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사랑하고 존중하라
결혼식 일주일 전, 아들이 주례 선생님을 모시지 않는 대신 아빠가 신랑 신부에게 덕담(德談)을 해달라고 했다. 평생 한 번뿐인 순간, 아버지로서 어떤 말을 전해야 할까. 일주일 내내 원고를 쓰고 고쳤다. 결혼식 전날에는 아내 앞에서 예행연습까지 하며 만반의 준비를 했다.
결혼식 당일, 사회자의 부름으로 단상에 올랐다. 먼저 축하해 주기 위해 찾아주신 하객들에게 인사를 드렸다.
"소중한 주말 시간을 내어 자리를 빛내주신 양가 친지분들과 하객 여러분께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
마침, 아들의 결혼식이 5월 21일 부부의 날이라 더욱 특별하게 느껴졌다.
"오늘 5월 21일은 둘(2)이 하나(1)가 되는 부부의 날입니다. 오늘 부부가 되는 신랑 신부에게는 더욱 뜻깊고 경사스러운 날이 되겠습니다. 우리 부부도 35년 전 이맘때 결혼했습니다. 그날 주례를 하신 대학 은사님께서 ‘아내를 하녀 같이 대하면 스스로 머슴이 되고, 남편을 머슴같이 여기면 하녀처럼 살게 되니, 왕이 되고 싶으면 아내를 왕비같이 대우하고, 왕비같이 살고 싶으면 남편을 왕처럼 여기라’ 하셨습니다. 그날 해주신 주례 말씀을 평생 마음에 간직하고 살았습니다.
결혼이라는 인생의 귀한 출발을 하는 신랑 신부에게 덕담을 하자면, 세상의 좋고 귀한 말을 다 가져와도 모자랄 것입니다. 오늘은 두 사람에게 우리 부부가 결혼하고, 두 아들을 낳고, 가정을 가꾸면서, 가장 소중하게 여겨온 한 가지만 당부하겠습니다. 그것은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라는 것입니다."
긴장한 탓인지 눈을 제대로 못 맞추는 신랑 신부에게 대화하듯 말을 건넸다.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기에, 이 자리에 섰습니다. 두 사람이 평생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위해서는 ‘사랑’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사랑’에 더하여 서로에 대한 ‘존중’이 반드시 따라야 합니다.
존중은 영어로 ‘Respect’입니다. ‘re’는 ‘다시’, ‘spect’는 ‘보다’ 혹은 ‘생각하다’라는 뜻이니 ‘다시 보라’ 혹은 ‘다시 생각하라’는 의미입니다. 존중이란 순간적인 감정대로 반응하지 않고, 다시 보고 다시 생각하는 것입니다.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내 말에 신부가 먼저 긴장을 풀고 눈을 맞추기 시작했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두 사람에게 생활 방식이나 가치관이 다른 건 당연합니다. 빠르면 신혼여행지에서, 앞으로 함께 살아가면서, 맞지 않거나 불편한 점을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서로 ‘다름’을 억지로 바로잡으려다 상처를 주기보다는, 'Respect'라는 말 그대로 다시 생각하며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진정한 존중입니다. 내 옆에 있는 사람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하녀와 머슴 같은 존재로 여기지 않고, 어느 작은 나라에 사는 왕과 왕비처럼 서로 귀하게 여기고 존중하는 것입니다. 사랑에 존중을 더하면, 그 사랑이 더욱 깊어집니다."
이제 아들도 나와 눈을 맞추기 시작했다. 나는 아들에게, 그리고 나의 며느리에게 우리 부부가 쌓아온 삶의 비밀을 건넸다.
“살아가다 몸과 마음이 지치고 힘들 때, 사랑과 존중을 위한 에너지는 어디에서 얻을 수 있을까요?
함께 산책하기를 추천합니다. 크고 작은 문제를 털어놓거나 서로를 응원하기에 산책만큼 좋은 건 없습니다. 부부가 함께 산책하며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즐긴다면, 그 시간은 건강뿐 아니라 행복을 차곡차곡 쌓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이건 지난 35년의 체험에서 나온 것이니, 완전히 믿어도 됩니다."
내 단호한 '완전히'에 하객들의 웃음이 터졌다.
"인생길은 늘 즐겁고 평탄하지만은 않습니다. 굽이굽이 인생길이라는 말도 그래서 생긴 것입니다. 그렇지만 미리 걱정할 일은 아닙니다. 인생길 굽이마다 동행하는 사람을 믿고 지켜봐 주고, 든든한 편이 되어주면 어떤 어려움도 함께 극복할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이 맹세할 시간, 혼인 서약의 연장선상에서 물었다.
"지금까지 신랑 신부에게,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라는 당부를 하였습니다. 그럼, 신랑 신부에게 묻겠습니다. 한평생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겠습니까?"
신랑 신부가 “네!”하고 힘차게 답하는 순간, 벅찬 감동을 느꼈다. 아들이 이제 한 가정을 책임지는 어른이 되었음을 실감했다. 입학식부터 졸업식, 초등학교의 학예회와 대학에서 연극까지 아들의 성장을 지켜보는 것이 아빠로서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 아들의 모든 중요한 순간을 함께했지만, 오늘만큼 기쁘고 뭉클했던 날은 없었다.
두 사람이 사랑과 존중을 바탕으로 백년해로하기를 축복하며, 아들의 아버지에 더하여 며느리의 아버지가 된 기쁨을 조용히 만끽했다.
‘아들아, 며늘아. 축하한다. 그리고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