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와 육조의 참판 이상과 대간들, 그리고 정승을 지낸 자들까지 임금의 명을 받고 창덕궁의 인정전(仁政殿)에 모였다. 옥에서 풀려난 홍문관과 예문관의 관원과 임원준과 임사홍 부자와 이심원도 참석하였다. 이심원은 김맹성과 표연말, 채수, 김흔 등을 만나 어전에서 임금에게 아뢴 내용을 자초지종 설명하였다. 김맹성은 이심원의 손을 잡으며 치하와 함께 위로의 말을 했다.
“덕분에 양관의 선비들이 모두 옥에서 풀려났지만, 마음고생이 얼마나 심하겠나.”
성종이 인정전에 나아가자 대기하던 신하들이 모두 예를 갖추어 임금을 맞았다. 성종은 용상에 앉으며 먼저 표연말을 찾았다.
"그대가 심원에게 말하기를, 임사홍이 몰래 간관을 부추겨서 현석규를 탄핵하기를 꾀했다고 하였다는데, 그런 일이 있었는가?”
표연말은 임금에게 답했다.
“현석규가 임사홍에게 탄핵당하였을 때에 신은 외임(外任)에 있어서 그 자세함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서울에 돌아오니 홍문관 수찬인 김맹성이 말하기를, 사간원 정언이었을 때 현석규를 탄핵했는데, 임사홍이 사간 박효원에게 편지를 주는 것을 보고 박효원을 꾸짖었다고 했습니다.”
“자세히 말해 보아라!”
“김맹성이 하루는 임사홍이 박효원을 만나 몰래 말하는 것을 보고, 마음으로 못마땅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들이 서로 통한 대개의 뜻은 박효원을 몰래 부추겨서 현석규를 공격하는 일이었다고 했습니다.”
임금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도대체 당시 대간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표연말의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자칫하면 당시 대간이었던 김맹성에게도 화가 미칠 수 있었다.
“김맹성이 신에게 말하기를, 그 당시 대간들은 임사홍이 그들을 부추겨서 처음에는 현석규를 공격하였다가, 뒤에 임사홍의 간사함을 깨닫고 임사홍을 공격하고자 하였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임사홍의 술책에 빠져 현석규를 탄핵한 것이 부끄러워 실행에 옮기지 못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성종은 목소리를 높였다.
“그때 대간들은 현석규를 소인이라고 탄핵하지 않았던가?”
“김맹성이 말하기를, 처음 현석규를 탄핵할 때에는 단지 말이 공손하지 못한 것을 논하였을 뿐이고 소인이라고 지목하지는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 뒤에 김언신이 현석규를 왕안석과 노기에 비교하여 소인이라고 하였습니다. 김맹성은 지금에 와서 보면 현석규가 소인이 아니라 임사홍이 참으로 소인이라고 말하였습니다.”
표연말은 등에 땀이 흘러 이미 속옷을 적시고 있음을 느꼈다. 성종은 입시한 신하들 중에 김맹성을 찾았다. 임금은 열에서 나온 김맹성을 보고 물었다.
"그대가 표연말과 더불어 임사홍의 일을 말한 적이 있는가?"
"신이 사간원 정언으로 있을 때 현석규가 승지 홍귀달을 욕한 것을 가지고 상소문을 올리자, 전하께서 저를 불러서 물으시니 곁에 있던 현석규가 아뢰기를, 홍귀달을 욕한 일을 대간들이 임금에게 말하는 것은 매우 옳습니다. 대간이 일을 들으면 어찌 아뢰지 않겠습니까? 다만 나를 미워하는 자가 대간에게 누설하여 임금에게 말하게 하는 것을 두려워할 뿐이라고 하였습니다.”
“계속 말하라!”
김맹성은 말을 이었다.
“신이 어전에서 물러나 사간원 동료와 더불어 같이 앉았는데, 사간 박효원이 편지 한 장을 펴 보이면서 말하기를, 임사홍의 말이 현석규가 대간에게 자신의 권세를 과시하여 김맹성이 실로 욕을 당하고 갔으니 이를 공격해 다스리지 아니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신이 답하기를, 욕을 봤다고 생각되는 일은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 후 헌납 김괴와 더불어 노여워하며, 임사홍이 대간에게 편지로 통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하였습니다.”
사간원은 정 3품 대사간, 종 3품 사간, 정 5품 헌납, 정 6품 정언으로 구성되었다.
김맹성은 숨을 고르기 위해 잠시 멈추었다 말을 이었다.
“그 뒤에 박효원이 빈청에서 임사홍을 자주 만나므로 김괴와 함께 옳지 못하다고 생각하여 면전에서 나무랐습니다. 하루는 박효원이 말하기를, 요즘 현석규가 임사홍과 더불어 서로 싸운다고 하는데, 만약 이를 공격하면 전일의 일이 모두 드러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대사간이 박효원을 나무라며, 말의 근거를 명백하게 아뢰지 않으면 그대가 오히려 그 허물을 질 수 있다고 경고하자 박효원이 자신이 마땅히 달게 받겠다고 하기에, 우리들은 현석규와 임사홍이 서로 싸우는 일을 탄핵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대가 표연말에게 임사홍의 일을 말했는가?”
김맹성은 임금의 싸늘한 질문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신이 표연말에게 말하기를, 임사홍의 간사하고 곧지 못한 일은 조회 때 홀로 간략하게 아뢰었지만, 그때 동료와 더불어 임사홍을 제대로 공격해 다스리지 못한 것이 한스럽다. 전에는 현석규의 사람됨을 알지 못하였으나, 이제 생각하니 지나치게 악한 일을 했다는 것은 듣지 못하였다. 김언신이 비록 소인이라고 말했으나, 내 생각에 현석규는 소인이 아니고 임사홍이 참으로 소인이라고 하였습니다.”
성종은 김맹성이 언급한 김괴를 찾아 물었다. 김괴는 열에서 나와 답했다.
"신이 사간원 헌납으로 있을 때 박효원이 임사홍을 만나 후, 작은 서찰을 펴 보이기에 신이 보았더니, 대개의 내용은 현석규가 김맹성을 업신여겨 욕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신이 김맹성 등 동료들과 더불어 나무라기를, 의심을 받을만한 때에 서로 만나는 것은 마땅치 않다고 하였습니다.”
성종은 박효원을 찾았다.
“박효원도 여기 있느냐?”
박효원이 열에서 황급히 나와 말했다
“신 박효원, 입시하였습니다.”
“이 말들이 모두 사실이냐?”
박효원이 더듬더듬 말하였다.
“신이 사간으로 있을 때 임사홍이 서찰을 통하여, 도승지가 부하를 욕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하였는데, 신이 서찰을 대사간 손비장에게 보여주었습니다. 동료들과 회의를 하여, 현석규의 하는 바가 예의와 겸양이 없는 일이니, 공격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하였습니다. 의논이 결정되어 상소를 올렸습니다.”
이심원은 성종이 김맹성과 표연말을 심문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임사홍의 본모습을 드러내려다가 오히려 군자들이 위험에 빠지는 것은 아닌지......’
임금은 생각에 잠겨있는 이심원을 찾았다.
“과인에게 말한 임원준의 일을 다시 말해보라!”
이심원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이심원은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임원준 부자의 눈길과 마주쳤다. 고모부와 사돈어른이 있는 앞에서 어떻게 그들을 비난하는 말을 입에 담을 수가 있겠는가. 이심원은 입술을 깨물었다. 중신들 앞에서 그들의 잘못을 증언하지 않으며 임금이 어떻게 그들을 내칠 수 있겠는가. 이심원은 마음을 굳게 하고 아뢰었다.
"성녕대군의 후사를 의논할 때에 임원준이 신의 조부 보성군으로 하여금 뒤를 잇게 하기를 꾀하여, 하루는 고모인 임사홍의 아내가 하인을 보내어 신을 불러서 임원준을 만나보게 하였습니다. 임원준이 신에게 이르기를, 너의 조부 보성군이 성녕대군의 뒤를 이을 만한데, 그러지 못하였다. 오천부정은 첩의 아들인 까닭으로 양녕대군의 뒤를 잇지 못하였으니, 열산수도 첩의 아들이므로 성녕대군의 제사를 받들 수 없다. 네가 오천부정을 부추겨서 열산수의 예(例)를 들어 상소를 올리게 하라. 그러면 열산수는 저절로 성녕대군의 후사가 되지 못하고, 보성군이 마땅히 뒤를 잇게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심원의 진술에 인정전에 모인 신하들은 서로 바라보며 웅성거렸다. 이심원은 잠시 멈추었다가 말을 이었다.
“신은 그 말을 음흉하다고 여겨서 대답하기를, 증조부 효령 대군의 뜻이 이와 같지 아니한데, 조부 보성군이 어찌 대군의 뜻을 어기고 제사를 받들고자 하겠냐고 하자, 임원준이 말하기를, 대군이 나이 팔순이 넘었는데 어찌 세상에 오래 살겠는가? 비록 아버지의 뜻을 어길지라도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소인의 말이기 때문에 오늘 아뢴 것입니다.”
이심원의 말에 신하들은 아까보다 더 크게 웅성거렸다.
임원준은 열에서 급히 나와, 이심원의 말을 모두 부인하였다.
"신은 본래 심원을 잘 알지도 못합니다. 단지 보성군의 집에서 서로 보았을 뿐입니다. 신의 집에 불러서 성녕대군 제사를 받들어 모시는 일을 더불어 말한 적은 진실로 없습니다.”
임원준의 말이 이심원과 완전히 다르므로 입시한 조정의 신하들은 서로 보며 다시 수군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