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너의 오페라 <니벨룽겐의 반지>는 클래식 애호가들에게 정복하기 힘든 성역으로 ‘오페라의 끝판왕’으로 불리며, 넘사벽으로 여겨진다. 총 4부작, 무려 16시간에 달하는 공연 시간. 그리고 북유럽 신화와 게르만 서사를 아우르는 방대한 스케일은 도전하기 어려운 오페라의 마라톤과 같다.
클래식 동호회 모임인 정동회에서 DVD로 감상한 영화 <니벨룽겐의 반지>는 바로 이 16시간 대장정을 위한 입문기이자 리허설이 되어주었다. 영화는 바그너가 28년에 걸쳐 완성한 오페라의 핵심 서사를 할리우드식 판타지 문법으로 압축했다. 난쟁이 알베리히가 훔친 금으로 만들어진 저주의 절대 반지, 영웅 지크프리트, 그리고 브륀힐데의 비극적인 운명. 영화는 권력과 탐욕, 사랑과 배신으로 얽힌 대서사시의 골격을 한눈에 들어오게 한다.
42.195킬로의 마라톤 완주를 위해 10킬로의 단축 마라톤으로 체력을 점검하듯, 이 영화는 16시간짜리 오페라 전곡 감상을 위한 훌륭한 예행연습이었다. 오페라의 서사를 알려주며 바그너의 세계로 들어가는 초대장을 받은 셈이다. 이제 바그너가 빚어낸 웅장한 음악 속에서 인간과 신의 운명을 탐구할 그 장엄한 순간에 들어갈 그날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