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날이 있다.
육아로 몸과 마음이 지치고
내 마음 알아주는 이가 한 명도 없을 때.
남편도, 아니 나 자신도 나에게 공감이 안될 때.
자녀를 낳기로 결심한 것도
휴직하기로 마음먹은 것도
기관을 좀 미루고 둘째 가정보육을 선택한 것도
모두 나 자신이다.
내가 선택한 삶을 내가 스스로 못 견뎌
징징대고 있는 모습이 참 못나 보이는 그런 날.
모처럼 남편이 쉬는 날이어서
남편에게 아이 둘을 맡겨놓고
차에 올라 어디론가 무작정 떠나는데
차에 흐르는 익숙한 찬양 소리
'공감하시네.'
주님이 우리의 아픈 맘을 아시네
가까이서 우리의 아픔에 공감하시네
우리 가운데 찾아오셨던 그 주님이
우리의 모든 상황에 공감하시네.
나조차도 이해하지 못하는 내 마음을
그분은 공감하신다고 한다.
네가 선택한 삶이잖아
너만 힘든 게 아니야
다들 하는 일인데 왜 너만 힘들어해
몰아붙이지 않고
공감받을만한 상황인지 따지지 않고
일의 책임과 잘못을 묻지 않고
그저 우리의 '모든 상황에' 공감하신단다.
이런 공감을 누구에게서 받을 수 있을까.
내 존재 자체를 받아주는
깊고 진실된 위로를.
핸들을 붙잡고 한참을 울었다.
돌아가는 길
아파트 같은 라인에 사는
우리 둘째만 한 아기를 키우는 엄마를
엘리베이터에서 만났다.
아이를 등원시키고 돌아오는 길인지
새댁의 손에는 삼각김밥이 든 봉지가 들려있다.
정신없이 아이 등원시키고
그제야 먹는 그녀의 아침밥이겠지.
아이에게는 비싼 이유식을 해 먹이면서
본인은 간편한 편의점 김밥을 사 먹겠지.
그녀의 삶이 통째로 나에게 보이면서
엄마들만 아는 공감이 밀려왔다.
물론 말로 표현하지는 못했다.
그저 못 본 척 웃어 보일 뿐이었다.
내가 받은 그 깊은 공감의
10분의 1이라도 전할 수 있으면 좋았을 텐데.
당신이 얼마나 수고하고 있는지 안다고
오늘도 진짜 고생 많다고
다 알진 못해도, 여기 그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