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심원은 양관의 관원들이 옥에 갇혔다는 소식을 듣고 어이가 없었다. 황당하고 날벼락같은 일이었다.
"형벌이 뒤바뀌어도 정도가 있지, 소인을 고발한 군자들을 옥에 가두다니......”
이심원은 곧바로 의금부 옥으로 달려갔다. 의금부는 당분간 면회는 안 된다고 했다.
이심원은 하릴없이 의금부를 떠나며 생각했다.
‘이 상황을 바로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주상에게 임사홍 부자의 실상을 알리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이심원은 임금에게 글을 올려 아뢰기로 마음을 먹고 걸음을 재촉하여 집으로 향했다. 이심원은 걸음을 멈추고 섰다.
“한시가 급하게 군자들을 감옥에서 구해내야 하는데, 언제 쓰고, 언제 접수하여 하명을 기다리겠나? 직접 알현하여 말해야 하리라.”
이심원은 가던 길을 돌려 궁궐로 향하며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고모부는 할아버지가 사랑하는 사위인데 이를 어찌하나.’
이심원은 고모의 실망하는 모습과 조부가 화난 모습이 떠올랐다. 조카들 중 유난히 자신을 좋아하는 고모였고, 손자들 중 자신의 학문을 자랑스러워하는 할아버지였다. 이심원은 머리를 흔들었다.
“장차 나라의 기둥이 될 스무 명의 선비가 파직을 당하고 감옥에 갇혔다. 이들을 모두 잃고 나라가 어디로 가겠는가. 도를 아는 선비라면, 나라를 위해서는 자신을 돌보지 않아야 하고, 옳다고 믿으면 과감히 실행하고 이로 인해 어떤 환난이 닥칠지 미리 헤아리지 않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이심원의 마음속에 다른 소리가 울렸다.
‘고모와 할아버지뿐만 아니라 아버지와 친족들, 내가 몸담고 있는 세상과 단절되고 고립될 것이다. 과연 이러한 일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이심원은 거세게 고개를 저었다.
“홍문관과 예문관 관원들이 뜻을 모아 임사홍 부자의 일을 탄핵하였으나, 근거를 아뢰지 못하여 모두 파직당하고 옥에 갇히지 않았는가. 온 나라 사람이 임사홍과 임원준이 소인인 증거를 드러내기 어려우나, 나만 홀로 그들 부자가 소인임을 증언할 수 있다. 가까이서 그들을 지켜보았지 않았는가. 사사로운 친분에 내가 입을 다문다면, 임금이 어찌 그들의 실상을 알겠으며 나라는 장차 어떻게 될 것인가?”
이심원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장차 나라가 어디로 가느냐는 나에게 달려 있다. 지금의 주상은 성군이시다. 남효온과 내가 과격하게 상소를 올려 훈구대신들이 붕당으로 몰려고 했지만 밝은 주상께서 다 막아주지 않았는가. 임금이 가장 가까운 신하인 도승지의 간사한 실상을 모른 채 지낸다면, 어찌 역사에 남는 성군이 될 수 있겠는가.”
하늘에는 무심하게 구름이 흘렀다.
“이쪽저쪽 살펴서 원망과 노여움을 부를까 봐 두려워하면 바르고 곧은 말을 어찌할 수 있겠는가. 진실을 숨기고 자신의 일신만을 생각한다면 어찌 배운 사람의 도리이겠는가.”
지나가는 사람들이 자신을 흘긋거리며 보았다. 이심원은 개의치 않고 주문을 외우듯 중얼거렸다.
“선비가 글을 배웠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주자는 아는 것보다 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지 않았는가. 충이 무엇인지 배웠으니, 나라와 임금에 충성된 일이라고 믿으면 좌고우면 하지 말아야 한다. 맹자도 가르치기를, 살고 싶은 욕망과 의를 지키고 싶은 욕구를 겸할 수 없을 때는 살기를 버리고 의리를 선택하라고 했다. 나라와 군주에 대한 의리가 최우선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심원은 머릿속에 지나가는 생각을 스스로 묻고 답하며 결론지었다.
“마음을 나라와 사직에 두려면 때때로 집과 가족을 돌볼 수 없다. 지금이그때다.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어느덧 궁궐이 눈앞에 보였다. 이심원은 궁궐에 들어서자, 곧바로 승정원을 찾았다. 승지 김승경이 임금의 가까운 종친으로 정 4품 부정(副正)인 이심원을 맞아 자리를 권했다. 이심원은 격한 감정을 숨기지 않고 말했다.
“종친으로서 전하께 중대한 일을 아뢰고자 하는데 재주가 졸렬하여 글로 쓰지 못하고, 마음에 품은 바가 많아서 뵙고 말씀드리기를 청합니다.”
승지는 얼굴색이 비장한 이심원을 보고 말했다.
"만약 일이 사직에 관계되는 것이면 직접 뵙고 아뢰는 것이 마땅하나, 그렇지 않으면 비록 많은 말일지라도 내가 대신 전하께 그대로 전해드리겠소.”
“무슨 일이 사직에 관계되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군자와 소인을 쓰고 버리는 것과 형벌이 뒤바뀐 것은 사직에 관계된다고 이를 만합니다. 따라서 감히 직접 뵙고 아뢰기를 청하는 것입니다.”
승지는 이심원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대개 짐작이 갔다. 마침 승정원에 들린 환관에게 이심원의 뜻을 임금에게 전하게 하였다. 성종은 이심원을 선정전(宣政殿)으로 와서 알현하도록 하였다. 이심원이 기별을 받고 승지와 함께 선정전에 나아갔다. 이심원은 임금에게 예를 갖춘 후 말했다.
"신이 일전에 구언(求言)하심에 답하여 올린 상소가 과격하여 죄가 만 번 죽어도 마땅하므로, 형벌을 엎드려 기다렸으나 전하께서 신의 우직함을 가엾게 여기시어 목 베어 죽임을 가하지 아니하시니, 기쁘고 감격함이 망극합니다.”
"군자와 소인을 쓰고 버리는 것과 형벌이 뒤바뀌었다는 말을 하려고 한다는데, 그 말을 듣고 싶다.”
이심원은 작심한 말을 그대로 아뢰었다.
“신은 종친으로서 큰일을 들으면 아뢰지 않을 수 없습니다. 홍문관과 예문관의 관원이 임사홍과 그 아비 임원준의 간사함에 대해 상소를 올리자, 전하께서 모두 불러서 만나 따져서 물으셨는데, 임사홍의 직첩을 거두면서 임원준의 간사한 형상은 묻지 아니하고, 홍문관과 예문관 이십여 관원을 함께 파직시켰다고 들었습니다. 만약 양관(兩館)의 말이 옳으면 임사홍 부자를 벌주는 것이 옳고, 그렇지 아니하면 양관의 관원을 벌주는 것이 옳은데 무슨 까닭으로 함께 벌을 내리시는 것입니까? 임원준 부자는 소인이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것입니까?”
"네가 이 말을 하려고 왔느냐?”
이심원은 임금의 냉랭한 목소리를 들으며, 양관의 관원이 임사홍 부자를 탄핵한 일에 대해 임금이 마땅치 않게 생각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자세히 말씀해주셔서 신의 의혹을 풀어주소서. 신은 미천할지라도 종사(宗社)와 더불어 기쁨과 걱정을 같이할 의무가 있으므로 묻기를 피하지 않는 것입니다.”
성종은 종친인 이심원을 예우하여, 물음에 답해주었다.
"홍문관과 예문관의 관원은 임금의 덕을 기르고 높이는 직책이다. 만약 임사홍이 진실로 소인이라면 일찍이 그가 대사간과 참의, 그리고 도승지가 되었을 때 소인이라는 것을 말해야 했다. 이제 와서 말한 것은 늦었기에, 그 죄를 묻기로 한 것이다.”
이심원은 주상의 말에 억지가 있음을 보고,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홍문관과 예문관 관원이 소인임을 미리 말하지 아니한 것은 오랫동안 자세히 살펴서 감히 급하게 하지 않으려고 했을 것입니다. 또 전하의 성명(聖明)하심으로도 오히려 임사홍이 소인임을 알지 못하시었는데, 양관의 선비에게 무슨 죄가 있습니까?”
성종은 사관 쪽을 보았다. 사관은 붓으로 이심원이 한 말을 빠르게 기록하고 있었다. 임금이 이심원에게 마음속에 있던 생각을 꺼내어 말했다.
“죄를 물은 것은 반드시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서경)》에 이르기를, 사람을 안다는 것은 명철함이니, 요임금도 어렵게 여겼다고 하였다. 요임금 같은 큰 성인(聖人)도 오히려 사람 알기가 어려웠었는데, 하물며 양관의 관원들이 어찌 임사홍이 소인임을 알겠는가? 그럼에도 소인이라고 주장하는 바가 마땅치 못하기 때문에 파직을 명한 것이다. 임사홍을 소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대간의 말은 다 따를 수 없다고 하며 옳지 않은 말을 하였기 때문에 임사홍의 벼슬도 거둔 것이다. 임원준은 비록 간사하고 탐오하다고 말하나 애매하고 형적이 없는 말을 믿고 어찌 죄를 묻겠는가?”
이심원은 임금이 자신에게 성의를 가지고 자세히 설명하니, 고개를 깊숙이 숙였다. 이심원은 잠시 고민했다.
‘이미 결심하지 않았는가. 나라에 충성하려면 때때로 사사로운 정을 잊어야 한다. 지금이 그때이다.’
이심원은 마음을 굳게 먹고 고개를 들어 아뢰었다.
“임사홍은 신의 고모부이기 때문에 그 사람됨을 자세히 압니다. 그는 참으로 소인입니다.”
이심원은 한 마디 말로 임금을 놀라게 하고, 천천히 말을 이었다.
“사람을 판단하기는 전하가 말씀하신 대로 쉽게 할 수 없습니다. 비록 한 가지 일과 한마디 말의 실수를 보았을지라도, 내가 본 바가 옳지 못할 것을 두려워하여 스스로 되새겨보고 생각합니다. 또 그 잘못이 실수였을 것으로 생각하여 우선 용서합니다. 그런 실수가 점점 많아지거나 마음씀이 공평하지 않고 편협함을 되풀이해서 간사함이 보여 털끝만큼의 의심이 없어야 비로소 감히 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들의 일로 아비까지 탄핵하는 것은 못된 소행이다!”
“임원준은 참으로 소인입니다. 조정 안팎의 모든 신하들과 일반 백성들까지 누가 임원준이 소인인 것을 알지 못하겠습니까? 홀로 전하께서는 구중(九重) 궁궐 안에 계시기 때문에 알지 못하시는 것입니다. 제가 세조 때의 대신들을 쓰지 말라고 청한 것은 임원준과 같은 사람을 두고 말한 것이었습니다.”
성종은 이심원의 말에 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진작 왜 이름을 밝히지 않았느냐?”
“만약 전하께서 신을 믿으시면 누구를 이르는 것인가를 물으셨을 것이므로 그때 말씀드리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전하께서 누가 소인인가를 묻지 아니하셨기 때문에 신은 전하께서 믿지 아니하시는 뜻이 있음을 알고, 감히 아뢰지 못하였습니다.”
“감히 나를 시험하여 할 수 있는 말과 못할 말을 가리다니, 무엄한 말이로다!”
“홍문관과 예문관의 관원은 전하께서 날마다 경연에서 세 번씩 만나므로 매우 가까운 신하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이 임사홍과 그 아비의 간사함을 말하자 그들의 말을 믿고 살피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모두 내치시는데, 하물며 낮고 미천한 종친인 제가 어떻게 말할 수가 있겠습니까? 신은 때를 기다리며 감히 밝히지 못한 것입니다.”
성종이 말문이 막혀 주춤하자 이심원은 꼿꼿이 말을 이었다.
“양관의 이십여 관원들과 대간들이 한 사람의 말처럼 모두 임사홍과 함께 그 아비도 간신이라고 말하였으니, 임원준의 간사함은 드러난 것이라고 이를 만합니다. 그런데 전하께서는 조금도 간사한 형상을 묻지 아니하시고 도리어 말한 자를 허물하시니, 임원준의 간사함은 앞으로 더욱 꺼릴 것이 없을 것입니다.”
“너는 무엇을 근거로 임원준이 간사한 소인이라고 하느냐?”
성종은 이심원에게 임원준이 소인이라는 실체를 보이라고 반격했다. 이심원은 임금의 압박에 숨이 막히는 듯했다. 임원준은 조부의 절친한 친구이며 사돈어른이 아닌가. 이심원은 결심한 마음이 흔들렸다.
‘임사홍은 조부의 사랑하는 딸의 남편이다. 임원준에게는 아버지가 병들었을 때 약을 지어 낫게 한 은혜를 입었다. 내가 가슴속에 품은 말을 꺼내는 순간 나는 조부와 부친 모두에게 버림받을 수도 있다. 이 일을 어찌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