전해준 선생의 이야기는 존경심을 가지게 했다. 홍명희 선생은 일본 동경에서 유학할 때 육당 최남선, 춘원 이광수와 함께 조선의 3대 천재로 불리었다고 했다. 선생의 아버지 홍범식은 대한제국의 관리였는데, 일제가 한일합방을 감행한 그날, 치욕을 참을 수 없어 자결을 택했다. 당시 일본에서 공부하던 선생은 아버지의 자결 소식을 듣고 황급히 조선에 돌아왔다. 그의 아버지가 아들에게 남긴 유서는 감동적이었다. ‘잃어버린 나라를 반드시 찾아야 하며 죽을지언정 친일은 하지 말라’고 하고, ‘일본 제국주의에 절대로 협력하지 말고 저항하여 먼 훗날에라도 아버지를 욕되게 하지 말라’고 엄명을 내렸다.


시간 여유를 두고 약속 장소인 시인 이상(李箱)이 운영한다는 종로의 제비다방으로 향했다. 종로경찰서 앞을 지나가야 하는데 경찰서를 보는 것조차 지긋지긋하여 고개를 숙이고 땅만 보고 걸었다. 그때 정오를 울리는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무심코 고개를 들고 사이렌이 울리는 방향을 쳐다보니, 종탑이 있는 종로 경찰서 건물이 보였다. 섬뜩한 마음이었다. 사이렌은 가슴을 후비며 길게 소리를 내었다. 머리를 흔들어 나쁜 기억들을 떨쳐내며 다시 걸었다. 제비다방이 보이기 시작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머리가 훤하게 벗어진 홍명희 선생이 먼저 와계셨다. 구석자리에 앉아서 연재소설 임꺽정이라도 쓰고 계신지 열심히 원고지를 메우고 있었다.

내가 인사를 올리자, 선생은 고개를 들어 나를 보고 반가워하며 말했다.

“조선일보에서 대상을 받은 시조 ‘희우(喜雨)’, 잘 봤어요. 아들놈이 조선일보의 학예부에서 기자 노릇을 하고 있는데, 신불출씨가 연극을 하다가 객석에서 조선독립만세를 불러 고초를 받았다는 이야기도 해주었어요.”

나는 홍명희 선생이 주위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고 ‘조선독립만세’를 거침없이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약간 긴장했다.

선생은 담배에 불을 붙이면서 나에게도 피우기를 권했다. 나는 담배를 사양하며 말을 편하게 하시라고 했다. 아버지보다 연세가 많으신 분인데, 마주 보며 담배를 피우기는 아무래도 거북했다.

“아들놈 하고도 맞담배를 해요. 식사와 술도 함께하는 데, 담배라고 못 할게 뭐 있어?”

격식 없이 젊은 사람을 대하는 모습에 소탈함이 느껴졌다. 다방 마담이 다가와 주문을 받았다.

“귀한 손님이 왔으니, 이 집 커피 맛 좀 보여드리게.”

마담이 생긋 웃으며 말했다.

“과테말라 커피를 어렵게 구해 놓았어요. 한번 드셔 보세요.”

마담은 주문을 받고 선생에게 말했다.

“선생님은 늘 젊은 사람들하고 시간을 보내시고, 만년 청년이세요.”

“내가 청년이 되어야지, 청년더러 노인이 되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홍명희 선생은 껄껄 웃으며 대답했다. 선생은 마담을 보면서 말했다.

“내가 감옥에 가서도 임꺽정을 계속 쓸 수 있었던 것은 이 금홍씨 덕이야.”

“선생님이 신간회 일로 옥살이할 때 다방에 오는 종로경찰서 간부며 총독부 관리에게 원망을 해대었어요. 신문 연재소설 임꺽정을 못 보게 되었다고.”

홍명희 선생이 감옥에 갇히는 바람에 임꺽정의 연재가 중단되자 독자들의 항의가 빗발쳤고, 조선일보사는 경찰과 교섭해 유치장 안에 책상과 원고지를 마련해주어 선생이 소설을 계속 집필하게 된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였다. 다방 문을 열고 세 명의 신사가 들어오자 금홍이 그쪽을 맞으러 갔다.

“제비다방 안주인이야. 왜 이 다방 이름이 제비인 줄 아나?”

“글쎄요. 짐작하건대, 강남 제비 찾아오는 봄 같은 장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요?”

선생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이 다방 이름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어.”

“강남 제비 할 때 제비 말고 딴 뜻이 있나요?”

선생은 목소리를 낮추었다.

“그렇지. 종로 한가운데, 더구나 종로경찰서 코앞에서 김상옥 열사를 잊지 말자는 뜻도 있어.”

“네에?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진 그..….”

나는 놀라 소리를 죽여 말했다. ‘폭탄’이라는 말을 할 때는 거의 말을 입안으로 삼켰다. 선생은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네.”

나는 혹시 옆 테이블의 사람들이 듣지나 않을까 불안하여 주변을 들러보았다. 다행히 이쪽에 시선을 주는 테이블은 없었다.

“어째서 그렇죠?”

“김 열사의 별명이 제비라네.”

‘제비가 이런 뜻이 있었다니.....’

등줄기에 서늘한 기운이 뻗혔다. 이상 시인이 김 열사를 기리는 뜻에서 다방의 이름으로 삼은 거라니. 놀라움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종로경찰서 앞에서 경찰서에 폭탄을 던진 사람의 별명으로 다방을 열었단 말이지......’

나는 짜릿한 흥분으로 발가락이 오그라들었다.

‘한 층 밑에, 아니 종로경찰서 코앞에 이렇게 감쳐둘 수 있다니.’

선생은 커피를 음미하며 내가 놀라는 모습을 지켜보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시조 희우 말이요. 읽으면서 가슴이 찌르르했어.”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시조 제목이 희우라니? 조선일보가 시조 제목을 잘못 정했지. 기쁨이 없는 세상에, 어떻게 기쁜 비가 될 수 있단 말이오.”

홍명희 선생은 나의 생각에 동의한다며 말을 이었다.

“신불출씨가 쓴 시조는 이 세상을 아무 일이 없다는 듯이 살고 있는 사람들을 향한 비수 같은 쓴소리였소.”

나는 선생의 과한 칭찬에 몸 둘 바를 몰랐다. 선생은 원고지 밑에 가려져 있던 책을 조심스럽게 꺼내었다.

“이 시집을 전해주고 싶었어요.”

시집을 보니 이상하게도 표지에 아무런 제목이 없었다. 문득 이 분의 사위가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의 진달래꽃으로 유명한 김소월 시인이라고 들은 게 생각이 났다. 시집의 표지를 조심스럽게 넘겨보았다. 다음 페이지에 ‘님의 침묵’이라는 제목이 써져 있었다.

“만해스님의 시집이네요.”

가슴이 벅찼다.

“안 그래도 읽고 싶었는데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출판되자마자 금서가 되었다던데.”

나는 시집을 조심스럽게 넘겨보았다.

“목차 중에 표식이 있는 게 있네요. 하나 둘…... 다섯 편이네요. 선생님에게 각별한 시인가 봅니다.”

선생이 표시를 한 시는 ‘님의 침묵’, ‘나루와 배’, ‘논개의 애인이 되어 그의 묘에’, ‘계월향에게’와 ‘사랑의 불’ 다섯 편이었다.

“맞아요. 특별히 이 다섯 편의 시가 좋았어. 마음이 어려울 때 읽으면, 큰 힘이 되었어요.”

“논개는 임진왜란 때 왜장과 함께 죽은 기생이 아닙니까? 근데 계월향은 누구입니까?”

“임진왜란 때 진주에 논개가 있었다면 평양에는 계월향이 있었어. 계월향도 왜장을 죽였어.”

나는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왜놈들이 조선에 침략했을 때 죽음으로 저항한 두 조선 여인을 시로서 표현한 거네요.”

“만해스님이 그런 기개 있는 조선 여성의 혼이 오늘날 전승되지 못하고 있다고 한탄하며 쓴 시라네.”

종로경찰서 근처에서 왜장을 죽인 논개와 계월향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논개의 애인이 되어 그의 묘에’를 찾아 찬찬히 읽는 데 신음이 새어 나왔다.

어휴, 대단히 아슬아슬한 시네요.”

“나라를 빼앗겨 우리가 사는 인생이 통째로 포로가 되어버렸는데, 아슬아슬하고 위험한 일이 닥친 들 뭐가 달라지겠어?”

선생의 별호가 가짜 인생이라는 뜻의 가인(假人) 임이 생각났다. 일제의 조선 점령으로 삼천리강산이 이미 감옥이 되었다는 말씀이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방문을 걸어 잠갔다. 품속에 넣어 가져온 만해스님의 시집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책상에 앉아 ‘님의 침묵’ 시를 조용히 읽어보았다.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만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스님이 말하고자 하는 뜻이 전해져 왔다. 방안에 있으면서도 잠긴 방문 쪽을 다시 한번 보고 ‘논개의 애인이 되어 그의 묘에’라는 시를 조용히 소리 내어 읽었다.


용서(容恕)하여요 논개(論介)여,

금석(金石) 같은 굳은 언약을 저버린 것은 그대가 아니요 나입니다……


스님은 논개의 나라에 대한 충절이 지금 이 시대에 이어지지 못하고 있음을 부끄러워하며 용서를 구하고 있다. 눈으로 한 번 더 천천히 읽었다. 오랫동안 이 시에 머물다가 ‘계월향에게’를 찾아 읽었다.


계월향이여, 그대의 푸른 근심은 드리고 드린 버들 실이 되어서

꽃다운 무리를 뒤에 두고 운명의 길을 떠나는 저문 봄을 잡아매려 합니다......


스님은 왜란을 맞았을 때 왜군 장수를 죽인 논개와 계월향을 추모하는 시를 각각 쓰고 ‘사랑의 불’이라는 시를 통해 논개와 계월향을 함께 기렸다.


촉석루를 안고 돌며 푸른 물결의 그윽한 품에

논개(論介)의 청춘을 잠재우는 남강(南江)의 흐르는 물아,

모란봉의 키스를 받고 계월향(桂月香)의 무정(無情)을 저주하면서

능라도(綾羅島)를 감돌아 흐르는 실연자(失戀者)인 대동강아……


‘님의 침묵’에 실린 시들을 읽고 또 읽었다. 시 한 구절, 한 구절이 가슴을 뜨겁게 했다. 논개와 계월향의 의로운 죽음은 임진왜란 때처럼 일제의 침략을 받고 있는 지금의 세상이 본받아야 할 표상(表象)이었다. 일본 경찰에 의해 이 시가 금지되어 조선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고 있음이 안타까웠다. 만해스님의 의도대로 조선 사람이 논개와 계월향의 항일 저항정신에 눈을 뜨게 하고 싶었다.

‘막간극 무대에서 이 시를 관객들에게 은근슬쩍 소개해볼까?’

나는 머리를 흔들었다.

‘동방이 밝아온다 후에 나는 이미 경찰에서 불을 켜고 감시하는 대상이 되었다. 어림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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