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고발을 하다 (10)

어찌 할아버지와 손자가 서로 대질하는 도리가 있겠습니까

by 두류산

10장


임금이 먼저 자리를 뜨자, 재상들은 곧 임원준과 이심원을 따로 불러서 대질시켰다. 이심원이 임원준의 성녕대군 후사를 모의한 일을 분명하게 다시 말하니, 임원준은 곧바로 이심원의 진술을 모두 부인하였다.

"자네가 말하는 것은 도무지 허망하다. 나는 자네를 그대의 조부 보성군 집에서 한두 번 보았을 뿐이다. 임사홍이 일찍이 나에게 이르기를 자네가 글을 지어 두 번이나 그에게 보이면서 가까운 신하로서 어찌하여 이 같은 일을 아뢰지 아니하느냐고 나무랐다고 하며, 자네가 반드시 일을 일으킬 사람이라고 하였다. 또 임사홍은 아내에게 항상 경계하기를, 자네를 삼가하여 멀리하라고 하였는데, 내가 어찌 자네를 청할 이치가 있겠는가? 하물며 보성군이 성녕대군의 후사가 되는 일은 전연 내게 상관되는 것이 아닌데, 자네와 더불어 모의할 이치가 만무하다. 설사 보성군이 비록 성녕대군의 뒤를 이을지라도 재산은 반드시 아들에게 돌아갈 것이고 딸에게는 관여됨이 없으니, 내가 자네와 더불어 모의하지 아니한 것은 명백하다.”


이심원은 발뺌을 하는 임원준을 보고 목청을 돋우어 말했다.

"내가 임사홍에게 백성의 일을 임금에게 전달하라고 이른 것이 옳지 못한 것입니까? 나를 집에 청하여 나를 문에서 맞이하고 행랑 마루에서 마주 앉아 조부 보성군 후계의 일을 가지고 나를 달래지 않았습니까?”

이심원은 고개를 가로젓는 임원준을 똑바로 보며 따지듯이 물었다.

“그래도 말하지 아니하였다고 하십니까?”

임원준은 물러서며 부인하였다.

"나는 참으로 말하지 아니하였다."


이심원은 임원준이 딱 잡아떼며 부인하자, 부리부리한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어찌하여 숨기십니까? 참으로 불초(不肖)하도다! 이것이 내가 소인이라고 이르는 바입니다. 내가 전일에 글을 올려서 세조 때의 신하를 쓰지 말기를 청하였는데, 어찌 좌우에 있는 모든 재상을 이르는 것이겠습니까? 이는 바로 공을 가리켜 말한 것입니다!”

불초(不肖)하다는 말은 ‘아버지에 못미쳐 부친의 가르침과 뜻을 따르지 못했다’는 뜻으로, 못나고 어리석은 사람을 일컫는 조선시대 선비들 사이에서 할 수 있는 최고의 욕설이었다.


임원준은 자신을 불초한 소인이라고 공격하자, 이심원에게 악을 쓰며 고함을 질렀다.

"어찌하여 나를 불초하다고 이르는가? 자네는 임사홍의 처조카인데 자네가 나를 헐뜯고자 하니, 인정과 세상의 이치는 어디로 갔는가?"

이심원은 임원준의 악에 받친 말에 주춤했다.

"나는 나라와 사직을 위해 말했던 것이고 다른 뜻은 없습니다.”


이심원은 문득 한 생각이 떠올라 목이 멨다. 이심원은 민망하여 고개를 숙인 채로 있다가 이윽고 임원준을 그윽이 바라보며 말했다.

“이전에 아버지가 병이 깊었을 적에 공께서 약을 준 은혜로 생명을 건졌으니, 그 은혜가 지극히 중한데, 내가 어찌 옛 은혜를 잊고 말하는 것이겠습니까? 어찌 사사로움이 있어서 그러하겠습니까? 단지 사직이 있는 것만 알 뿐이고 다른 것은 돌아보지 아니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약을 주어 그대 아버지의 병을 고친 것을 가지고 나를 불초하다고 하는가?”

임원준이 원통해하며 말하니, 이심원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심원이 묵묵부답하니, 임원준은 더욱 몰아쳤다.

“자네가 말한 바는 모두 거짓이고 망령된 것이다. 오늘 자네의 조부 보성군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자네가 주상께 글을 올려 세조 때의 신하를 쓰지 말라고 한 것은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어서 말한 것인데, 임사홍이 세조 때의 신하는 모두 쓰지 말라고 한 것으로 아뢴 까닭에, 보복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하였다고 했다. 또 자네는 보성군에게 오늘 아침에 주상께서 승지들에게 임원준의 간사한 형상을 묻자 새로 임명된 승지가 그 허물을 자세히 말하였다고 했다.”

이심원이 임원준의 말을 반박하였다.

"그 말은 내 입에서 나오지 아니하였는데, 어찌하여 망령되게 말하는 것입니까?”


이심원이 부인을 하니 임원준이 여러 정승을 둘러보고 말하였다.

"보성군이 지금 궐내에 있으니, 불러서 면대하기를 청합니다.”

이심원은 놀라, 손을 저으며 반대했다.

"어찌 할아버지와 손자가 서로 대질하는 도리가 있겠습니까?”

정승들은 보성군과 이심원의 조손(祖孫) 간의 대질 여부에 대해 의견이 엇갈렸다. 정승들이 의논하여 의견을 모았다.

“우리들이 마음대로 보성군을 부를 수는 없는 일이니, 임금께 이 뜻을 아뢰어 허락을 얻어야 한다.”

임금은 정승들이 보성군을 불러서 물어보는 것을 허락했다. 보성군은 두 사람이 대질하고 있는 곳에 들어오자마자, 이심원에게 삿대질을 하며 큰 소리로 꾸중하였다. 좌우에서 보성군을 말려도 손자에게 악을 쓰며 욕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이심원은 조부가 격하게 야단을 치니 어쩔 줄을 몰랐다. 한명회가 임원준이 보성군한테 이런 말을 하지 않았는지 확인하니, 보성군은 고개를 여러 번 끄덕이며 말했다.

“임 대감이 말한 바와 같습니다!”

이심원은 조부의 대답이 기가 막혀 부르짖었다.

"천 년 후에 손자로 하여금 누명을 얻지 말게 하소서!”


보성군은 몸부림치며 소리치는 손자를 크게 나무라며 욕하였다. 이심원은 흥분해서 펄펄 뛰는 조부를 보며 문득 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임원준이 성녕대군의 대를 잇는 문제를 조부와 미리 의논하였던 것일까......’

이심원은 가슴을 찌르는 듯한 통증을 느끼며 머리를 감쌌다.

‘결과적으로 임원준과 함께 조부를 재물을 탐내는 소인으로 고발하게 된 것인가......’

이심원은 눈앞이 캄캄했다.

‘이일을 어찌할꼬.....’


이날 조손(祖孫) 간의 대질은 훗날 이심원을 평생 괴롭히는 순간이 되었다. 당시 젊은 선비들의 주장들을 과격하다고 인식하던 훈구대신들은 이심원과 보성군의 대질 순간을 두고 이심원을 신랄하게 비난하였다. 이심원이 효에 대해 소홀히 한 적이 없었건만 이심원이 보성군 앞에 크게 소리를 내었다고 하여 할아버지를 존중하지 않는 불효한 사람이라고 폄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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