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내가 누릴 수 있는 가장 가성비 좋은 엔터테인먼트다. 수십, 수백억, 때때로 수천억의 자본과 수많은 예술가의 고민이 응축된 결과물을 단돈 만 원 정도의 비용으로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아내도 내 생각과 같다. “먹는 것은 몸으로 가고, 읽고 보는 것은 마음으로 간다”라는 말이 있다. 아내와 나는 영화가 끝나면 맛있는 음식을 나누며, 스크린의 여운을 일상으로 끌어오는 시간을 즐긴다. 부모와 자식은 서로 다른 세상을 살아가기에 공통의 화제를 찾기란 쉽지 않지만, 영화는 언제나 우리 가족을 하나로 불러 모은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을 보고, 여운이 가시기 전에 가족 단톡방에 짧은 감상을 남겼다. 안개처럼 모호한 영상미 속에 복선처럼 숨겨진 대사들, 그리고 산 정상에서 몸을 던진 한 남자의 죽음으로 시작되는 강렬한 오프닝과 촬영장소 헌팅의 미학에 관해 이야기하자 아이들이 관심을 보였다.
나는 영화 초반부, 암벽을 오르던 남자가 듣던 말러 교향곡 5번 4악장에 관해 이야기했다. 연인 알마를 향한 간절한 사랑의 고백이면서도 동시에 장례식의 추모곡으로 쓰이는 아다지에토(Adagietto)의 이중성이, 결국 영화 전체의 결말을 암시하고 있다는 내 나름의 해석을 덧붙였다.
아이들이 반응을 보이자, 아내는 예상치 못한 캐스팅의 묘미를 언급하며 대화를 풍성하게 했다. 개그우먼 김신영을 캐스팅한 충격을 지하실에서 올라온 ‘기생충’의 배우 박명훈의 등장에 비유하자, 단톡방에는 아이들의 감탄 섞인 이모티콘이 쏟아졌다. 영화라는 공통의 주제가 없다면 부모와 자식 사이에 이토록 사랑스러운 교감이 가능할까.
대화가 무르익을 즈음, 영화관의 사운드가 뱃속 아이를 놀라게 한다는 이유로 극장 나들이를 접어둔 며느리가 아쉬움을 비췄다.
“아이가 나오면 저도 신랑이랑 영화 데이트해야겠어요.”
나는 그 마음을 달래려 오래된 기억 한 토막을 꺼냈다. 우리 부부도 신혼 때 영화관을 자주 찾다가, 지금은 며느리의 신랑이 된 큰 아이를 가지고 한동안 극장을 멀리했다는 가족사였다. 그러다 아이를 낳은 후 이제는 사라진 ‘과천극장’에서 우리는 아이를 유모차에 태운 채 영화를 보곤 했다. 어둠이 내린 상영관은 아이에게 평온한 공간이었고, 아이는 영화가 시작되면 신기하게도 잠이 들었다. 며느리는 흥미진진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어머, ㅋㅋ 진짜 순둥이였네요. 극장에서 유모차를 탄 갓난아이를 입장시켜 준 게 신기하네요. 지금은 입장이 안 될 것 같은데 말이죠.ㅎㅎ”
하지만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영화 <아제아제 바라아제>를 보던 날, 주인공 강수연이 삭발을 감행하는 엄숙한 장면에서 아이가 깨었다. 아이가 울까 봐 급히 안고 극장을 나와야 했다. 연년생으로 둘째가 태어나면서 우리 부부에게 영화는 긴 ‘암흑기’로 접어들었다. 넷플릭스 같은 OTT도 없던 시절, 명절 특선 영화만이 갈증을 달래주었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라자, 아내와 나는 다시 극장을 찾았다. 하지만 영화 장르는 완전히 달라졌다. 처음에는 만화 영화였고, 점차 <쥐라기 공원> 같이 아이들 성장에 맞는 영화를 찾았다. 아이들 둘을 좌석 가운데 앉히고 영화를 보는 것은 즐겁고 귀한 시간이었다. 아내는 쥐라기 공원을 보면서 잠이 들었다. 아이들은 무시무시한 영화를 보면서 잠든 엄마의 모습에 영화에 나오는 공룡보다 더 놀라워했다. 영화관 어둠 속에서 빠져든 단잠은 고단한 육아를 감당해 온 엄마에게 허락된 안온한 휴식이었다.
이제 아이들은 장성하여 부모와 영화의 미학을 논하는 대화 상대가 되었다. 영화는 단순히 스크린 속의 이야기를 넘어, 우리 가족이 지나온 시간을 함께하는 고리가 되었다.
우리의 영화 사랑은 가족 간의 대화를 위한 ‘세상에서 가장 가성비 좋은’ 매개가 되었다. 곧 태어날 손주가 자라면, 우리는 영화를 매개로 새로운 이야기를 써 내려가게 될 것이다. 극장에 불이 꺼지고 영화가 시작할 때 느껴지는 그 설렘은 우리 가족을 오래 이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