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퇴사한 이유
'내가 MZ세대라서 이렇게 쉽게 포기하는 걸까?'
내가 퇴사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했던 생각이다.
모두 매일같이 직장을 욕하고 다니지만, 결국은 버티며 일하던데 나는 나약한 것일까? 내가 그만두고 싶어 하는 게 '쉽게 포기하는 것'일까? 원래 이렇게 힘들고 몸이 안 좋아지는 것은 당연한데 그냥 내가 MZ세대라서 조금만 괴로운 일이 있으면 그만두는 걸까? 이런 생각을 했다.
평소에 이런 생각을 하는 편이 아닌데, 어쩐지 꼬리표처럼 따라오는 'MZ세대' 명칭 앞에서는 나 자신의 감정과 행동의 정당성을 의심하게 되었다. 물론 아직까지 그 단어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엠즤세대'라고 말해야지 진정한 'MZ세대'라고 할 수 있다고 한다는 말은 들었다. 아직도 나는 '엠 제트 세대'라고 하는 것 보면 그 세대에서도 끝자락에 얻어걸린 사람인 게 티가 난다. 하지만, 회사든 어디든 가면 제일 나이가 어렸고, "역시 MZ세대군." "MZ세대는 역시 다르네."라는 듣는 게 익숙해졌다. 칭찬으로서도 많이 들었지만, 어쩐지 부정적인 내용으로도 그 얘기를 듣기도 했다. 이런 말을 듣다 보니, 내 행동과 감정에 대한 합리성을 의심하게 되었다. 개인으로서의 '나'가 힘들다고 느끼거나 그만두겠다고 선택한다는 것보다는 포기를 쉽게 하는 <그놈의 엠 제트>의 특징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그때 당시 매일 같이 야근을 하고 추가 수당은 꿈에도 못 꿨다. 대부분의 한국 회사가 그렇듯 주 52시간제는 개나 줘버리고, 정~말 가끔 정시퇴근을 하고 기본 8시까지 일을 하고, 시즌이 다가오면 10시에 매일같이 퇴근했다. 종종 12시까지 밤새기도 하고 주말 출근도 했다. 이전 글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부장님은 나를 정말 싫어했고, 그 외에도 자잘한 스트레스가 있었다. 팀의 힘도 약해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서 다른 팀 일도 어물쩍 해야 했고, 그 팀의 막내인 나는 온갖 일을 다 하게 되는 구조가 되었다. 몇 주 동안 이어지는 하혈을 하기도 했다. 일하는 것이 재미없고 그에 이어져서 하루하루가 재미없었다. 내일이면 또다시 회사에 간다는 게 절망스러울 정도였다. 나는 정말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왔는데 회사 하나로 이렇게 변한다는 게 혼란스러웠다. 이 모든 것이 누군가에게는 참아오고 버텨온 현실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현실을 견딜 수 없었다. 머릿속에서 나의 나약함에 대한 의문은 동동 떠다녔지만, 그것보다 퇴사 의지는 더 강인했다. 그래서 퇴사를 했다.
그때도 친구들에게 말했던 기억이 난다. 문득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고.
'나는 남들이 다 참고 있는 것을 피해온 걸까?
'나는 이 상황이 두려워서 도망쳐와 놓고는 변명하는 걸까?'
이 생각은 강하지는 않지만, 스모그처럼 내 뇌에 얇게 펼쳐져 있었다. 그래서 더욱 오래 남아있었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충분히 그런 선택을 해도 된다.라고 생각했지만, 어딘가 불편함이 있었다.
사실 내가 그런 사람이 맞다면? 내가 무서워서, 약해서 버티지 못하고 나온 거라면? 이런 생각이 가끔 찾아오더라.
이런 나에 대한 의심을 물고 오다가 그저 인정하기로 했다.
"무서워서 도망가면 뭐 어떤가. 나약해서 쓰러진 거면 뭐 어떤가. 적응하지 못하고 겉돌면 뭐 어떤가."
내가 이 선택에 대한 엄청나게 멋들어진 이유가 있어야 할 것 같고, 나는 '그렇고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변명해야 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도 된다. 그냥 도망쳐온 거고, 포기를 밥 먹듯이 하더라도 살아가면 된다. 내가 도망치지 않을 정도의 곳에서 어찌 저찌 살아가도 상관이 없다. 내 감정과 행동에 정당성과 합리성이 필수적인 것은 아니다. 내가 느끼고 결정한 그 자체로 충분하다.
또 다른 방식으로 나를 바라보기도 한다. 퇴사를 선택한 나의 용기를 보고 [나약하지만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다. 포기도 선택이고 선택은 용기니까. 힘든 상황에서 나를 빠져나오게 하는 것도 의지가 필요한 일이니까 어쩌면 그냥 [용기 있는 사람]일지도? 엄청난 자기 합리화라도 상관없다. 자기 합리화는 험한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나를 보호하는 에어백과 같으니까. 살아가기만 한다면, 그걸로 족하다.