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장. 신불출(申不出)

우리 동포들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일어나야 합니다!

by 두류산

신불출(申不出)


며칠 동안 끙끙거리며 이불속에 누워있었다. 무대 위에서 관중을 향해 힘차게 두 주먹을 지르며 외쳤던 장면이 반복하여 생각이 났다.

‘우리 동포들은 일본에 맞서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일어나야 합니다!’

나의 마음이 객석에서 ‘조선독립만세!’를 외치게 했다.

관객과 최고조의 감정 공유였다. 그 순간을 떠올리면 아직도 무대에 있는 것처럼 가슴이 뛰고, 육체의 고통마저 잊을 수가 있었다. 나는 머리를 쓸어 올렸다.

‘하지만 그때 그 충동을 눌렀어야 했다.’

단장과 나는 그 대사가 위험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그 부분을 다 들어내지 않았던가. 결국 선을 넘어 버렸고 대가를 치를 일만 남았다. 연극무대에 들어온 지 6년. 드디어, 주연배우가 되어 새가 창공을 날듯 무대를 마음껏 누벼야 할 시기에 그만 날개가 꺾여버렸다. 한 순간의 감정 분출로 주연급 배우가 된 나의 연극무대 인생이 이렇게 끝나버렸다. 이런저런 생각 끝에 눈가에 눈물이 번졌다.


개성의 아버지가 인편(人便)으로 탕약 한 첩과 함께 편지를 보냈다. 장남이 무대에서 공연하다가 잘못되어, 경찰서에서 고생하고 나왔다는 소식을 들으신 것이었다. 아버지는 ‘험한 세상이니 어떻게든 몸 보존을 잘하라’고 신신당부를 하였다. 내가 취성좌에 입단이 되어 경성에 올라간다고 큰 절을 올렸을 때 등을 돌려 몸으로 반대하신 분이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

전수린은 그동안 나에게 온 편지들을 건네주었다. 수북이 쌓아놓고 편지를 하나씩 뜯어보았다. 대부분 연극 보러 왔다가 막간극을 보며 나를 좋아하게 되었다고 보낸 사연들이었다. 오랜만에 마음껏 웃게 해 주어 감사하다는 편지가 많았다. 봉투에 붓으로 이름을 멋지게 쓴 편지를 뜯어보았다.

‘신난다씨가 무대에서 이야기한 대로 웃으면 복이 오는 것을 저는 믿습니다. 이천만 동포가 다 웃는다면 언젠가 우리 조선에 상상만 해도 즐거운 큰 복이 오리라 믿습니다. 건승하십시오.’

시원시원한 글씨체에 나라 걱정하는 마음이 묻어 있었다.

예쁜 글씨체로 쓴 편지봉투가 눈에 띄었다. 주소가 한성권번이었다. 권번 소속이라면 기생인 듯했다. 편지를 펼쳤다.

‘우울감에 빠진 조선 백성의 마음을 되찾는 일을 하시는 것에 손 모아 응원드립니다. 할 수 있는 가장 의미 있는 일을 하시고 계십니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좌절하지 마시고 힘내어 조선 사람들의 잃어버린 웃음을 다시 찾게 해 주세요’

예쁘게 또박또박 쓴 편지였다. ‘좌절하지 말고 힘내라’는 말에 이 편지가 이번 사건을 알고 보냈나 하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뭉클했다. 편지를 옆으로 따로 두었다.

이번에는 봉투에 얌전하게 이름을 쓴 편지를 펼쳐 보았다.

‘저는 여학교 학생입니다. 어릴 때 천연두를 앓아 얼굴에 마마자국이 있어요. 얼마 전 취성좌 연극을 보러 갔다가 신난다씨가 막설을 하며, '저기 저분 얼굴에 마마자국이 있네. 마마자국은 우박 맞은 잿더미나 소 똥 같다’고 사설을 읊어대자 너무 창피하고 얼굴이 화끈거려 앉아 있기가 괴로웠어요. 관객들이 배꼽을 잡고 웃는 것이 마치 나를 향해 놀리는 것 같아 죽고만 싶었어요......‘

소녀가 내 앞에서 울며 하소연하는 듯하여, 나는 한동안 그 편지를 손에서 놓지 못했다.


편지를 치우고 오랜만에 책상에 앉았다. 몸은 아직 여기저기 결리고 불편했다. 희곡 노트를 꺼내면서 한 숨이 절로 나왔다.

“왜놈의 세상! 이런 세상이었다면, 아예 안 나왔어야 했어!”

노트에 ‘안 나왔어야 했어! 불출(不出)해야 했어! 불출, 불출, 불출…… 불출’을 여러 번 휘갈겨 썼다.

‘무대에서 하고 싶은 말도 제대로 못 하는 이놈의 세상, 안 나와야 했어!’

불출(不出), 불출, 불출……을 적은 것이 노트에 한 바닥이나 되었다.

막설 노트를 꺼내 펼쳐보았다. 몇 페이지를 넘기니 ‘곰보 타령’ 가사를 적은 것이 있었다. 다음 페이지에 ‘마마자국’이라고 쓴 막설이 보였다.

‘마마자국은 장기 바둑판같고, 멍석 덕석 방석 같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마마자국’ 막설이 쓰인 페이지를 가위표를 크게 그었다.


전수린이 일찍 집으로 돌아오면서 김현 단장과 함께였다. 단장의 얼굴이 많이 상해 보였다. 단장은 나의 몸 상태와 안부를 묻더니 한 숨을 쉬었다.

“이제 무대 밥은 그만 먹어야겠어.”

나는 처진 단장의 어깨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아무 말도 못 했다.

“취성좌를 계승한 신무대 극단이 어떻게든 예전의 영광을 찾아주기를 바랐는데, 자네도 이렇게 되어버렸으니......”

고개를 들어 단장을 바라보니 깊게 파인 주름이 새삼 굵게 보였다.

“어떡하시려고요?”

“훌훌 털어버리고, 고향인 진주로 내려가려고.”

‘앞으로도 배울 것이 많으니 무대를 지켜 달라!’

부탁하고 싶었으나 목소리를 삼켰다. 내 처지가 처지인지라, 묵묵히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단장이 일어서서 말했다.

“몸조리 잘해! 젊으니까 새로운 기회가 있을 것이야.”

방을 나가는 단장의 뒷모습이 구부정해 보였다.



*****


일을 안 하니 모아둔 돈도 금방 떨어지고 끼니마저 걱정을 해야 할 처지가 되었다. 전수린이 이곳저곳 다니면서 바이올린 연주를 해주고 받은 돈으로 근근이 버티고 있었다. 전수린은 삼천리 잡지사에서 상금을 걸고 시조를 공모한다는 광고를 보여주었다.

“도전해 볼래? 글재주도 뽐내고, 상금도 타고, 일석이조야.”

돈을 만들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해야 했다. 전수린의 말대로 상금을 노리고 시조를 써 보기로 했다. 그동안 모아 두었던 남이 쓴 시조를 읽어 보면서 시조 작법을 연구하였다. 공모전에 응모하여 돈을 벌려고 시조 공부를 해가면서 시조를 쓰겠다니 참으로 개수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 한심하기도 해서 시조 제목도 ‘개수작’이라고 하여 잡지사에 보냈다. 필명은 신불출(申不出)로 했다.


남의 시조 많이 보고 내 시조 쓸 양이면

나도 모르는 새 남의 투가 절반이라.

그대는 탓하지 말고, 그저 읽어두게나.


새가 운다 한다마는 웃는 때가 없을쏘냐

꽃이 어이 웃을 뿐이고 우는 때도 있을 것을

사람은 저만 옳은 체 개소리만 하더라.


적체(積滯) 급체(急滯)는 약으로나 고칠런가.

없고도 있는 체와 모르고도 아는 체는

체에도 못 받힐 체니 사람 죽일 체라네.


덜컥 당선이 되었다. 전수린이 비명을 질렀다.

“너, 정말 대단하다!”

상금으로 며칠 동안 전수린과 세끼를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다. 재미가 붙었다. 전수린이 조선일보를 들고 와서 말했다.

“조선일보에서도 시조 응모를 하는데 도전해보자!”

신문을 받아 들고 펼쳐보니 시조의 제목을 미리 주었다.

“희우(喜雨)라? 시제(詩題)가 기쁜 비라? 조선에 기쁠 일이 어디에 있겠나.”

당선되면 꽤 많은 상금이 있다고 하니 노트를 끌어당겼다.

펜을 들었는데 막막하였다. ‘희우(喜雨)’라고 제목을 쓰고는 한 줄도 더할 수가 없었다.

‘기쁜 게 없는 세상인 데, 비가 온들 기쁠 수가 있겠나? 기쁜 비가 내린다 해도, 이 땅에 떨어지면 비수나 오수가 될 텐데.’

비수(悲水)는 슬픈 물이고 오수(惡水)는 더러운 물이다. 막막해하다가, 펜을 들어 마음 가는 대로 썼다.


희우(喜雨) 제(題)를 놓고 시조 쓰라니 야속하오.

희우가 희우라도 희우될 리 없건 만은

희우(喜雨)가 오수(惡水)된 시절에 희우라니 웬 말이요......


한숨 타고 오른 구름 눈물 비 풀어내려

티끌 많은 이 세상을 골고루 적실 적에

비에다 뜻을 부치매 나도 눈물 나노라.


또 당선이 되었다. 전수린은 조선일보를 들고 들어오며 손을 번쩍 들었다.

“만세! 또 해냈다!”

전수린은 탄복을 했다. 시조 공모에 연달아 당선되어 상금을 챙기다 보니 스스로도 내 글 솜씨가 대견했다. 이 기세로 모든 상금을 휩쓸겠다는 생각으로 공모 광고를 찾았는데 더 이상은 없었다. 아쉬워하면서 전수린이 말했다.

“다음 해까지 기다려야 하겠어. 시간 있을 때, 희곡이나 써두지 그래.”

맞는 말이었다. 원래부터 내가 했던 일은 희곡을 쓰는 일이었다. 시조 쓰기로 몸을 풀었으니 힘을 내어 희곡을 써 내려가기로 했다. 내가 배우로서 무대에 안 서더라도, 내가 쓴 희곡을 연극무대에 올릴 수는 있을 터였다. 희곡 노트를 꺼내 예전에 써 두었던 ‘사생결단’을 시대에 맞게 대폭 각색하였다. 새로운 희곡도 써 보았다. 외출 한번 없이 책상에 꼬박 앉아 단막극 세편을 내리 써 내려갔다. ‘청춘아 우지 마라’, ‘정당한 탈선’, ‘세모 풍경’이 완성되었다.


희곡을 쓰면서 틈틈이 막설 연구도 하였다. 취성좌가 시작한 막간극은 많은 극단이 따라 하고 있었다. 다른 극단을 두드리면 막간극을 유행시킨 장본인이므로 막간극 진행을 맡길 것 같았다.

‘서울 사대문 안에서 연극무대에는 못서더라도 막간극 진행은 할 수 있을 것이다.’

막설 노트를 꺼내어 보니, 공산명월이라고 쓴 막설이 보였다.

‘아유, 죄송해요. 저기 저 뒤쪽에 계신 분은 머리가 훤하신 대머리시네요......’

‘마마자국’ 가위표로 그어 버리려다가, 고쳐보기로 마음먹었다.

‘대머리라고 손가락질하며 놀리는 것이 아니라, ‘나는 대머리다.’하고 스스로 약점을 당당하게 드러내는 우스갯소리로 만들어보자.’

관객을 가리키며 ‘아유, 죄송해요. 영감님 머리는 대머리네요.’하고 놀리는 우스개를, 대머리 영감이 스스로 ‘문어대가리니, 무르팍 대가리’니 하며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고 스스로 희화화(戱畵化)하는 것으로 바꾸었다.

막설을 쓰면서 막간극을 진행하는 순간을 생각하니 무대 위에서 짜릿했던 기분이 새삼 느껴졌다. 몸이 좋아지면 막간극 무대에 서고 싶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나는 무대에서 막간극을 신나게 진행하고 있었다. 관객들은 박수를 치고 폭소를 터뜨리며 즐거워하였다. 막이 끝나자, 단원들은 무대 위로 올라와, 나를 번쩍 들어 헹가래를 하였다. 몸이 위로 높이 던져졌다. 극장의 천장을 보면서 올라가다가 아래를 내려다보니 단원들도 관객들도 아무도 없었다. 바닥으로 그대로 떨어지다가 깨었다. 책상에 엎드린 채로 잠이 들은 것이었다.


나는 다시 펜을 들고 노트를 앞으로 당겼다. 노트에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내가 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이며,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경성에서 연극은 할 수 없으나 경성 밖에서는 할 수 있다. 경성 밖에서 연극을 한다는 것은 실지로 불가능한 일이다. 그나마 이름을 날렸던 취성좌도 없어진 마당에 지방에서 연극 공연으로 관객을 모으는 것은 힘든 일이다. 경성에서 연극 배우는 할 수 없지만 연극을 위해 희곡은 쓸 수 있지 않은가? 경성에서 연극무대는 못 서더라도 막간극 진행과 막설은 할 수 있지 않은가?

나는 노트에 힘주어 적었다.

‘아직 무대가 완전히 나를 떠난 것은 아니다. 비록 배우로 다시 무대에 서지는 못할지언정, 무대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많고도 많다.‘

나는 그날 밤 오랜만에 편한 잠을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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