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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를 진단한 책,『피로사회』 리뷰

by 두류산

한병철 교수의 『피로사회』는 현대인의 삶과 병리적 증세를 해부한다. 과거의 억압적 외적 권력이 지배하던 사회와 달리, 현대인은 자신을 감시하고, 과잉 성취를 강요하며, 번아웃과 우울해지는 자발적 피로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더 많은 것을 성취할수록 오히려 더 많은 것을 해야 한다는 불안에 시달린다.


이 책은 현대 사회를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 혹은 ‘활동 사회’로 전환된 사회라고 규정한다. 현대인은 끊임없이 ‘할 수 있다.’, ‘하면 된다’라는 긍정의 언어 속에서 자기 한계를 무시하고, 쉬지 않고 달린다. 성과사회는 타인에 의해 강제되는 ‘복종적 주체’가 아닌 ‘성과 주체’로서 ‘자유’와 ‘성과’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스스로 착취하는 시대이다. 저자는 이 같은 성과사회가 궁극적으로는 도핑 사회, 즉 끝없는 자기 강화와 자기 착취의 악순환에 빠진 사회로 흘러가고 있다고 경고한다.


많은 사람들이 카페인 중독 - 카카오톡,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으로 우울증에 걸려있다. 이 책은 ‘피로’하고 ‘우울한’ 현대 사회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에게 새로운 삶의 태도, 쉼과 사색을 중심에 두는 삶을 요구한다. 그것은 바로 '하지 않음의 용기'이며, '멈춤의 지혜'이다. SNS 등 과잉 소통, 과잉 정보에 중독된 현대인에게 필요한 것이 ‘자극에 즉시 반응하지 않고’, ‘속도를 늦추고, 오래 바라보는 사색의 시간’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성과사회의 압력은 끝없는 성공을 향한 유혹에 노출되어 있는 개개인의 반성과 자각을 통해서만 물리칠 수 있다고 했다. 성과사회에서 소진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적극적으로 멈춰야 하며, 고요히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 책은 우리가 회복해야 할 개념으로 ‘치유적 피로’를 제시한다. 단순히 지친 몸을 쉬게 하는 수동적 피로가 아니라, 활동과 성과에서 벗어나 존재 자체를 느끼는 깊은 쉼의 상태다. 치유적 피로는 우리를 ‘성과의 수단’이 아닌 ‘존재로서의 나’로 되돌리는 시도다.


『피로사회』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묻는 존재론적 제안이다. 우리에게 ‘더 잘하기’보다 ‘조금 느리게’, ‘더 깊이 있게 살아가는 삶’을 마음의 중심에 두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편하게 읽히는 책은 아니나, 복잡한 철학적 명상 대신 간결하고 명료한 언어로 시대를 설명하고 있어,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역자의 후기에 나오는 한국의 교육 현실 또한 『피로사회』의 문제의식을 그대로 보여준다. 입학사정관제와 같은 새로운 제도는 겉으로는 창의성과 자기 주도성을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학생들을 더 복잡하고 불투명한 경쟁으로 몰아넣고 있다. 이 경쟁은 ‘남과의 비교’에서 ‘자기 자신과의 경쟁’으로 변질되어, 학생 개개인이 끊임없이 더 나은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게 한다. 이는 결국 성과 사회적 사고방식의 교육 버전에 지나지 않으며, 피로한 주체들을 양산할 뿐이다.


역자나 이 책은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은 제시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책의 메시지를 바탕으로 방안을 찾아보자면, 교육 제도의 방향 자체를 근본적으로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 학생이 주체가 되는 교육, 즉 성과와 결과보다 과정과 내면의 성장을 중시하는 교육 철학이 자리 잡아야 한다. 입시를 중심으로 한 비교 중심 교육이 아니라, 협력, 자율, 창조를 교육의 핵심 가치로 삼고, 실패의 경험조차도 성숙으로 이끄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심심할(혹은 게으를) 권리’와 ‘실패할 자유’를 허용하는 환경에서만이 진정한 자율성과 창의성이 자라날 수 있을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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