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의 내가 만났던 공무원들
자랑은 화려했고, 배려는 없었다
대학교 2학년 여름방학, ㅇㅇ도청 대학생 아르바이트에 합격했다.
행정 업무를 배우는 기회라 생각하며 설렘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오래가지 않았다.
어느 날, 내가 일하던 ㅇㅇ과의 계장님이 나를 부르셨다.
“학생, 이리 와봐.”
이유를 알 수 없는 부름이었지만 나는 일단 자리로 찾아갔다.
나를 흘깃 본 그분은 잠시 후 책상 서랍을 열더니 뭔가 반짝이는 걸 꺼내셨다.
당시 유행하던 일본산 CD플레이어. 은색, 얇고 세련된 디자인.
“이거, 진짜 좋은 거야. 요즘 대학생들은 이런 거 못 사잖아.
한번 들어봐. 소리 끝내줘.”
그러면서 이어폰을 내게 내미셨고 아주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보셨다.
나는 억지 미소를 지으며 음악을 들었지만, 속은 복잡했다.
‘이걸 왜 굳이 들으라는 거지? 설마 나한테 cd플레이어 자랑하시는 거야?’
그분은 이후로도 자주 그런 식이었다.
자신의 물건, 형편, 취향을 슬쩍슬쩍 자랑하곤 했지만
정작 아르바이트생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작은 배려도 없었다.
다음 해 여름방학.
다시 한번 아르바이트 기회가 생겼고, 나는 ㅇㅇ시청에 배정됐다.
ㅇㅇ산 관리사무소에서 일하며 방문객을 대상으로 자연보호와 공공질서 단속을 도왔다.
도심을 벗어난 산속에서 즐겁고 보람 있는 여름방학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각 기관에 배치된 대학생들이 서류 작성을 위해 시청에 모였다.
많은 학생들이 모여서 서류를 확인하고 날인을 하느라 사무실은 북적였고,
나도 순서에 따라 도장 찍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들고 나느라 동선이 꼬일 듯해 인주를 가져다 얼른 도장을 찍었다.
잠시 후 난데없는 큰소리가 들려왔다.
“야! 그거 왜 멋대로 가져가!
누가 허락했어? 그거 내 거야!”
대학생 아르바이트 담당자였다. 사무실이 순간 조용해졌다.
“날인 장소가 너무 복잡해서 그랬어요.
금방 다시 가져다 놓으려 했습니다.”
그 인주는 그 아저씨의 책상에 있던 것이었고, 나는 바로 그 옆 책상에서 잠시 인주를 사용했다.
사람들이 붐비고 있어서, 잠시 인주를 가져다 사용한 것뿐인데.
담당 직원은 인주를 있던 자리가 아닌 다른 자리로 가져갔다며 대학생 애들이 버릇이 없다, 건방지다,
뭣도 모른 것들이 그런다며 야단이었다. 인주를 가져다 쓴 게 그렇게 야단맞을 일일까?
솔직히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날 이후, 나는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공무원은 내 길이 아니구나.’
물론, 따뜻한 분들도 계셨다. 조용히 조언해 주고, 실수에도 웃으며 넘겨주시던 분들.
그런 분들의 모습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더 오래, 더 선명하게 남는 건
CD플레이어를 자랑하던 계장님, 인주 하나에 호통을 치던 그 아저씨의 목소리다.
공무원 생활을 하다 사표를 내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연봉이 문제라는 지적이 있는데, 내 생각에는 공무원 조직 문화도 문제이지 않을까 싶다.
‘그들도 나처럼, 그런 사람들을 만났던 걸까?’
두 번의 방학. 나는 그 시간 속에서 마음을 정했다.
"나는 공무원은 못하겠다"
“나는 그 사람들 같은 어른은 되지 말아야지.”
그리고 늘 생각한다.
누군가의 여름과 겨울에,
누군가의 하루 속에 불편한 기억으로 남지 않기를.
내 말투 하나, 행동 하나가 누군가의 마음에 상처로 새겨지지 않기를.
좋은 어른이 된다는 건 지적보다 기다려주는 사람이 되는 것,
자랑보다 들어주는 사람이 되는 것 아닐까.
언젠가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그땐 참 괜찮은 어른이었어”라고 남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