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구대신의 부패가 악취를 내다

조정의 신하들이 재물을 탐하고 의(義)를 가볍게 여기는 자가 많습니다

by 두류산

1부 훈구대신의 부패가 악취를 내다



1장


1476년 성종 7년 여름, 심한 가뭄의 한재(旱災)를 겪더니, 큰비가 한 달을 계속해서 내렸다. 물이 넘치어 수재(水災)가 덮치고 곳곳에 산사태까지 일어났다.

도승지 현석규는 경상도 관찰사가 급히 올린 장계를 받쳐 들고 어전에 나아왔다. 성종은 장계를 펼쳤다.

"경상도에 큰 비가 내려 수재 상황을 급히 아뢰옵니다. 안동에서 물이 넘치어 50여 가호(家戶)가 물속에 잠겼습니다. 또 영천에는 산이 무너져 20여 가호를 덮쳤습니다.”

성종은 경상도 관찰사에게 바로 답을 내렸다.

"경의 보고를 들으니 과인이 심히 걱정된다. 경은 두루 살피고 방비하여 더 이상 피해가 없도록 하고, 이미 피해를 당한 백성들은 과인의 지극한 뜻을 받들어 잘 보살피라. 또한 옥에 갇힌 죄수들의 형편도 살피라. 폭우에 옥이 잠겨 피하지도 못하고 죽는 죄수가 종종 있었는데,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성종은 호조의 당상관들을 불러 명했다.

“수재로 인하여 집을 잃은 사람들의 숫자를 파악하여 모두 조세와 부역을 면제해 주시오.”

호조판서와 참판, 참의가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심한 물난리로 벼가 손상되었으므로 백성들이 장차 생업을 잃게 되었으니 걱정이오. 수해를 입은 전답에 다른 곡물이라도 심어서 추수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하지 않겠소?”

호조참의가 아뢰었다.

“조나 메밀은 거친 땅에도 잘 자라니, 물이 쓸고 간 논과 밭일지라도 이 작물을 심으면 가을에 수확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옵니다.”


성종은 각도의 관찰사에게 어서를 내렸다.

"근일의 수재가 너무 심하여 벼가 손상되었으므로 백성들이 장차 생업을 잃게 되었으니 과인이 매우 염려한다. 만약 수해를 입은 밭에 팥·조·메밀을 다시 심으면 가을에 추수할 희망이 있을 것이다. 궁한 백성이 자력으로 변통하지 못하는 자는 관청에서 곡식 종자를 주고, 여러 고을의 수령에게 지시하여 친히 다니면서 권하고 독려하게 하라. 또한 경(卿)도 여러 고을을 순회하고 살피어 시기를 잃지 말게 하라.”


임금은 도승지에게 명했다.

"과인이 즉위한 이래로 하늘을 공경하고 백성들을 염려하여 마음을 다하지 않은 적이 없었는데, 홍수와 가뭄이 없이 그냥 지나가는 해가 드물었다. 금년에도 경상도와 경기도의 고을에서 물이 넘쳐 피해를 입은 사람이 매우 많으니, 하늘의 견책을 깊이 생각할 때 실로 과인이 부덕한 탓이다. 모든 신하들은 정사의 그릇된 것과 백성들의 고통을 숨기지 말고 과인에게 말하여, 과인이 하늘을 두려워하고 백성들을 걱정하는 뜻에 부응하도록 하라.”

성종은 구언(求言)을 통해, 조정의 신하들에게 의견을 말하게 하여 정치가 잘못된 것은 없는지, 백성의 어려움은 무엇인지를 듣고자 하였다. 구언(求言)은 임금이 바른말을 널리 구하는 것을 말하였다.


유자광은 임금이 구언의 명을 내렸다는 소식을 듣고 생각에 잠겼다.

'《서경(書經)》에서도 임금의 잘잘못은 연(年)으로 살피고 신하들의 잘잘못은 달(月)로 살핀다고 하였다. 주상께서 하늘을 두려워하고 백성을 근심하는 마음은 세상이 다 아는데, 최근 한 달 동안 계속해서 비가 내려 물난리가 난 것이 어찌 주상의 잘못이겠는가.'

유자광은 궁궐 쪽을 바라보며 물었다.

“주상께서는 곁에 있는 대신이나 대간들이 과연 쓸 만한 신하라고 여기시는 것입니까?”


유자광은 오랜만에 임금에게 글을 올리려 하니, 얼굴이 붉게 상기되었다. 연적을 집어 벼루에 물을 따른 후 먹을 갈기 시작했다. 종이를 담아두는 항아리에서 종이를 꺼내어 탁자에 펼쳤다. 유자광은 젊은 시절 씨름판에서 적수를 꼬나볼 때처럼 전의를 끌어올렸다. 드디어 마음속에 가지고 있던 생각을 붓을 들어 써 내려갔다.

“신이 듣건대, 하늘과 사람 사이에는 서로 통하여 아래에서 일어나는 일이 위인 하늘에서 움직이게 되는 것이니, 물난리와 가뭄도 이런 이치로 일어난다고 하였습니다.”

유자광이 ‘하늘과 사람 사이에는 서로 통하여 물난리와 가뭄도 이런 이치로 일어난다.’는 말은 중국 전한(前漢)의 대표적 유학자인 동중서의 주장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동중서는 하늘과 인간은 교감한다는 천인 감응설(天人感應說)과 잘못된 정치는 홍수나 가뭄, 지진 등의 자연 재앙을 불러일으킨다는 재이설(災異說)을 주장하였다. 동중서는 왕이 정치를 잘못하면 하늘이 천재지변을 내려 견책하므로, 왕은 재이(災異)로 드러난 하늘의 뜻을 살펴서 반성하고 잘못을 고쳐야 한다고 하였다.

유자광은 이번의 가뭄과 물난리는 임금의 잘못이 아니라고 하였다.

“근년(近年)의 물난리와 가뭄을 헤아려보건대 전하께서는 비록 침식도 제대로 못하시면서 삼가셨지만, 하늘을 두려워하고 백성을 근심하는 정성이 하늘과 백성에 미치지 않는 것은 아마도 공경대부(公卿大夫)가 성상의 뜻을 제대로 받들지 못하였기에 일어난 듯합니다.”

공경대부는 벼슬이 높은 관리를 일컫는 말로, 일품인 3 정승과 이품인 6조의 판서를 삼공육경, 즉 공경(公卿)이라 불렀고, 3품과 4품의 관료를 대부(大夫)라 하였다.


유자광은 조정의 대신들을 신랄하게 나무랐다.

“지금 조정 신하들의 습속을 보건대 대개 재물을 탐하고 의(義)를 가볍게 여기는 자가 많습니다. 염치의 도(道)가 무너지고 사치하는 풍조를 이루어, 수레와 말, 집과 의복, 호화로운 잔치가 분수에 맞지 않게 지나쳐서 법도가 없습니다. 세상은 이익과 세태에 따라 휩쓸리는 자를 오히려 현명하다 하고, 할 일없이 자리만 차지하고 녹(祿)을 먹는 시위소찬(尸位素餐)하는 자를 지혜롭다고 합니다.”

유자광은 지금의 정승 판서들이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하였다.

“예전에 주(周) 나라 성왕(成王)은 관직은 합당한 인물에게 주어져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의정부와 육조의 책임을 맡고 있는 자들 중에 혹 합당하지 않은 자가 있는 것은 아닙니까?”


유자광은 대간들의 문제에 대해서도 임금에게 아뢰었다.

“한(漢) 나라가 일어난 이래 간관을 둔 것은 조정의 기강을 바로잡기 위한 직책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강직함이 굽히지 않고 곧은 말이 꺾이지 아니하여 바른 말과 곧은 기운이 조정에 가득했으므로, 족히 권세를 잡은 자들의 위세를 견제할 수 있었고, 백관을 다스릴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간관은 직급이 비록 낮더라도 대우는 재상급과 같았으니, 이는 그 맡은 바가 그만큼 중요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대간의 책임을 맡고 있는 자들 중에 혹 합당하지 않은 자가 있는 것은 아닙니까?”


유자광은 넓게 펼쳐진 종이에 먹물이 마르는 것을 지켜보며 생각했다.

‘조정에 높은 벼슬을 다 차지하고 있는 대신들 중에 내쳐야 할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또한 강직하고 곧지 않은 대간들도 자리만 지켜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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