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고발을 하다 (8)

신이 나라를 위해 어버이를 잊었으니 진실로 낭패입니다

by 두류산

8장


이심원은 자신의 간절한 말에도 임금이 임사홍 부자를 버리기를 주저하니, 그들 부자에 대해 자신이 아는 모든 사실을 고하여 임금의 마음을 돌리고자 했다.

“아뢸 일이 또 있습니다. 사관 표연말이 신에게 말하기를, 전일 현석규의 일은 모두 임사홍이 몰래 사주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임금이 쇳소리를 내며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냐?”

“그때 현석규를 탄핵하자고 부추긴 대간은 바로 임사홍의 심복이었습니다. 임사홍은 현석규를 사사로이 살펴서 행동하면 곧 말을 전하니, 대간들이 임사홍의 술책에 빠져 현석규를 탄핵하게 된 것입니다.”


성종은 머리를 둔탁한 무엇에 세게 맞은듯했다. 현석규는 분명히 큰 잘못이 없었음에도, 대간과 신하들이 현석규의 거친 행동에 소인이라고 욕하며 치열하게 탄핵했던 것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몰래 사주하여 현석규를 공격하였다니, 임사홍은 참으로 간사한 자가 아닌가.”

임금은 사신의 명을 받고 명나라로 떠난 현석규를 생각하며 이심원에게 물었다.

“너는 현석규를 소인으로 생각하는가?”


이심원은 임금의 갑작스러운 물음에 순간 당황하였다. 이심원은 곧바로 대답하였다.

"현석규는 온후하고 너그러운 도량은 없으나, 고고하고 강직하여 일을 당하면 용감하게 말하니 소인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네가 임사홍 부자와 인척이었기에 망정이지, 만약 그 간사함을 자세히 알지 못하였으면 어찌 감히 이런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드디어 임금이 임사홍 부자가 간사하다고 드러내어 말하자, 이심원은 가슴에서 뜨거운 기운이 치밀어 올랐다.

"신이 비록 미천하나 마음은 항상 사직에 있습니다. 두보의 시에 이르기를, 해바라기는 해를 따라 기울어진다고 하였습니다. 신이 진실로 이와 같습니다. 만약 국가가 위태로우면 신이 먼저 사직을 위해 죽어야 하기 때문에 감히 이처럼 죽기를 무릅쓴 것입니다. 만약 전하께서 신의 말을 듣지 아니하신다면, 청컨대 신의 죄를 물어 죽게 하여서 하늘에 계시는 조종(祖宗)의 영령께 저버림이 없게 하소서.”


이심원은 감정이 북받쳐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제 양관의 관원과 대간들이 모두 청함을 얻지 못하였으므로 신이 죽음으로써 감히 아뢰었습니다. 원하건대 전하는 신이 바치는 외로운 충성을 살피소서. 이는 비록 신이 하는 바이나 반드시 하늘에 계시는 조종의 영혼이 음덕으로 시키신 것입니다.”


이심원은 자신에게 닥칠 어려운 처지가 생각나, 급기야 흐느낌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임사홍은 조부가 사랑하는 딸의 지아비이자 아끼는 사위입니다. 신(臣)의 아비가 평소에 지병이 있는데, 만약 이 일을 들으면 반드시 놀라고 슬퍼하며 신을 심히 그르게 여길 것입니다. 신 또한 무슨 면목으로 다시 조부모와 부모를 뵈올 수 있겠습니까? 신은 오로지 사직의 연고 때문에 감히 전하께 말씀 올리는 것입니다.”

"경의 아비가 어찌 경을 그르게 여기겠는가?”


임금이 급히 위로하자, 이심원은 부리부리한 눈에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말했다.

"신이 나라를 위해 어버이를 잊었으니, 신은 진실로 낭패입니다.”

성종이 다시 좋은 말로 위로하자, 이심원은 눈물이 범벅이 된 채 어전에서 물러나갔다.


임금과 승지들은 이심원이 물러가는 뒷모습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이심원이 물러나자, 도승지 손순효는 임금에게 아뢰었다.

"양관(兩館)의 스물이 넘는 관원을 하루아침에 모두 파면하였으니, 새 사람을 얻고자 해도 그만한 인재를 구하기가 어렵습니다. 하물며 홍문관과 예문관 관원의 말한 바가 옳았는데 파직이 되었습니다.”

"과인의 생각도 그렇게 여긴다. 양관의 관원들을 모두 옥에서 풀어주어라. 심원의 말이 만약 사실이라면 임사홍은 참으로 소인이다. 곧 임원준 부자와 표연말 등을 불러서 묻고, 또 정승과 육조의 참판 이상과 대간을 불러서 참여하여 듣게 하라.”

성종은 승지가 모두 물러간 뒤에도, 용상에서 일어설 줄 모르고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다.


이심원은 궁궐에서 나오자마자 마음에 심히 근심이 되어 아버지 평성도정을 찾았다. 이심원은 병환으로 몸조리를 하고 있는 부친에게 임금께 아뢴 사실을 그대로 고하였다. 평성도정은 이심원의 말에 크게 낙심하였다. 평성도정은 불편한 몸을 일으켜 아들을 앞세우고 부친의 집을 찾았다. 두 사람은 대청마루 아래에서 선채로 보성군에게 이심원이 임금에게 아뢴 사실을 알려드렸다. 보성군은 발을 굴리며 손자를 꾸짖었다.


이심원은 얼굴이 벌게진 채 조부에게 말했다.

“제가 고모부나 사돈어른께 무슨 원한이 있겠습니까? 아버지와 조부께는 면목이 없으나, 제가 아뢴 것은 오직 사직을 위해서였습니다.”

극도로 흥분한 보성군은 손자 이심원과 아들에게 호통을 쳤다.

“둘 다 당장 내 눈앞에서 사려져 버려라!”

평성도정은 더 말하려는 이심원을 제지하고 서둘러 부친의 집에서 나왔다.


보성군은 화를 참지 못하여 어쩔 줄을 모르다가, 관복을 갖추어 입고 집을 나섰다. 보성군은 곧바로 궁궐로 달려가 임금을 알현했다.

"전하, 신의 손자 심원이 전일 여러 차례 분별없이 도리에도 어긋나는 말을 해서 성총(聖聰)을 어지럽혔습니다. 신이 심원의 아비와 더불어 놀람을 이기지 못하여 엄하게 꾸짖었습니다.”


보성군은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부들부들 떨며 말을 이었다.

“한데, 심원이 마음을 고치지 아니하고 이제 또 고모부인 임사홍을 헐뜯으니 인정과 세상 이치에 어찌 이럴 수가 있습니까? 신이 자손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여 이런 일이 벌어졌으니, 신에게 죄 묻기를 청합니다. 신과 함께 심원도 엄하게 다스려주소서.”

"심원은 죄가 없습니다. 심원의 말은 공적(公的)인 것이고, 사적(私的)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성종은 종친의 어른인 보성군을 달래어 물러가게 하였다.


보성군은 아무 소득 없이 궁궐에서 나오니 마음이 무거웠다. 육조거리에서 의정부가 눈에 들어오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보성군은 의정부에 들리어, 사돈인 좌참찬 임원준을 찾았다. 임원준에게 손자의 잘못을 고개 숙이며 사죄하였다.

“심원을 따끔하게 혼을 내었는데도 이놈이 미쳐서 말을 안 들으니 나도 어쩔 줄 모르겠습니다. 심원이 말하기를 고모부에게 원한이 있는 것이 아니라 주상께 글을 올려 세조 때의 신하를 쓰지 말라고 한 것은 마음으로 지목하는 바가 있어서 말한 것인데, 고모부가 세조 때의 신하는 모두 쓰지 말라고 한 것으로 주상께 말한 까닭에 서운했다고 하였습니다.”

“고모부에게 서운하다고 심원은 왜 나까지 욕을 보이는 것입니까?”

보성군은 임원준이 따져 묻자, 딱히 더할 말이 없었다.


임원준은 은밀히 의금부의 옥을 찾아 임사홍을 만났다.

“상황이 심각하다. 우리 부자가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심원이 이런 사고를 칠 수 있는 자임을 진즉에 알았는데 면목이 없습니다.”

임원준은 임사홍의 눈을 똑바로 보고 말했다.

“국문을 당하면 무조건 사실무근이라고 해야 한다. 어쩔 수 없는 궁지에 몰리면 기억이 안 난다고 해라. 그래야 죄인으로 남지 않는다. 명심해라!”

임사홍은 입술을 깨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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