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시간, 그리고 죽음 — <라 트라비아타> 감상기

by 두류산

클래식 모임에서 2005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무대에 오른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를 감상했다. <라 트라비아타>는 1853년 베르디가 알렉산더 뒤마의 소설 <춘희>를 원작으로 베네치아 극장에서 처음 공연한 후, 수많은 각색 버전이 무대에 올랐다. 이 공연은 삶과 죽음, 시간이라는 세 개의 커다란 주제를 강렬한 시각 언어로 풀어낸 상징극이었다.


극도로 절제된 무대는 미니멀했지만 깊었다. 새하얀 무대 배경 위로, 짙은 붉은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등장한다. 비올레타다. 그녀의 붉은 옷은 격정적인 삶의 불꽃이자, 폐병으로 스러지는 피의 그림자였다. 그 색은 무대 위를 유일하게 물들였고, 동시에 관객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무대의 가장자리에는 의사가 있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모든 장면에 함께했다. 그는 초월자, 혹은 죽음 그 자체로서, 비올레타의 운명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무대 위에 걸린 커다란 시계. 그것은 시간이라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을 상징하면서, 동시에 비올레타에게 주어진 생의 유한성을 일깨우는 장치였다. 붉은 드레스가 타오르는 생의 불꽃이라면, 시계는 그것이 꺼질 때를 알려주는 도구였다.


이 모든 상징 위에 빈 필하모닉의 연주가 흐르고, 지휘자 카를로 리치는 그 흐름에 생명과 템포를 부여했다. 안나 네트레브코(비올레타)와 롤란도 비야손(알프레도)은 목소리와 몸짓, 눈빛으로 사랑과 분노, 희망과 체념을 선명하게 그려냈다. 알프레도의 아버지 조르지오가 부르는 아리아는 단호하지만 깊이 있는 부성애를 절절하게 표현했다.


이 감상은 단지 영상 앞에 앉아 있는 경험을 넘어, 무대 그 자체에 서 있는 듯한 몰입을 안겨주었다. 붉은색, 침묵하는 죽음, 멈추지 않는 시계. 잘츠부르크 <라 트라비아타>는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이면서도,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 사랑하는 방식, 그리고 죽음을 마주하는 방식을 되묻게 하는 상징적 시(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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