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를 좋아하는 이유
토요일
친정부모님이 준우를 데리고 시골에 가셨다.
주말에 소소하게 농사를 짓고 계셔서
우리도 자주 따라가곤 하는데
어제는 준우만 할미 하부를 따라 시골로 갔다.
어느 순간부터 준우가 엄마 아빠가 없어도
할미 하부와 시간을 잘 보내주기 시작했다.
친정부모님이 워낙 준우의 기분을
잘 맞춰주시는 것도 있고,
흙파서 놀기 좋아하는 준우에게
시골은 최고의 놀이터기에
엄마 아빠가 있고 없고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준우가 최고의 놀이터로 떠났으니
남은 우리 세명도 최고의 놀이터로 떠났다.
사실 그냥 '나'에게 최고의 놀이터다.
남은 두 남자의 의사는 깊이 물어보지 않았다.
'모 나무르'라는 크고 웅장한 카페.
이곳은 단순한 카페가 아니라 복합 문화 공간이다.
공연장, 웨딩홀, 카페, 전시장이 모여있는 곳이다.
탁 트인 공간, 흐르는 물, 푸른 풀밭과 나무들,
눈을 돌리는 모든 곳이 예쁘다.
이 예쁜 곳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 내가 좋아지는 기분.
이제는 부탁하지 않아도
우리 남편이 알아서 사진을 척척 찍어준다.
남편이 찍어준 사진을 보고 있자니
참 비현실적이고 나 같지 않아서 좋다.
일주일 7일 중 5일은
화장기 없는 맨얼굴에 머리를 질끈 묶고
아이들과 지지고 볶기 좋은
편한 면티와 운동복 바지를 입는 내가,
평범한 아파트에서
청소기 돌리고 장난감 정리하고
밥 먹이고, 닦이는 일을 반복하는 내가,
전혀 다른 공간에서 아주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게 낯설어서 좋다.
다른 옷을 입고 다른 사람 역할을 하고 기분이랄까.
다른 말로 하자면,
'엄마로서의 나' 말고
'여자로서의 나'를 충분히 누리는 시간.
그래서 내가 카페를 좋아하는 것 같다.
글이 자꾸 슬퍼지는 느낌이 드는데...ㅋㅋㅋ
그렇다고 해서 내가 엄마로서의 삶이
마음에 들지 않는 건 아니다.
그 삶도 그 나름대로의 행복과 의미가 있다.
현재 삶의 대부분의 시간을
'엄마'라는 주캐로 보내고 있으니,
종종 '여자'라는 부캐도 꺼내 살고 싶은
그런 가벼운 마음이다.
이 웅장한 카페라도
내가 매일 마주하고 사는 삶이 된다면,
이렇게 앉아서 물 멍 하는 게 내 수캐가 된다면,
또 다른 부캐를 꺼내고 싶어 지겠지.
적지 않은 돈이지만,
커피와 빵값을 내기만 하면 몇 시간 짧게나마
이 웅장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바라보고
누릴 수 있다는 게 감사하다.
내 것 아니지만 몇 시간은 내 것처럼
누릴 수 있다는 게 참 행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