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고발을 하다 (7)

신이 고모의 혼인으로 임원준을 알게 되었는데, 그는 참으로 소인입니다

by 두류산

7장


이심원은 임원준이 소인이라는 증거를 보이라고 다그치는 임금의 말에 에둘러 답했다.

“전하께서는 경전과 역사서를 널리 보셔서 무릇 국가의 치란(治亂, 잘 다스려지는 세상과 어지러운 세상)과 흥망의 까닭과 군자와 소인에 대해 밝게 아실 것입니다. 예로부터 한 사람의 소인이 조정에 들어오면 여러 군자가 물러나는 것입니다. 한(漢) 나라 말기를 비유하여 말하면, 선제(宣帝)는 역사에서 중흥의 임금이라고 일컫습니다. 그러나 여러 충신을 죽이자 조정에서 모두 머리를 움츠리고 입을 봉하며 목숨을 보전함을 다행으로 삼았습니다. 이 때문에 왕망이 권세를 조종하는 데 이르렀습니다. 당시에 여러 신하들이 어찌 왕망의 실체를 아는 이가 한 사람도 없었겠습니까?”


왕망의 고모는 한(漢) 나라의 왕비가 되었고, 남편인 황제가 사망하자, 조카 왕망을 수도로 불러 어린 황제 평제(平帝)의 섭정직에 임명했다. 왕망은 재빨리 조정의 반대파들을 제거하고, 자신의 딸을 평제(平帝)의 황후로 책봉하여 정권의 기반을 잡은 후, 스스로 황제로 등극하여 신나라를 세웠다.


이심원의 또랑또랑한 목소리는 어전을 울렸다.

“전하께서 하루아침에 경연을 담당하는 홍문관과 예문관 관원들을 모두 내치며 일개 소인을 옹호하시니, 여러 신하들 가운데 임원준과 뜻이 다른 자가 모두 떠나면 조정에 남아 있는 자는 임원준의 무리가 아닌 자가 없을 것입니다. 이런 때를 당하면 비록 백 명의 왕망이 조정에 있을지라도 누가 감히 바른말로 의논하는 자가 있겠습니까?”

"네가 임원준을 소인이라고 이르니 모름지기 임원준이 소인인 형상을 차례로 말해 보아라.”


임금의 거듭된 압박에도 이심원은 다시 한번 에둘러 말했다.

"소인의 형상을 말하기는 참으로 어려운 것입니다. 예전에 송(宋) 나라 신종이 왕안석을 등용하자 여러 사람들이 좋은 사람을 얻었다고 기뻐하였으나, 여헌가가 홀로 탄핵하여 아뢰기를, 크게 간사한 것은 오히려 충성하는 것처럼 보이고, 크게 거짓말하는 것은 오히려 믿을만한 것처럼 보인다고 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여헌가는 파직을 당하였습니다. 그때 신종은 아마 생각하기를, 왕안석은 새로 조정에 들어왔으니 이전에 행한 일이 많지 않은데 여헌가가 왕안석이 소인임을 어떻게 알겠는가 하고, 실체가 없는 애매한 말일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내친 것입니다. 지금에 와서 보면 신종이 여헌가를 죄준 것이 옳습니까, 잘못입니까?”


성종은 이심원이 소인에 대해 여러 말을 할 뿐, 임원준이 소인으로 볼 증거를 내지 못하자 이를 공격하였다.

“그러면 너는 증거를 내놓지도 못하면서, 오로지 임원준은 소인이라고 강변하는 것이냐?”

“대저 소인의 마음은 알 수는 있어도 그려내기는 어렵습니다. 《대학》에서 이르기를, 소인은 혼자 있을 때에 옳지 못한 일을 안 하는 바가 없지만, 군자를 보면 감쪽같이 그 옳지 못한 일을 감추고 옳은 것만 하는 것처럼 드러낸다고 하였습니다. 이제 임원준의 사람됨과 언어와 행동이 소인이 아닌 것이 없으나 일을 행한 자취는 애매하여 밝히기 어렵습니다.”

성종은 결국 임원준이 소인이라는 구체적인 정황을 말하지 못하는 이심원을 비웃었다.

“너는 말은 많이 했으나, 결국 임원준이 소인이라는 것을 입증하지는 못한다는 말이 아니냐?”


이심원은 임금의 반격에 고개 숙여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때 승지들이 서류를 들고 입시하였다. 이심원은 생각하였다.

‘승지들이 나를 그만 물러가게 하려고 들어왔음이야.’

임금은 승지들의 예를 받으며 이심원에게 말했다.

“증거를 말하지 못하는 것이라면, 그만 물러가도록 하라!”


이심원은 눈을 질끈 감았다.

‘선공후사(先公後私)가 아닌가. 사직과 나라가 먼저일 것이야.’

이심원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작정하고 임금에게 고했다.

“신이 고모의 혼인 인연으로 임원준을 알게 되었는데, 그는 참으로 소인입니다.”

이심원은 길게 한숨을 쉬고 말을 이었다.

“신은 성리학을 대강 공부하여, 옛 성현의 사람 보는 법을 배웠습니다. 우선 한 가지 일을 가지고 전하께 밝히겠습니다.”


이심원은 찌르는 듯이 아픈 마음을 꾹꾹 누르고 임금에게 아뢰었다.

“태종의 넷째 아드님이신 성녕대군의 대를 이은 원천군이 돌아가시자 성녕대군의 뒤를 잇게 하는 일이 결정되지 아니하여 국론이 어지러웠습니다. 원천군에게 적자는 없고 첩의 아들 열산수(列山守)만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때 임원준이 말하기를, 지금 원천군이 적자가 없으니 성녕대군의 제사를 반드시 다른 데로 옮겨야 될 것인데, 태종의 둘째 아드님이신 효령대군의 아들 보성군만이 성녕대군의 뒤를 이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성녕대군의 재산이 매우 많으므로 만약 보성군이 이를 얻으면 보성군의 딸인 임사홍의 아내도 상속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임원준이 힘을 다해 도모하였던 것입니다.”


임금이 이심원의 말에 놀라 물었다.

“결국 열산수가 성녕대군의 제사를 모시게 되지 않았는가?”

“그렇습니다. 열산수가 뒤를 잇기로 이미 정해졌는데도, 임원준은 신을 불러 말하기를, '예전에 오천부정(烏川副正)이 양녕대군 첩의 아들이므로 대군의 제사를 받들지 못하고 함양군이 상속하였다. 듣건대 오천부정과 사이가 좋다고 하니, 가서 달래어 자신의 예(例)를 들어 상소하게 하면, 조정에서 반드시 오천부정의 말을 들어 열산수로 하여금 성녕대군의 뒤를 잇지 못하게 할 것이다. 성녕대군의 후사가 적자로 옮겨진다면 그대의 조부인 보성군이 반드시 성녕대군의 뒤를 잇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성종은 이심원의 이야기가 뜻밖이었다.

“너는 임원준에게 뭐라고 답하였는가?”

“신은 임원준의 꾀가 매우 간악하고 음흉하다고 생각하여 대답하기를, ‘증조부 효령대군의 뜻이 다른데, 조부인 보성군께서 어찌 아버님의 뜻을 거역하고 성녕대군의 뒤를 잇기를 즐겨하겠는가?’ 하였습니다. 이에 임원준이 말하기를, ‘80여 세가 된 대군이 어찌 세상에 오래 살겠는가? 보성군이 아버지의 뜻을 거스를지라도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하였으니, 이는 임원준에게 사람의 어진 천성이 없는 것입니다. 이 한 마디 말로 미루어 보면 다른 것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조정 안팎의 대소 신료 가운데 누가 임원준이 소인인 것을 알지 못하겠습니까? 홀로 전하께서 알지 못하실 뿐입니다.”

임금은 안색이 변했다.

"성녕대군 후계문제는 임원준이 잘못한 것이다!”


성종은 가까이 부복하고 있는 승지 홍귀달에게 물었다.

"그대는 학문을 대강 아는 사람인데도 임원준이 소인인 것을 알지 못했는가? 만약 알았다면 그대도 근신(近臣)인데 어찌하여 말하지 아니했는가?”

"신은 벼슬한 지 오래되지 아니하고 보고 들음이 넓지 못해서 임원준이 소인임을 알지 못합니다.”


성종은 엄한 안색으로 함께 듣고 있던 모든 승지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임원준이 참으로 소인임을 경들은 아는가?”

이심원은 주저하며 말하기를 머뭇거리는 승지들을 돌아보며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이 일은 가벼운 일이 아닙니다! 군주를 속여서 만세(萬世)의 웃음거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심원의 채근에 임사홍의 자리를 이어받아 도승지가 된 손순효가 나섰다.

"임원준은 재물과 이익에 급급하다고 하니, 군자로 볼 수가 없습니다.”

좌승지도 거들었다.

"임원준은 선왕조(先王朝)에서 더러운 행실이 매우 많았습니다. 그러나 무릇 사람이 처음에는 비록 못나고 어리석었더라도 뒤에 만약 행실을 고쳐서 착하게 되면 군자가 되는 것인데, 이제 임원준의 행한 바를 살피건대, 바로 이심원의 말과 같습니다.”


좌부승지 김승경이 나서서 말했다.

"신이 임원준과 같은 해에 급제하였으므로 자세히 압니다. 그 집이 본래 가난하였는데 근래에 갑자기 부자가 되어 가산이 매우 넉넉하니, 재리(財利)에 밝음입니다. 거기에서 선비의 지조가 어떤지를 볼 수 있습니다.”

우부승지 이경동은 임금이 눈으로 물어보자 얼른 대답했다.

"신이 듣건대, 임원준은 간사하고 바르지 못하며 안평대군에게 아부하다가 약을 훔쳐서 도망하였으니, 그간의 더러운 행실은 다 기억하기 어렵습니다. 근래에 신이 임원준과 같이 경연관이 되어서 그 사람됨을 살펴보니, 굳센 행실이 없고 머뭇거리며 말하지 아니하거나 말하고자 하다가 다시 그만두니, 바로 이심원의 말과 같습니다. 무릇 소인의 태도가 진실로 이와 같기는 하나, 근신하는 군자의 모습도 이와 같으니, 신은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그 아들 임사홍의 태도는 이와 반대로 드러내 놓고 매우 교만합니다.”


이경동은 성종 8년 8월, 현석규 탄핵 사건 때, 사헌부 집의로 있으면서 현석규와 임사홍이 서로 다툰 연유에 대해 심문하였고, 곧이어 동부승지로 임명되었다. 성종 9년 4월에는 도승지 임사홍과 함께 남효온과 이심원을 붕당의 죄를 묻기를 청했고, 임사홍이 도승지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우부승지가 되었다.


좌우에 입시한 승지들이 임금의 물음에 대해 돌아가면서 답하기를 마치자, 이심원은 성종에게 간절히 아뢰었다.

"대신의 진퇴를 비록 가볍게 할 수 없으나, 이제 홍문관과 예문관, 대간들이 한 입에서 나온 것처럼 모두 임원준을 간신이라고 말하였는데, 전하께서 무슨 까닭으로 듣고서 묻지도 아니하십니까? 신은 전하께서 임원준의 간사함을 아시면서 묻지 아니하는 것인지, 임원준을 옹호하고자 하여 묻지 아니하시는 것인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만약 간사한 형상을 물어서 이것이 사실이면 용납할 수 없다. 하지만 임원준은 의정부의 대신이니, 신중하지 않을 수 없다.”

"전하께서 한 사람의 간신을 보호하고자 하여 스물한 명의 군자를 내치시니, 이는 소인으로 하여금 꺼리는 바가 더욱 없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심원은 어렵게 꺼낸 말에도 임금이 임원준의 처단하는 것을 머뭇거리고 있음을 느꼈다. 이심원은 속이 탔다.

‘주상이 사돈지간인 임사홍 부자를 쉽게 내칠 수 없다고 생각하시는 것이야. 그것 때문에 양관의 군자들이 파직을 당하고 옥에 갇힌 것이고.....’







(사진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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